정몽규 회장은 그간 회사 소유의 고려산업개발 주식 550만 주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이중매매해 비자금 56억 원을 조성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더구나 이 비자금 조성에는 이미 해외로 도피한 정 회장의 사내 측근인 서 아무개 재무팀장이 관여했고 수사 도중 이중매매에 진승현 게이트의 주역인 진승현 씨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재계 2세 총수의 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겹치면서 정 회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었다.
만약 이 재판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정 회장은 건설사 임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 돼 현대산업개발그룹은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가 될 위기에 빠져있었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김득환)는 지난해 12월29일 선고공판에서 비자금 중 채권 2∼3장을 처분해 3억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그에게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한 것. 검찰에선 당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이 횡령 혐의만 인정한 것이다. 이 중 3억 원에 대해서도 정 회장 쪽에선 회사 임직원 격려금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이는 대상그룹의 오너인 임창욱 명예회장이 220여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법원에서 4억 원의 배상금과 함께 실형 선고를 받고 2005년 6월부터 복역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런 차이는 조성된 비자금의 용처가 재판부의 양형 결정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40대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 회장이나 현대산업개발로서는 큰 고비를 넘기게 된 셈이다. 재판부는 그가 쓴 직접 쓴 돈이 3억 원에 불과해 “건설사 임원 자격을 상실하는 집행유예 이상을 내리기엔 가혹하다”고 밝혔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