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의 사임 이유는 “그동안 전경련의 조직 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또 그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의 3연임에 대해 사실상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이 명쾌하지도 않고 합리성도 결여돼 있다는 것. 때문에 그는 요식절차만 남은 강 회장의 재추대를 앞두고 부회장직 사퇴라는 강수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의 전경련 회장 연임 반대를 표한 쪽에는 김 회장 외에 몇몇 중견그룹 총수도 같은 뜻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뜻이 김 회장의 사표로 공론화되자 전경련은 지난 6일 결국 강 회장의 3선 연임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재미있는 점은 김 회장의 ‘전경련 부회장직 사임’이 ‘강 회장 연임 반대’로 비춰졌고 이는 사실상 ‘재계 상왕’ 노릇을 해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결정에 반대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 오찬을 주재하고 차기 전경련 회장 논의에 대해 강 회장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하자 “그럼 강 회장이 한 번 더 하시죠” 하고 자리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전경련의 그날 결정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10월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손길승 SK 그룹 회장이 물러나자 그때부터 전경련의 가장 큰 후원자로 떠오른 곳이 삼성 그룹이었다. 전경련에서는 이 회장이 맡아주길 원했지만 이 회장은 그때마다 고사하고 대신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을 부회장으로 ‘파견’하고 전경련 회비도 가장 많이 부담하는 등 후원자 역할로 만족해했다. 때문에 이때부터 전경련이 아닌 ‘삼경련’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김 부회장의 ‘거사’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도전’이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강 회장도 “김준기 회장은 좀 더 강력한 전경련을 원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나. 정부에 잘 협조하면서 정책을 바꿔나가는 게 옳다고 본다. (회장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일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연임을 고사했다”며 볼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부회장 사퇴로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김 부회장이 일단 ‘파란’은 일으켰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