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곧잘 위기론을 설파하면서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도전의식을 부추기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며 설정된 목표의 달성을 독려해왔다.
지난 9일 이 회장은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07 투명사회협약 보고대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이 삼성전자 수익률 하락에 관련된 질문을 하자 “정신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6년 후에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의 생활가전사업과 관련 “신경은 써야 하는데 한국에서 할만 한 업종이 아니다”며 “내수는 하겠지만 수출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또 “개도국으로 넘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사업부문과 관련된 이 회장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사업부문이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전자 분야에서 월드베스트라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근접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생활가전 사업만은 경쟁사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담당 임원은 임원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이고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챙기기까지 했지만 신통한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 삼성은 세탁기나 냉장고 등 생활 가전 생산 분야는 광주전자로 분리시키기도 했다.
이 회장 말대로 삼성의 생활가전 사업이 내수용과 수출용으로 분리된다면 광주전자의 생산량이나 고용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삼성그룹의 생산기지는 주로 수도권이나 영남에 몰려있기에 이는 미묘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위기론’을 설파할 때마다 ‘10년 뒤 뭐를 먹고 살 것인지를 고민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 발언에선 ‘5~6년 뒤’로 그 시기가 더욱 앞당겨진 데다 신사업 모델이 아닌 기존 사업의 수익성 저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어서 그의 발언은 더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