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파 갈등이 극심해 손학규 대표의 행보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 ||
범여권 2차 빅뱅 정점에는 손학규 대표가 자리 잡고 있다. 손 대표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이 전 총리가 전격적으로 탈당을 선택했고 일부 친노그룹 의원들도 탈당 대열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신당 간판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충청권을 지역기반으로 가칭 ‘자유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측과 물밑 교감을 나누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여기에 당내 최대 계파인 DY계를 중심으로 ‘반 손학규’ 연대가 꿈틀 거리고 있어 향후 당 주도권과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대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손 대표가 비상대권을 거머쥔 이후 신당 내 세력 재편 움직임과 맞물린 이합집산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손 대표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로 범여권 경선에 참여했지만 조직과 지지기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쓴맛을 감내해야 했다. 손 대표가 총선 결과에 따라 무한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한시적 당 대표직를 수락한 배경에는 범여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확실한 지지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손 대표 체제의 출범은 신당 내 세력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신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던 DY계와 친노그룹, 중진그룹이 비주류로 전락한 반면 손 대표와 수도권 소장파는 일순간에 주류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손 대표는 수도권 소장파와 386 의원들을 전면에 배치해 대대적인 당 쇄신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10일) 신당 경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의원 20여 명과 만찬을 갖고 “독배와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모든 것을 던지겠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당을 살려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한 참석자는 전했다.
손학규 대표는 또 11일 당사에서 가진 대표 취임식과 기자회견을 통해 “신망 있는 외부인사로 독립적인 공천심사위를 구성,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천을 추진하겠다”면서 “재창당하는 각오로 외부의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대거 영입해 당의 면모를 일신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예고하기도 했다. 신당 관계자들은 당권- 공천권 분리에 따라 손 대표가 직접 공천 칼자루를 휘두를 수는 없지만 공천심사위원장 임명 권한 등을 적극 활용해 인적청산 작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손 대표 측 정봉주 의원은 11일 모 라디오에 출연해 “손 대표는 역대 어느 당 대표보다 강화된 전권을 부여받았다. 당 대표로서의 권력과 책임을 살려 공천에 대해서도 적극 관여할 수밖에 없다”며 “적절한 인물 영입과 인적 쇄신에 주안점을 두고 본인이 원하는 컬러의 인물이 와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처럼 손 대표와 그 측근들이 산적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재창당 각오로 당 쇄신 작업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손학규호의 앞날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이해찬 전 총리 탈당 이후 친노그룹의 추가 탈당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고 충청권 의원들의 집단행동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당 주도권 및 총선 공천작업이 본격화될 경우 DY계나 중진그룹과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자칫 당을 재정비하기도 전에 계파 갈등이 심화돼 분열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지난 7일 통합신당 지도부 구성 방법에 대한 논의를 위해 모인 중앙위원들. | ||
다만 손 대표가 주도하는 인적쇄신 과정에서 이들 친노 인사들이 타깃이 되거나 공천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친노그룹은 추가 집단 탈당 후 친노신당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충청권 의원들의 집단행동 여부는 범여권 지형을 지역구도로 재편시키는 동시에 합종연횡을 부추기는 핵뇌관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신당 내 충청권 의원들이 집단 탈당을 고심하고 있는 배경에는 “신당 간판으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선 득표율에서 드러났듯이 현재 충청권은 한나라당과 이 전 총재가 주도하고 있는 자유신당이 치열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는 게임을 하느니 차라리 “한나라당의 1당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자유신당 간판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충청권에서 자유신당행을 저울질하고 있는 의원은 충북 4~5명, 충남 1~2명 등 모두 5~7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인사들은 신당을 탈당해 이 전 총재 측에 합류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대전·충남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대표와 당내 최대 계파인 DY계의 관계 설정 여부는 범여권 빅뱅을 좌우하는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 입장에서는 친노그룹과 충청권 의원들의 추가 탈당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DY계 마저 적으로 돌린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DY계와의 갈등은 곧 적전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자칫 범여권을 또다시 사분오열시키는 핵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남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DY와 DY계의 막강 조직력을 감안하면 아직 지지기반이 약한 손 대표가 정면 승부를 펼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DY는 당분간 손 대표의 당 운영 및 인적쇄신 청사진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대선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DY의 입장을 감안하면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DY가 차기 대권에 미련을 가지고 있고 DY계 또한 이번 총선을 통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는 만큼 손 대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방심했다간 신당 조직이 손 대표 체제로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고 공천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되고 있다.
DY계는 손 대표 체제 출범 후 당 지분 및 공천 보장 등을 전제로 한 손 대표와의 전략적 협력을 비롯해 주도권 싸움과 공천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을 상정한 단계별 전략 수립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와의 관계 설정 여부에 따라 협력과 전면전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손 대표나 DY 모두 어려운 정치상황에 직면해 있는 만큼 당분간 대립보다는 상호 협력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나갈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DY는 10일 밤 손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당 대표 추대를 축하했고 손 대표는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중앙위에서 최고위원 선출 권한을 위임받은 손 대표가 최고위원 인선을 어떻게 할지 여부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 설정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당장은 필요에 따라 밀월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 주도권과 공천 전쟁이 본격화되면 대혈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손 대표 측 일부 인사들도 DY를 포함해 친노그룹과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손 대표 입장에선 공천 혁명을 통해 어려운 총선정국을 돌파해야 한다는 의지는 앞서지만 그렇다고 DY계와 맞설 경우 적전분열로 치달아 분당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범여권 2차 빅뱅이 가시화되고 있는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독배를 들고 선장에 취임한 손 대표가 DY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지 그의 항해술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