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와 고 신상옥 영화감독과의 운명적인 사랑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들의 사랑은 ‘간통죄 1호’라는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며 이루어졌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잊지 못할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를 넘어 ‘영화 동지’로서 평생을 함께해 왔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납북 당시의 생활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이다. 1978년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최 씨는 안양영화예술학교 문제로 홍콩에 간 뒤 갑작스럽게 증발해 버렸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낙후된 북한 영화를 되살리기 위해 최 씨를 납치했던 것. 오수미와의 스캔들로 최 씨와 이혼했던 고 신 감독도 납북돼 두 사람은 5년 만에 북한 땅에서 숙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뒤 이들이 함께 북한을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다.
최 씨는 당시 30대였던 김정일 위원장과의 일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김 위원장은 “최 선생 보기에 내가 어떻게 생겼습네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며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40~50개가 넘는 박스에 한복감과 양복감, 코트감 등 온갖 춘하추동 옷감들을 보내주고 심지어 최 씨가 즐겨 쓰던 화장품까지 선물했다고.
영화광답게 김 위원장과 관계된 곳은 공공건물이든 가정집이든 어디나 영사실이 부설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고 한다. 최 씨는 김 위원장의 생일에 갑자기 초대받아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김 위원장이 사무실에서 모니터 6개를 직접 조작해 한국 TV방송을 하나씩 보여준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생일날 만난 그의 아들 김정남의 이름을 물어봤다가 가슴을 쓸어내린 사연과 아름다웠던 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