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청 “도로법 위반, 동성로 설치 시 철거”
[일요신문] 대구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위치선정 문제를 두고 행정당국과 민간단체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대구소녀상건립범시민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와 중구청은 소녀상의 건립 장소를 두고 논의를 수차례 거쳤으나 의견이 달라 설치 장소는 현재까지 미정이다. 추진위의 입장은 단호하다. 추진위는 다음달 1일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중구청은 난색을 표하며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평화소녀상 설치 시 철거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오후 <일요신문>은 이정찬(47) 추진위 집행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날은 평화소녀상 위치선정 문제를 두고 동성로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위원장은 “이용수 할머니가 올해 연세가 90세인데 오늘 기자회견 나오셔서 힘을 많이 실어주셨다”며 이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감사해했다. 현재 대구·경북권 내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4명. 추진위가 평화소녀의 상을 하루빨리 세우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정찬 추진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중구청에서는 평화소녀상 설치 장소를 동성로 대신 국채보상공원과 쌈지공원으로 제안했는데.
“평화 소녀상을 반대하지 않는 것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중구청에서 국채보상공원과 쌈지공원을 제안하는 것은 대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의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히 기념이나 상징물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역사적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는데 기초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와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원 설치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공원 한 켠에 가두고 기념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중구청의 제안은)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곧 역사의 무덤이며 박물관·박제화된 역사교육이 남을 따름이다.”
“국채보상공원은 공간적 의미로서는 유명무실할 뿐 그곳에서 국채를 갚기 위한 저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쌈지공원은 3·1운동 당시 학생과 시민들의 만세시위가 대규모로 진행된 곳이 아니며 그야말로 상징적인 장소로 재해석된 곳에 불과하다. 대구 평화의 소녀상은 근·현대 식민지 지배와 저항의 역사가 면면히 배어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
- 평화 소녀상 설치를 ‘동성로’로 고집하는 이유는.
“대구에서 제1의 친일파인 박중양은 대구읍성을 철거하지 말라는 조선 조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제 관원과 장사치들의 매수에 부응하고 일신영달의 탐욕으로 읍성을 강제로 철거했다. 그렇게 철거된 읍성의 그 둘레에 새로 길을 냈는데 그것이 바로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 그리고 바로 이곳 동성로다.”
“대구의 상징인 이곳 동성로는 정치·사회적으로는 일본인의 중심부 진출의 상징이자, 경제적으로는 영남내륙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경제구조의 재편을 알리는 서막으로서 대구민중의 한이 서린 길이다.”
“동성로는 1919년 3월8일, 대구 3·1만세시위 저항의 현장이자 처참하게 짓밟힌 최후의 장소였다. 현재 서문로와 종로를 거쳐 이곳에 진출한 당시 시위대는 바로 동성로에서, 이곳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일본군 보병80연대 기관총부대에 의해 무참히 해산당하고 말았다. 이 항쟁으로 157명이 구속되고 67명이 6개월에서 3년의 실형으로 고초를 겪었다. 동성로는 그야말로 저항의 현장이요 대구 식민지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일제 식민지 수탈과 대구 3·1운동 역사의 현장인 대구 동성로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으로 최적이다. 우리가 이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많이 다니기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역사의 현장이요 저항의 숨결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 중구청은 도로법 위반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다.
“중구는 도로법 55조를 근거로 동성로가 지목 상 도로라는 점을 앞세워 시민이 세우는 소녀상 설치를 불허하고 대안으로 국채보상공원과 쌈지공원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위법적 상황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24조의 점용허가 대상이지만 동법 시행령 2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허가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설치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구에서 제기한 것은 ‘비록 불법이지만 행정권으로 편의를 봐 준다’는 자기모순적인 견해이다.”
“무엇보다 행정당국인 중구의 의지와 법 적용에서의 운용문제라고 본다. 강원도 원주, 충청도 논산의 소녀상 설치는 행정당국이 대의에 기초해 민간과 합의 후 설치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일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적영역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로 우리 민족과 국가의 과제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동성로 대백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은 설치 목적에 분명히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민간이라서 설치가 불법이라면 ‘중구에 기부할 테니 중구가 앞장서서 세워 달라. 그래서 역사적·국가적인 문제에 대해 관(官)과 민(民)이 합심·협력하는 모범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구에서는 민간에서 추진하는 일을 관에서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 이는 현대 행정의 방향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 대구 시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오는 3월1일, 구청의 허가와는 별개로 동성로에 평화 소녀상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동성로에 평화소녀상이 들어서길 바라는 1만명 서명운동을 하는 등 대구 시민의 의지를 모을 계획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면 추진위는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평화 소녀상의 관리는 대학생 등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 미래세대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평화의 소녀상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지 인격화 또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 피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구 = 남경원 기자 skaruds@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