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는 별도로 검찰 일각에서는 김씨가 제출한 두 개의 테이프가 사실상 증거능력을 잃음으로써 김씨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김씨는 현재 “검찰의 수사가 한쪽으로 편향됐다”면서 자신이 직접 개입했다는 수연씨의 병력비리를 밝혀줄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말 병풍의혹을 제기하며 정치권 전면에 등장한 김대업씨. 코너에 몰린 김씨는 마지막 승부수를 확보해 다시 부활할지 아니면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 될지 사건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정리해 봤다.
▲ 지난 9월23일 김대업씨가 서울지검 기자실에 나와 국감에 자신이 증인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 ||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특별한 혐의점을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사자들이 스스로 입을 열리는 만무했고 면제처분 또한 오래 전의 일이라 물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연씨 형제의 병역면제과정에 대한 의혹은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만일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집권 내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은 “(정연씨가 면제를 위해) 고의감량을 했을 수 있다”면서도 “이에 대한 도덕적 처벌은 이미 지난 97년 대선에서 이 후보가 낙선함으로써 달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렇다면 병풍의혹을 제기한 김씨는 과연 정당할까. 김씨는 DJ정권 초반부터 실시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병역비리 조사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는 병적기록부만 보면 비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족집게처럼 집어내곤 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수사에 참여시킨 이명현 중령은 “한 개의 분석자료를 완성하는 데 거의 10시간 정도의 노력이 투입되었고, 밤잠을 안 자고 일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그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사 초기에 김씨의 주장은 상당한 힘을 받았다. 한나라당은 김씨의 과거 전과경력을 이유로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등 수세국면을 면치 못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비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응답자들이 과반수가 넘곤 했다.그러나 김씨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자신이 검찰에 제출한 테이프에서 비롯됐다. 그는 정연씨의 비리를 뒷받침해 줄 결정적 증거라며 두 개의 테이프를 제시했다.
그런데 〈일요신문〉은 “김대업 테이프 손댄 흔적 많다”라는 539호 단독보도를 통해 김씨의 테이프가 편집됐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국내 성문분석 전문가의 정밀분석을 토대로 작성된 이 기사는 검찰 수사에도 결정적 큰 영향을 미쳤다. 2차 테이프 성문분석을 실시중이었던 검찰은 대검 과학수사과는 물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에도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겠다는 검찰의 의지표명이었다. 결과는 김씨의 테이프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났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편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고 국과수는 편집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테이프와 관련해 김씨는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그는 자신이 제출한 1차 테이프가 판단불능으로 나오자 ‘원본’이라며 검찰에 또다른 테이프를 제출했다. 하지만 두 번째 테이프는 김씨 자신이 음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잡음까지 제거, 검찰에 제출하는 ‘친절함’을 보이기도 했다. 테이프에 나오는 음향을 자신의 의사에 따라 편집은 물론 조작까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행위였다.
▲ 녹음테이프(왼쪽)는 증거능력을 잃은 데다 한나라당의 공 격까지 거세져 김대업씨는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사실 김씨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김씨는 한나라당이 자신의 ‘과거’를 이유로 거세게 몰아세우자 “도둑놈이라고 해서 도둑을 잡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며 정면으로 대응해 나갔다. 전과경력 등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병풍에 대한 자신의 주장은 진실이라는 항변이었다.김씨는 국군기무사가 개입된 병역비리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기무사도 김씨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그의 주변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도 김씨와 기무사의 ‘전쟁’을 통해 김씨의 문제점을 일부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씨는 그동안 시민단체, 종교계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말 김씨가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를 검찰에 고발할 당시 현장에는 불교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지난달 28부터 지난 12일까지 복막염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김씨의 치료비 2백여만원도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등록이 직권말소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김씨는 지난 16일 자신을 돕던 한 스님의 주소지에 동거인으로 등재돼 보험혜택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의 변호인측은 운전기사가 딸린 에쿠스 승용차까지 빌려주면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병풍 문제에 김씨가 등장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인이냐 사기꾼이냐 논란을 불어 일으켰던 김씨. 이제 그 판단의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