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한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 집회에서도 이어졌다. 탄기국의 정광용 대변인은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지는 것 이상의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 이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반인 신분으로 청와대를 떠나게 됐고 탄기국의 자칭 태극기 집회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과연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지는 참극이 연출될까.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갈라진 민심을 추스르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사거리에서 보수단체가 탄핵기각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법 제23조는 ‘헌법재판관 7인이면 사건의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심판정족수’를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제23조는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돼 있다. 또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하는 경우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관 두 명의 임기 만료가 임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최소한 7명은 심리를 진행할 수 있어 탄핵 결정에 대한 심리가 시작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대리인단 손범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대해 ‘재판부가 9명이 아닌 8명인 상태에서는 ‘심리’는 할 수 있지만 ‘평의’와 ‘선고’를 하는 것은 무효’라고 해석했다. 이런 논리가 인용을 결정한 헌재의 결정을 부인하며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헌재 선고가 임박하는 상황에서 탄기국이 주도하는 소위 ‘태극기 집회’에서의 구호 역시 탄핵 기각보다는 탄핵 무효와 각하가 주류를 이뤘다. 이처럼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이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헌재 선고 이전부터 이미 ‘탄핵 무효’를 주장하며 ‘국민 불복종 운동’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에서 대통령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는 “이제 나를 변호사가 아니라 혁명가로 불러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으로 파면되는 상황에 이르자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은 더욱 세몰이를 할 전망이다.
문제는 백색테러 위협이다.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팟캐스트 방송 ‘신의 한 수’에서 박영수 특별검사의 집 주소와 단골 사우나 등을 공개하고 자택 앞 ‘야구 방망이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 미용실, 슈퍼마켓 등을 공개했다. 탄핵 심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실질적인 물리적인 폭력이 행사되진 않았지만 탄핵 인용이 결정되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협박글도 이어졌다. 결국 장난이었다며 자수하며 마무리되긴 했지만 박사모 커뮤니티엔 이정미 권한대행 살해 예고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일원 헌법재판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등에 대한 테러 암시하는 글들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돌아다니고 있는데 심지어 청년살수단을 모집한다는 글도 눈에 띈다.
심지어 탄기국 대변인인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박사모 홈페이지에 “열사가 돼 죽기를 각오하고 행동할 것” ”살 만큼 살았습니다” 등 탄핵이 인용되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것임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지난 2월 27일에는 “사형을 감수하더라도 내전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탄핵 인용 정국에선 이런 협박이 글에서 멈추지 않고 실질적인 물리적 충돌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헌법재판관들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특별 경호 하고 있다. 또한 경찰은 지난 9일 서울 전역에 ‘을(乙)호 비상령’을 발령했으며 선고 당일인 10일 서울 전역에 경비 최고 등급 ‘갑(甲)호 비상령을 발령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헌재 판결을 방해하거나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불법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한편 정치권의 시계는 60일 안에 치러야 하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맞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차기 대선이 4월 말이나 5월 초에 치러지게 됨에 따라 여야는 급박하게 당내 경선 과정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선거전 준비에 나서는 등 급박한 정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현재의 상황이 ‘국민 불복종 운동’까지 확산되는 가장 큰 원인 역시 차기 대선과 연결돼 있다. 정권교체의 열망을 담은 국민들의 목소리와 정권유지를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자칫 ‘국민 불복종 운동’이 탄핵 무효 주장에서 대선 결과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경우 국론 분열 상황이 차기 정부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 최대 과제는 이런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고 수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를 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정세균 국회의장이 원활한 대선 정국 운영과 여야 후보들이 대선 결과에 승복하고 화합하는 방향으로 정치권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사회 원로들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헌재 심판에 앞서 종교계가 나서 헌재의 결론 수용과 무조건 승복을 호소하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은 기자회견을 통해 “나와 다른 견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상대편의 의견도 경청할 수 있다면 탄핵심판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대주교는 호소문을 통해 “헌법에 입각한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판결을 수용하는 일은 진정한 민주주의 성숙의 출발점”이라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화해와 일치의 자세로 수용하자”고 밝혔다. 개신교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역시 호소문을 통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적 거룩함을 이루고 하나 되는 성숙한 국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