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전과 관련한 여러 정황이 조작됐다는 의견 이 대두되면서 재선을 노리는 부시에게 짐이 되 고 있다. | ||
당초 전쟁을 시작했을 당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는 여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됐던 오사마 빈 라덴과 후세인이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 역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허위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현재 워싱턴 정가와 영국 의회는 물론이요, 전세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에 두 정상은 지난달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 침공은 정당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여론을 무마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쟁이’란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떼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경우에는 닉슨 이후 처음으로 ‘거짓말쟁이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어 과연 내년 대선에서 이 여파가 어떻게 작용할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음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이 조목조목 따져본 ‘이라크 전쟁에 관한 10가지 거짓말’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하나. 이라크는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 9·11테러를 선동했다?]
9·11테러 직후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은 이라크의 정보기관원인 아마드 알 아니가 체코 프라하에서 테러의 핵심행동책인 모하메드 아타를 만나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이라크가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 심지어 테러를 선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후세인과 알 카에다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알 카에다의 핵심 인물들 중 이라크 출신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지난해 가을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알 아니와 아타가 프라하에서 회동했다는 정보는 왜곡된 것이다”라며 이 같은 소문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섰으며, 지난달 초 미군에 의해 이라크에서 체포된 알 아니 역시 “모두 미국이 지어낸 거짓말이다”라고 반박했다.
[둘. 이라크는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확보하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이라크가 핵무기 제조를 위해 니제르로부터 대량의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영국 정보기관의 말을 인용한 것에 대해 최근 ‘허위 정보’였음을 시인했다.
지난달 말 단독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내가 이야기한 것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시인한다”고 뒤늦게 밝히면서 결국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시도는 ‘조작된 정보’였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또한 이에 대해 백악관측과 미중앙정보국(CIA) 역시 이미 신뢰성이 없는 정보라고 인정한 바 있으며, 모하메드 엘 바라다이 국제원자력협회(IAEO) 회장 또한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시도와 관련된 문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비난했다.
[셋. 후세인 명령만 떨어지면 45분 안에 생화학무기를 실전 배치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하원에서의 연설에서 이라크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후세인의 명령만 떨어지면 45분 안에 즉각 생화학무기가 실전에 배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블레어 총리는 당시 영국 정보기관의 문서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넷.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이와 같이 주장하며,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지었다. 그 후에도 줄곧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국 내의 긍정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이라크 어느 곳에서도 아직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유엔 사찰단을 비롯해 1천4백 명의 이라크 조사위원회가 추가로 파견되어 이미 걸프전 때 파괴되었던 생화학무기 공장을 조사하고, 무기과학자들을 탐문했지만 이라크가 진정한 ‘악의 축’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진 못했다.
[다섯. 이라크는 생물학 무기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
지난 2월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폐사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이라크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촉구했다. 당시 파월은 감청 자료, 위성 사진 외에도 작은 유리관 하나를 증거물로 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라크가 개발중인 병원체라는 것이었다.
“후세인은 현재 페스트, 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황열병 등과 같은 전염병을 살포할 생물학 무기를 연구 개발중이다”는 것이 당시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파월은 연설 전 이미 이 증거물이 ‘조작된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측근에 의하면 연설을 시작하기 전 초고를 읽어본 파월은 버럭 화를 내면서 원고를 집어 던졌고, “난 못해. 이런 망할…”이라며 분을 삭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월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짜여진 각본을 앵무새처럼 성공리에 낭독한 파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조사단은 여태 생물학 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섯. 이라크는 사거리가 150km가 넘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유엔은 이라크에 대해 사거리가 1백50km가 넘는 미사일을 보유할 경우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돌연 지난해 미국과 영국은 일제히 “이라크가 사거리 1백50km가 넘는 미사일을 제조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유엔 결의안에 저촉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미정보기관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이라크는 사거리가 6백50km에 달하는 ‘알 후세인’ 미사일을 비롯해 무려 9백km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파괴력의 ‘알 아바스’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전 이라크를 방문했던 유엔 사찰단은 실제로 사거리가 2백km에 도달하는 사무드 미사일 약 1백20기를 발견했고, 이를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 정부는 즉각 사무드 미사일을 모두 폐기했으며, 그 후 유엔 사찰단과 미군은 이라크 어느 곳에서도 유엔 결의안에 저촉되는 미사일을 찾지 못했다.
[일곱. 미군은 이라크전에서 집속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
미군은 전쟁 발발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전에서 사용할 폭탄, 로켓, 순항 미사일 중 80% 이상은 ‘정밀 무기’가 될 것이다. 이로써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축구장 크기의 면적에 수백 개의 소형폭탄을 흩뿌릴 수 있는 치명적인 집속탄을 사용할 경우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군이 이라크 전쟁 중 투하한 2만9천1백99개의 폭탄 중 ‘정밀 무기’였던 것은 단 68%인 1만9천9백48개에 불과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폭탄 열 개 중 세 개는 집속탄이었으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1천5백 개를 더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영국군의 경우에는 바스라 인근 지역에만 무려 2천 개 이상의 집속탄을 집중 투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는 현재 이라크에 약 9천 개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집속탄이 제거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민간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덟. 제시카 린치는 미국의 영웅이었다? ]
이라크 전쟁 당시 영웅으로 떠올랐던 제시카 린치 일병의 극적인 구출기는 당시 미군을 비롯한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미 특수부대에 의해 구출되는 전 과정이 카메라로 생생하게 녹화되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흥미진진했던 것이 사실.
국빈 대접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린치 일병은 아직도 여전히 ‘미국의 영웅’으로서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미국 내에서는 “모두 미군이 만들어낸 조작극이었다. 애초부터 영웅은 없었다”는 ‘의혹’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린치 일병을 치료했던 이라크의 의사, 간호사,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에 들어갔던 <워싱턴 포스트>는 결국 린치 일병과 관련된 기사는 모두 ‘오보’였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린치 일병은 이라크군과의 총격전으로 부상을 입은 게 아니라 순찰 도중 미군 장갑차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출혈이 심했던 것이며,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어떻게 해서든 미군부대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의료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급기야 이 소식을 접한 미특수부대가 병원으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미군이 도착했을 당시 병원 안에는 이라크군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극적인 구출 작전이란 아예 있을 수 없었다.
더욱 우스운 사실은 당시 카메라를 들고 녹화를 했던 사람은 할리우드에서 재빨리 날아온 전문 카메라맨이었다. 바로 전쟁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보조로 일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아홉. 개전 첫날 미군은 후세인의 벙커를 명중시켰다? ]
이라크 개전 첫날이었던 지난 3월20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후세인과 측근들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통령궁의 지하 벙커를 맹폭했다”고 발표하며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 무너지는 후세인 동상. | ||
폭격에 의한 커다란 구멍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CBS는 “‘족집게 폭격’ 운운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대통령궁의 본 건물은 거의 폭격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주변 건물들만 파괴되었다”고 밝히며, 만일 후세인이 본 건물에 있었더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열. 이라크인들은 자발적으로 후세인 동상을 제거했다?]
종전이 선포되자 거리로 뛰쳐나가 환호하던 이라크인들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방영되어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특히 힘을 모아 바그다드 시내 중심부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후세인 동상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두 미군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종의 ‘쇼’. 이 극적인 ‘쇼’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인원은 대략 1백여 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미군은 장갑차로 광장 진입로를 폐쇄해 더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따라서 TV 속 당시의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의외로 광장 주변이 한산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또한 이들 중에는 실제 이라크 주민보다 각 방송사 및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