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단독회동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친이 진영은 이날 회동 이후 박 전 대표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번 회동에서만큼은 박 전 대표가 너무 심했다. 어떻게 언론 앞에서 ‘청와대가 검찰에 매일 전화를 넣고 있다는 얘기를 이 대통령에게 했고, 이 대통령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알아보겠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브리핑이랍시고 말할 수 있나. 당 대표까지 지낸 분이 할 수 있는 말은 전혀 아니라고 본다. 친박 측에서는 우리들을 욕하지만 사실 이번 회동 끝나고 박 전 대표의 브리핑 내용을 보면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친이계의 한 수도권 의원은 지난 10일 ‘이-박 회동’ 이후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파 간 신경전에 대해 사실상 친박 측의 ‘도발’로 인해 친이 측이 인내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친이계 인사들은 사실 당의 화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박 전 대표라고 지목하고 있다. 쇠고기 협상 파문과 경기침체 등으로 가뜩이나 정부에 대한 여론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판에 박 전 대표가 오로지 자기 계파를 복당시켜 달라는 목소리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출범한 지 3개월도 안된 이명박 정부를 도와주기는커녕 내부에서부터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심’을 추슬러야 하는 이 대통령으로서도 이 같은 친이계 의원들의 정서를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 의원 4명의 오찬에서 과연 어떤 내용이 오갔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두언, 강승규, 진성호, 정병국 의원 등이 참석자였다.
정병국 의원은 대선 당시 당의 홍보를 총괄 책임졌고, 진성호·강승규 의원은 경선 캠프 때 공보라인에서 일했다. 정두언 의원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이 대통령의 복심(復心). 이날 회동 내용에 대해 참석자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나 계파 간 화합책, 당·정 간 협의시스템 구축, 대국민 홍보기능 강화, 국정쇄신 방안 등이 폭 넓게 논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이들 ‘측근 그룹’들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정국 해법 방안을 모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날 회동을 계기로 앞으로 정국 흐름에 있어 친이 직계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친이계의 경우 어차피 ‘출신 성분’ 자체가 친이 성향이 강한 데다 지역적으로도 앞으로 주요 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덜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친박 당선자들의 조기 복당’ 요구에 대해 미온적인 분위기다.
특히 3선급들의 경우 국회상임위원장 등 주요 보직과 관련, 친박 측이 복당할 경우 ‘밥그릇’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오히려 껄끄러워하는 기류다. 반면 상당수 영남권 친이계는 ‘친박’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박 전 대표의 ‘눈 밖’에 나서는 향후 지역구 관리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점에서 조기일괄 복당 문제에 대해 비교적 유연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편 친이계 내부에서는 최근 들어 계파별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른바 ‘계파 분화’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향후 거취가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 본인과 측근들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1년간 연수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당 안팎에서는 여권 주요 보직 인선에 이 전 최고위원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제 ‘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을 기본 축으로 완성되는 듯했던 당 지도부 인선을 두고도 최근 들어 원점에서부터 재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얘기가 당 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홍준표 의원 대신 정의화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하고, 사무총장에는 안경률 의원이 임명되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즉 ‘정의화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안경률 사무총장’ 라인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선 라인이 바로 이 전 최고위원의 작품 아니냐는 게 당 안팎서 떠도는 소문의 내용이다.
물론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 측은 “견제하려는 측에서 이 전 최고위원을 흔들기 위해 흘리는 엉뚱한 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러한 기류에 맞서 이 전 최고위원 측 공성진 의원은 공개적으로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이 이뤄질 경우 공천이 잘못된 것을 사실상 인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당 지도부가 복당 허용과 동시에 도의적 책임 혹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당 지도부’는 강재섭 대표를 지칭한다. 그동안 이 전 최고위원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온 강 대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당외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라는 커다란 현안 뒤에서 불거지기 시작하는 친이계 내부의 파열음. 여당 내 주류 세력도 계파별로 생존 경쟁을 펼칠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