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1월 도쿄필하모니를 지휘하고 있는 오가 노리오 회장. 그는 음악인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 ||
올해 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오가 회장은 16억엔(약 1백6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퇴직금을 음악홀 건립에 전액 기부하겠다고 공표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고의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오가 회장의 인생은 그만큼 많은 ‘성공 스토리’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오가 회장 역시 아무런 고난과 역경 없이 그런 ‘성공’들을 거머쥔 것은 아니었다.
[3년 앞을 내다보는 눈]
오가 노리오 회장이 받은 ‘퇴직금 16억엔’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거액이다. 하지만 많은 재계인사들과 경영평론가들은 그동안 그가 쌓은 공적을 생각해 봤을 때 오히려 적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오가 회장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그런 말도 무리는 아닌 듯해 보인다.
동경예대와 베를린국립예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오가 회장. 그가 소니의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씨와 모리타 아키오씨로부터 청을 받고 소니에 입사한 것은 1959년, 29세의 일이었다. 이후 오가 회장 개인의 역사는 ‘세계 속의 소니’의 역사와 함께 한다.
입사 후 바로 제조·디자인·홍보 3개의 부서일을 겸한 오가는 ‘SONY’의 로고 디자인을 변경하고 ‘검정색과 은색’을 기조로 한 상품 디자인을 선보인다. 또한 필립스사와 제휴해 카세트테이프의 세계 규격 표준화한다. 그리고 입사 5년째인 1964년, 불과 34세의 나이에 임원의 자리에 오른다.
미국 CBS와 합병해 ‘CBS소니레코드’를 설립하고 1970년 사장으로 취임한다. 이후 오가 사장은 CBS소니레코드를 일본 제일의 레코드 회사로 키워냈다. 1972년 상무의 직함으로 소니 본사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더욱 더 상품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CD(콤팩트디스크)와 MD(미니 디스크)의 규격을 정한 것도 바로 오가 회장이 이끈 소니부대였다.
이러한 획기적인 히트 상품을 계속해서 개발해온 소니는 오가가 사장으로 취임한 1982년 당시 1조엔(약 10조원) 정도였던 연간매출액을 1995년에는 4조엔(약 40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이렇듯 계속해서 히트상품을 개발해온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오가 회장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최근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 보면 ‘자신은 프로덕트 플래닝(상품개발)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상품을 개발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자기 주장을 유창하게 말하지만, 대다수가 말하는 것은 거의 ‘지금 갖고 싶은 물건’들뿐이다.
그러나 ‘지금 갖고 싶은 것’을 만든다면 다른 회사보다 앞서는 상품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뛰어나더라도 몇 개월 안에 다른 회사가 모방을 해버리기 때문에 진정한 히트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 회장은 자주 나에게 ‘다른 회사의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즉 다른 회사가 흉내낼 수 없는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흉내낼 수 없는 상품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상품의 스탠더드(표준규격)를 자신이 직접 정하거나, 아니면 추격을 허용치 않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는 것이다.”
뛰어난 상품 개발이란 3년 뒤, 5년 뒤까지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말한다. 앞으로 2∼3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내다보고 시장을 그쪽으로 이끌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기획부터 시작한 신상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적어도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면, 2년 후에는 이미 진부한 것이 돼 버린다.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고 3년 뒤, 5년 뒤의 시장을 내다보고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 오가 회장의 지론이다.
[왜 CD는 12센티일까]
1970년대 후반 전세계는 LP 레코드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그 무렵 이미 음반업계에는 디지털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소니는 필립스와 공동으로 최첨단 음향기술의 집약체인 CD의 규격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필립스는 당시 LP 레코드와 마찬가지로 녹음시간은 한 시간으로 하고, 크기는 카세트테이프 대각선과 거의 동일한 사이즈(11.5cm)로 하자고 주장했다. 오가 회장은 필립스측에 “‘한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새로운 규격인 이상 미래에 이 제품을 사용해 음악을 듣는 고객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클래식 음악의 경우 중요한 교향곡이나 오페라는 적어도 1막 정도는 녹음할 수 있는 규격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오가 회장은 당시 LP 레코드로서는 수록할 수 없었던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을 비롯해 주요 악곡의 연주시간을 조사해 봤다. 그러자 대개 직경 12cm 디스크가 필요한 74분 정도만 있으면 전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오가 회장은 기업쪽과 기술자의 사정만으로 규격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필립스측에 주장해 최종적으로 현재 CD 사이즈와 녹음시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상품이란 논리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카세트테이프를 대신하는 기록매체로 지금은 전세계 생산량이 10억 장이 넘어가고 있는 MD 또한 마찬가지로 소니가 독자적으로 규격화한 상품이다. CD 규격을 결정할 때 타사와의 조정이 어려웠던 것을 감안해 MD의 규격은 오가 회장을 비롯한 세 명이 결정하게 됐다.
오가 회장은 당초 지름 8cm를 주장했다. 그런데 기술진 한 명이 8cm로 만들면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아무리 커도 6.4cm를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반론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크기가 작으면 매장에서 도난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레코드 회사나 판매점이 곤란하다는 것을 기술진에게 설득, 마침내 오가 회장이 주장한 크기로 결정되었다.
이렇듯 오가 회장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느라 개발이 늦어지는 것보다 자신이 솔선해서 생각하는 쪽을 선택해 왔다. 그는 경영자는 자신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아래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믿었다.
▲ 전임 오가 노리오 회장(왼쪽)과 새 회장으로 등 극한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 | ||
오가 명예회장은 자신은 상사로서 무서운 편은 아니였지만 부하들에게 시간만은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CBS소니 사장을 맡고 있을 때, 그가전직원에게 우선 먼저 한 일은 최신형 수정 발진식 시계인 쿼츠시계를 배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회의 시간에 1분1초라도 늦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의사표현이었다. 그 결과 회의가 시작하기 2분 전에는 모든 직원들이 자리에 와서 회의를 준비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부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을 이해한 뒤 누구를 채용하고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들이 가진 개성을 잘 끌어낼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장의 특권이 아니겠냐는 말도 살짝 덧붙였다.
오가 회장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자네에게 이 일을 맡기네” 또는 “그에겐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이 일을 맡겨서는 안되네”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것도 빼먹지 않고 알려주었다.
지금은 연간 1조엔(약 10조원) 규모의 매상을 올리고 있는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개발에도 사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젊은 담당책임자 구타라기 겐(현 소니 부사장)을 발탁해 사업화에 허락사인을 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일화 중 하나다.
사업화 전까지는 경영진 사이에서도 소니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견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러자 구타라기씨는 임원회의에서 “이대로 플레이스테이션 개발을 그만둔다면 소니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며 대항했다.
상품개발을 담당하고 있던 우수한 인재 구타라기가 그 정도까지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오가 회장은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허락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사장이 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움직일 수는 없다. 오가 회장은 그럴 때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사정과 자신의 생각을 임원과 사원을 대상으로 편지를 보내 이해를 얻어냈다고 한다.
[편의점 주먹밥을 좋아해]
오가는 사장 취임 후 도쿄필하모니 교향악단과 베를린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등 음악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밖에도 비행기와 선박 조종면허를 취득하는 등 폭넓은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가 회장은 현재 일곱 종류의 비행기면허와 소형선박1급 면허를 가지고 있다. 이 면허들을 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오가 회장은 원래 기계를 괴롭히는(?) 것이 자신의 취미라고 한다. 그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단지 회사만 다니는 인간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늘 강하게 갖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머리는 쓰지 않으면 나빠진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머리를 혹사시켜서 마이너스될 일은 하나도 없다고 믿고 살아왔다. 직접 비행기나 선박을 조종할 때 끊임없이 머리를 쓰기 때문에 이런 취미들은 자신에게 플러스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오가 회장은 카메라를 모으는 취미도 갖고 있다. 골동품에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라이카와 롤라이 카메라는 최신기종이 나오면 모두 살 정도로 상당한 마니아라고 한다. 집에서 시간이 날 때는 기분전환 삼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곤 한다.
최고경영인인 오가 회장이 좋아하는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편의점 주먹밥이다. 처음 요트를 탈 때 누군가 주먹밥을 사왔는데 그때 맛을 본 이후로 반했다고 한다. 지금도 요트나 비행기를 탈 때는 항상 빼놓지 않고 주먹밥을 챙겨가지고 다닌다.
오가 회장은 소니라는 거대한 기업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비행기관련 면허를 따고 카메라를 손질하는 등 일과 취미를 조화롭게 양립시켜 왔다. 그 비결은 음악이든 뭐든 취미를 비즈니스와 잘 연결해서 사용한다는 것.
오가 회장은 매일 새벽 2시경에 일단 한 번 일어나서 악보를 암기하거나, 면허책을 본 뒤 다시 아침까지 자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그는 특히 술을 마시고 취해 있는 시간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가 회장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이런 오가 회장은 얼마 전 퇴직금 16억엔을 전액 음악홀 건설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해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자식도 없기 때문에 평소부터 퇴직금을 받으면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가 회장은 지금은 비교적 돈에 대해 자유로운 자신을 포함한 60대 이상 소비자를 위해 진정 그들이 가지고 싶었던 상품을 만들거나, 실버세대가 기뻐할 상품개발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품을 생각해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소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