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인권센터(소장 장신중 전 총경)가 지난 1월 1만 2000여 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2017년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공약사항, 경찰 조직 내부에서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과제’ 설문조사에서 직장협의회 구성이 1위를 차지했다.
“소방·경찰공무원의 노조 설립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직장협의회 정도는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할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1월 26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소방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직협 설립을 언급했다. 문 전 대표의 발언 직후 그동안 ‘소수의 목소리’로 치부되던 경찰 직장협의회(직협) 구성 주장에 불이 붙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물론, 지난 3월 22일엔 경찰개혁 관련 국회의원 주재 토론회도 열리면서 직협 설립 찬반에 대한 의견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다.
공무원 직협은 기관별로 결성된 노사협의체 개념의 기구다. 일반적인 노동조합이 가진 파업 등의 단체행동권은 없지만, 공무원들은 직협을 통해 소속 기관의 장과 근무환경개선‧업무능률향상‧고충처리 등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직협 설립이 경찰‧소방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현행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6급 이하 일반직 등 공무원은 공무원직협을 만들 수 있으나 경찰과 소방 직종만은 특수성을 고려해 설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 내‧외부에서 직협 구성에 대한 목소리는 과거부터 꾸준히 나왔다. 각종 위험에 노출된 데다 근무 강도도 높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직협 설립을 추진하는 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그치면서 본격적인 논의도 되지 못했다. 법 개정 움직임도 있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경찰 내부에선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와 달리 경찰 직협 구성에 대해 대선 예비후보는 물론, 국회의원들의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직 경찰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고 있다. 경찰인권센터(소장 장신중 전 총경)가 지난 1월 1만 2000여 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2017년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공약사항, 경찰 조직 내부에서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과제’ 설문조사에서 직장협의회 구성이 1위(28.5%)를 차지했다.
직협 설립에 찬성하는 이유로 “소방 및 경찰공무원들에게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권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단순히 근무여건이나 처우개선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내부 소통 창구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내부 소통 장치로는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한 일선서의 A 경장은 “현재 경찰 내부 소통 창구는 청문감사관실로 통한다. 익명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간단한 건의 말고는 다른 문제제기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부하 직원에게 회식 후 대리운전을 시킨다거나, 개인적 업무를 맡기는 등의 불합리한 지시부터 지난해 부하직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자 보복성 인사조치를 했던 용산서장의 경우와 같은 상사의 비위 사실을 부하직원이 감사관실에 알린다는 건 경찰 내부 문화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결국 언론 제보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 기관에 눈길을 보내게 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윤회 문건 파동에 휩쓸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고(故) 최경락 경위와 무리한 감찰 논란에 휩싸인 동두천경찰서 고(故) 최혜성 순경의 사례도 직협 구성에 힘을 싣는다. 서울의 한 경찰서의 B 경위는 “두 사람 모두 혼자 고민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건의 진위를 엄격하게 가리더라도, 다른 기관들처럼 자신이 겪은 일을 토로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있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협 구성은 최근 탄력이 붙은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도 등장한다. 지난해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검찰 전‧현직 고위 인사들의 비위 문제 등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다.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도 수사권 조정을 공약에 포함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면서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사’를 큰 틀로 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직협 구성 주장은 여기서도 등장한다. 그간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반대해 번번이 무산됐다. 국가 경찰의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된다면 ‘경찰 파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경찰 내부에선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해법으로 직장협의회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에 앞서 경찰개혁이 선행돼야 하고, 이 개혁은 직협 설립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게 직협 설립 찬성 측 주장이다. 서울의 또 다른 경찰서의 C 경위는 “경찰은 고(故) 백남기 농민 사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의 사례만 보더라도 ‘권력에 흔들린다’는 비판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받아왔다”며 “이번에 추진하는 경찰 직협은 권력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내부 견제‧균형을 위한 장치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경찰 내부의 지휘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지난 2월 21일 국회 행정안전소위에서 경찰 직협 구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는데, 이날 김성렬 행자부 차관은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직협이 구성되면 일괄적인 지휘통제가 안되느냐?”는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김 차관은 “직협 설립 후 여러 협상 과정에서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갈등구조가 불가피하게 예견되고, 조직관리가 어려워지는 부담이 있다”며 “경찰청과 국민안전처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행자부에 제출한 상태”라고 대답했다.
이 과정에서 출석 요구와 발언 기회도 없었던 경찰청 복지정책과장이 “경찰관들을 위한 복지정책들을 광범위하게 수행하는 등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고 돌발 발언을 했다가 진선미 더민주 의원이 호통을 치기도 했다. 진 의원은 “경찰 지도부와 관련한 문제부터 경직되고 소통 안 되는 것에 대해 십수 년간 지적이 이어지는 데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복지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청에서 복지정책 홍보하는 게 맞느냐”고 지적했다.
직협이 정치세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일선 경찰서의 D 경감은 “경찰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 ‘노조’ 성격이 짙은 직협이 설립되면 자칫 경찰 조직이 정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은 법 집행을 위해 엄격한 상명하복을 하는 조직인데, 정치적 문제에 따라 지시를 따르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직협은 경찰 지휘부와 다투기 위한 기구가 아니다. 경찰 조직의 발전이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내는 소통과 대화의 창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직협 설립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