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지검에서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법정에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2월 28일 뇌물공여 등 5개 혐의로 특검에 의해 기소된 그는 3월 9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오는 4월 7일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간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공판준비기일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정식 공판부터는 참석해야 한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줄 것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4월 첫째 주 공판 시작’을 강조했고 동시에 ‘매주 2~3회 심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속도전까지 예고했다. 특검법을 보면 기소일을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1심 선고를 내려야 한다. 법조계에선 “기한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많지만, 재판부가 밝힌 앞서의 ‘입장’을 볼 때 5월 말에는 이 부회장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 이재용 측, 경영권 승계 의혹 방어 주력
이번 사건에서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총 5개다. 이 가운데 핵심인 뇌물죄 및 특가법상 횡령 등 4개 혐의는 삼성 경영권 승계 특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은 앞서의 경영권 승계 특혜 의혹만 해소하면 이들 4개 혐의가 한꺼번에 벗을 수 있다.
구속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실제로 이 부회장 측은 이번 재판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삼성 경영권 승계가 관련이 없음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지난 1월 19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의견이 재배적이다. 당시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 사유로 “뇌물범죄 요건 관련 소명 부족.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특검은 한 달 동안 이 부회장의 범죄혐의를 ‘다시’ 구성했다. 이번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배경에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가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지난 2월 17일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보강 수사 결과를 토대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SDI 주식 처분 배려 의혹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대로 이 부회장 측 입장에선 특검이 새로 구성한 논리만 방어하면 재판의 흐름을 영장 기각 당시로 되돌릴 수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 측은 지난 3월 9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특검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반했다”며 공세에 나섰다. ‘공소장일본주의’란 공소장 이외의 자료는 법원에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소 내용과 관계없는 자료를 제출해서 법관에게 편견을 심는 걸 막자는 취지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과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등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까지 공소장에 포함시켜 재판 시작 전부터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굳히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또 공소장에 최근 해체된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등장한 점도 지적하며 “미전실이 마치 범죄집단인 것처럼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계 없는 이 부회장을 둘러싼 각종 편법 승계 의혹 등이 공소장에 추가돼,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부회장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서초사옥. 사진=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또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청탁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주장도 주요 전략 중 하나다. 이 부회장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청탁과 관련한 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이 관련인의 진술이나 기록 등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부회장에 대한 첫 영장청구가 기각됐을 당시 주요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며 “박 전 대통령이 최근 구속됐지만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한 만큼 이 부회장 측의 전략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문제와 다소 거리가 있는 청문회 위증죄의 경우도 이 부회장이나 최순실 씨가 “서로 알고 지냈었다”고 자백하지 않는 이상 입증이 쉽지 않다. 이 부회장 측의 전략대로 재판이 이어진다면, 이 부회장은 기존부터 취해온 ‘강요죄 피해자 입장’으로 미르재단 출연금 의혹과 최순실-정유라 모녀 지원 의혹 등을 방어할 수 있다.
# 박vs이 “협조냐 대립이냐”
지난해 게이트 관련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검찰 특수본과 특검 수사의 최종 목적지는 박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최순실-이재용 부회장’의 삼각고리에서 사실상 몸통을 박 전 대통령으로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3월 31일 오전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구속 피의자’가 됐다. 형사소송법상 최장 20일 동안 구속할 수 있기 때문에 검찰 특수본은 그 기간 안에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구속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이 4월 중순에는 ‘구속 피고인’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지난 3월 30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핵심인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총 13개다. 박 전 대통령은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영장실질심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검찰이 공모 관계에서 ‘핵심’으로 보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법조계에선 검찰 측의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경제공동체’”라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향후 재판에서도 검찰 주장이 상당히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생겼다는 의견도 많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수사와 재판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앞선 검찰 수사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주장한 내용과 대국민 담화, 인터뷰 등을 모두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 국가와 경제발전을 위한 선의의 의도였다는 점, △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 △ 최순실 씨와 참모진의 비위를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하더라도 한발 물러서서 일부 혐의만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며 “먼저 구속됐거나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피의자들의 진술과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주장 사이에서 허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최대 관건은 이 부회장과의 두 차례 ‘독대’에서 오간 대화 내용의 진술 여부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뇌물죄에서는 협력해야 하고, 강요죄에 있어서는 대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서로 공모하지 않았다거나 대가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은 ‘강압’에 의해 거액을 출연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독대와 관련한 내용에서도 비슷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 넘겨지면 뇌물죄는 물론 강요죄도 방어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진술하지 않은 독대 내용까지 진술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독대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이 있었다고 가정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이 부회장이 못하도록 하는 카드로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아무리 독대 자리라도 이 부회장이 현직 대통령에게 직접 청탁을 넣으며 감히 ‘거래’를 시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면 박 전 대통령이 폭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이 경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검찰은 물론, 상대방 측과도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 재판 곳곳에 ‘변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엔 다양한 변수도 존재한다. 첫 번째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다. 앞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뇌물죄를 전면 부인했고,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이나 관계자들의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최종선고기일에 참석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관련자들의 진술과 안 전 수석의 수첩을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결정문에서도 앞서의 증거들로 박 전 대통령의 파면사유가 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향후 열릴 박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증거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다시 필요하지만, 적어도 ‘증거 무능력’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진 셈이다.
또한 헌재 판결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에 각각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 판결과 형사재판 판결이 비슷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 부회장의 경우엔 다른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의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가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의 기업 재산권 침해’를 지적했다. 그동안 ‘피해자’라고 강조한 이 부회장 측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초동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핵심인 ‘경영권 승계 특혜 의혹’은 헌재가 언급하지 않았다. 형사재판이 헌재 결정과는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보다 먼저 열린 최순실 씨와 장시호 씨,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재판이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재판 등 다른 피의자들의 재판 경과나 결과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재판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검찰은 최 씨 재판이나 문 전 장관 재판 등의 경우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인 뇌물죄 의혹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부에 사건 병합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한 상태다.
삼성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 비선실세 최순실(앞줄 오른쪽 첫번째)과 최 씨의 조카 장시호(앞줄 왼쪽 첫번째),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앞줄 오른쪽 세번째)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최 씨의 경우 이미 4개월 넘게 재판을 받으면서 증거조사가 상당 부분이 이뤄진 상태라 실제 병합이 될지는 미지수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기간을 고려해 4월 중순께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5개월 가까이 심리 기간에 차이가 난다. 각각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 씨가 서로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 관계임에도 병합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나 최 씨가 서로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재판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