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당선자의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인선을 두고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비전코리아 국민보고회’에 참석한 노 당선자. 임준선 기자 | ||
21일 인수위 활동 마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인사와 관련해 인선 배경과 검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가 하면 일부 측근들에 의한 ‘깜짝쇼’식 인사 행태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 특히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 측근 그룹들 간에 ‘파워 게임’ 양상이 드러나는가 하면 인선 내용에 대한 민주당과 인수위, 관료 사회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현재까지 발표된 수석 인사에 관료 출신들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노 당선자측이 개혁성을 너무 앞세운 나머지 전문성과 내각과의 호흡 문제를 간과해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대두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해당 인사들이 발탁됐는가다. 현재까지 확정된 청와대 보좌진 중 수석급 이상 인사는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문재인 민정수석-박주현 국민참여수석-정찬용 인사보좌관-이해성 홍보수석 내정자 등 6명.
이 중 비서실장, 정무•민정 수석의 경우 해당 인사들과 노 당선자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지만 국민참여•홍보 수석과 인사보좌관에 대해선 발탁 배경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국민참여수석, 정 인사보좌관내정자의 경우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엔 의문이 많지만 그나마 이들이 시민단체 출신이란 점을 들어 ‘개혁성 강화’차원에서 공감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해성 홍보수석의 발탁과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수석 내정자는 널리 알려진 대로 MBC 기자 출신으로 현직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다가 전격 기용됐다. 이 내정자는 과거 노 당선자가 해양수산부 장관 재직시 경제부장을 지냈으며 그 후 <시사매거진 2580> 부장을 지낸 인물.
노 당선자 주변에서는 이 내정자가 과거 MBC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개혁 마인드를 갖춰 새 정부 언론개혁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내정자를 홍보수석으로 적극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 노 당선자 핵심측근 L씨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왼쪽)의 부산인맥과 이광재 당선 자 기획팀장(오른쪽)의 386세력은 노 당선자의 양대측근. | ||
앞서 언급한 6명의 인사들 중 문 비서실장 내정자 등 5명이 서울대 출신이며 비(非) 서울대 출신은 경희대 법대를 졸업한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뿐이다. 이에 대해 노 당선자측은 “개혁성과 충성심, 업무능력을 중심으로 사람을 고르다보니 공교롭게 서울대 출신들이 많아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종전에는 고시 합격 등을 통해 관료사회 등 제도권에서 커 온 ‘양지형’(陽地型) 서울대 출신들이 중용되더니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의 ‘음지형’(陰地型) 서울대 출신들이 이를 대체할 모양”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관료 배제’ 경향에 대한 정부부처 관료들의 불만도 눈여겨볼 대목.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직자(1급)는 “노 당선자측이 청와대 비서실의 개혁성 강화를 명목으로 관료들을 배제한 것은 청와대와 정부부처 사이의 유기적 협조관계 구축에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향후 내각 인선에서도 ‘관료=비개혁’이란 논리가 적용될 경우 관료사회 전반이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며 깊은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수석급 인사를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비서관 인선 후유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가다. 특히 노 당선자측 ‘386측근’과 ‘부산 인맥’의 대거 입성, 홍보 라인(대변인-해외 담당 부대변인) 인선 배경 및 ‘민주당 출신 홀대’에 대한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 핵심 측근들 간의 ‘알력설’까지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중 노 당선자가 “나 개인뿐 아니라 역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들이 저지른 일 모두에 대한 최종 책임을 내가 지겠다”며 청와대 동반 입성을 예고해 온 ‘젊은 측근’그룹에서는 이광재 당선자 기획팀장이 권한과 역할이 막강해진 국정상황실장에 내정된 것을 비롯해 △서갑원 의전 △윤태영 연설담당 △배기찬 정책관리 △천호선 국민참여기획 △김만수 보도지원 비서관(춘추관장) 등이 내정됐다.
▲ 이병완 인수위 간사 | ||
‘부산 인맥’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를 정점으로 노 당선자가 ‘정신적 형제’라 지칭한 이호철씨가 민정1비서관에 기용됐고 이밖에 △박재호 정무2 △최도술 총무 △안봉모 통치사료 비서관 등이 내정됐다. 이광재 팀장의 처남인 이정호 부경대 교수도 비서실 내 태스크포스팀의 팀장을 맡을 예정.
노 당선자측의 양대 인맥을 형성하는 이들 두 그룹은 비서관 내정 과정에서 독자적인 인선작업을 벌이며 서로 ‘힘 겨루기’ 양상을 보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산인맥의 ‘투 톱’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수석 내정자와 이호철씨가 인사와 직결된 민정 라인을 장악하고 인사보좌관 자리도 문 내정자가 강력천거한 정찬용씨가 맡으면서 이광재 팀장을 축으로 한 386그룹과의 긴장관계가 한층 고조됐다는 후문.
두 측근 그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대체로 싸늘하다. 특히 민주당의 한 중간 당직자는 “노 당선자가 인사에 개혁성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실제 청와대 비서진 인선 내용을 보면 능력보다는 노 당선자와의 개인적인 관계, 지난 대선에서의 역할에 따른 ‘논공행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 “특히 인선 과정에서 보여준 일부 측근들의 행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인수위 주변에서는 노 당선자 측근들의 ‘인사 전횡’에 따른 희생자로 우선 이병완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와 김현미 당선자 부대변인을 꼽고 있다. 이 간사의 경우 인수위에서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핵심역할을 맡아 정책수석 물망에 오르는 등 중용이 예상됐지만 위상이 훨씬 떨어지는 정책기획조정 비서관에 낙착됐다.
한국일보 경제부장 출신인 이 간사는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국정홍보조사비서관을 역임한 데다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 정책위 상임부의장을 지낸 경력으로 볼 때 386측근들의 ‘과대 평가’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당초 대변인으로 확실시되다가 이 보다 급이 낮은 국내언론 1비서관에 내정된 김 부대변인은 인사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한때 잠적하기도 했다.
김 부대변인은 대변인에 KBS 아나운서 출신인 송경희씨가 확정 발표되자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를 찾아가 “내가 대변인이 안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의 인사는 안된다”며 울분을 토한 후 한동안 인수위에 발길을 끊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송 대변인 내정자의 기용에 노 당선자의 386 측근인 L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 한 관계자는 “대선 승리에 아무런 기여도 없었고 내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노 당선자의 국정철학에 대해 ‘(노 당선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나중에 말하겠다’고 말한 사람을 다른 자리도 아닌 대변인에 기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일부 당선자 측근들의 행태와 과거 동교동계의 전횡이 뭐가 다르냐”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조각 과정에서도 청와대 인사에서처럼 뚜렷한 원칙없이 특정 그룹의 전횡이 계속된다면 새 정부 출범 초부터 국정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