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장의 구주류측 한화갑 대 표와 정균환 최고위원.임준선 기자 | ||
한 대표는 천 간사의 보고를 받으며 “이것이 개혁신당(개혁국민정당을 잘못 지칭) 안과 같은 것이냐”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한 대표는 천 간사가 “유시민당을 말하느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답한 뒤 “이 안이 통과되면 우리가 처음 시행하게 된다. 유시민 당도 그 같은 안을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혁안의 급진성을 비판했다.
이어 한 대표는 개혁안 당무회의 통과 직후 현 지도부 권한이 정지되고 임시지도부를 당무회의에서 선출토록 한 규정과 관련, “당무회의에서 지도체제를 바꾼 예가 정당사에 없다”며 “직선 최고위원들을 당무회의에서 정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정균환 총무도 “특위가 고생을 많이 했으나 내용이 비현실적이다”며 “특히 어느 시점을 정해놓고 통과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위험한 발상이다”고 가세했다. 치밀한 논리를 자랑하는 박상천 최고위원도 “이같이 혁명적으로 당의 기본질서를 바꾸는 당헌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은 당무회의 위임사항이 아니며 특히 총선 승리를 위해 지구당위원장 폐지안은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현재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신기남, 추미애 최고위원이 대선 직후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며 사퇴하고 문희상 최고위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이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8명의 최고위원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중 정대철 최고위원을 제외한 한 대표, 한광옥, 박상천, 이협, 김태랑, 이용희, 정균환 최고위원은 모두 구주류로 분류된다.
이들 구주류 최고위원들이 현재 당내에서 노 당선자의 신임이 제일 두텁고 이번 당 개혁안을 주도한 천 의원을 포위한 채 무차별 공세를 퍼부은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4월 재•보선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강화특위를 구성키로 하고 위원장에 이용희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또 인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김태랑 최고위원을 인선했다. 만약 신주류측 계획대로 19일 당무회의에서 당 개혁안이 통과되면 현재의 지구당위원장은 자동적으로 권한이 상실되고 당무회의에서 지구당에 임시 운영위원장을 임명하게 된다. 따라서 사고지구당의 조직개편을 위한 조직강화특위 구성은 사실상 불필요한 상태다.
또 중앙당 조직 역시 대폭 축소되고 원내정당화를 위해 조직이 개편되는 만큼 인사위원회도 다른 차원에서 구성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최고위원회의는 조직강화특위와 인사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향후 신주류 당 개혁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한 대표의 경우 당 개혁안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는 25일 노무현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를 포함, 구주류 최고위원들이 이날 이같이 신주류에 대한 대반격에 나서자 당내에서는 구주류의 신주류에 대한 ‘선전포고’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구주류의 반격은 사실 신주류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김원기 당개혁특위원장은 지난 12일 아침 신주류 핵심인사들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조찬회동을 갖고 이틀 전 확정된 개혁안의 당무회의 처리 문제를 협의했다. 이 자리에는 정대철 최고위원, 추미애, 장영달, 이해찬, 정세균, 이상수, 이호웅, 이강래, 김희선 의원과 원외위원장인 이강철 개혁특위 위원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정대철, 이상수, 이호웅 의원 등이 지구당위원장제 폐지 등 일부 개혁안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회의는 엉뚱하게 전개됐고 결국 수정안 마련을 위해 개혁특위 전체회의를 다시 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해온 천정배 의원은 노무현 당선자의 긴급호출로 회의에 불참했고 이해찬 의원은 노 당선자의 중국특사 자격으로 출국하게 돼 회의 도중에 일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 지난 3일 민주당 당개혁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천정배 간사(왼쪽)와 김원기 위원장. | ||
그러나 천정배 의원 등 강경 개혁파는 즉각 “대권을 노리는 사람은 개혁안에 찬성하고 당권을 염두에 둔 사람은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당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정 최고위원 등이 지구당위원장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개혁안 수정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주류 내부에서 이견이 노정되자 ‘개혁’이란 명분에 밀려 목소리를 낮춰온 구주류와 당료들의 반발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당장 민주당 부위원장단들로 구성된 ‘당 개혁안 개선투쟁위원회’ 50여 명은 13일 집단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부위원장들의 존재를 말살하는 개혁안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앙당의 충성스러운 조직을 와해하려는 저의가 있다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무당직자들로 구성된 민주당 상조회도 13일 오후 천정배 간사와 집단 면담을 통해 당 개혁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급조된 듯한 ‘한화갑을 사랑하는 사람들’(한사랑)이란 조직까지 등장, “한 대표 등 지도부는 차기 전당대회까지 책임지고 당을 이끌라”며 한 대표의 조기퇴진에 반대하고 나섰다.
당 하부조직의 동요가 가속화되자 마침내 이훈평, 박양수 의원 등 당내 구주류 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의원 등은 “조만간 대규모 모임을 갖고 당개혁안 수정안을 만들어 당 지도부에 제출할 것”이라며 ‘행동’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구주류측은 당 개혁안이 소위 ‘살생부’에 역적으로 규정된 인사들의 물갈이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구주류로서는 개혁안을 수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구주류측 한 인사는 “신주류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그러나 구주류가 단합한다면 세력에서는 여전히 신주류를 앞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주류의 한 중진의원은 “신주류가 당개혁안 저지를 빌미로 신당 창당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의원은 “1백3명의 의원 중 80%를 이끌고 탈당하더라도 당을 장악하고 있으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무난하고 국고보조금(대선 당시 득표율 등의 기준)도 1백20억원대에 이른다”며 민주당이 이처럼 분당되면 구주류 주축의 민주당은 차기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유지할 수 있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여권이 분열돼 한나라당에 참패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뒤질세라 신주류측도 세결집을 통한 맞대결에 나섰다.
재야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 집행위원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최근 민주당 개혁특위가 확정한 상향식 공천, 지구당위원장제 폐지, 새로운 지도부 구성 등을 골자로 한 당 개혁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15일에는 개혁성향의 원내•외지구당위원장 10여 명으로 구성된 ‘젊은희망’ 회원 10여 명도 광주에서 워크숍을 갖고 당 개혁안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처럼 당 개혁안을 둘러싼 내분이 신주류와 구주류 간 세대결로 확대되자 노 당선자측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이미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13일 이상수 총장 등 당 소속 의원들과 접촉, 당 개혁안을 둘러싼 내분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원만한 타결을 요청했다. 대선기간중 노 당선자의 정무특보를 맡았던 염동연씨도 이날 의원회관의 민주당 의원실을 돌며 ‘원만한 해결’을 강조했다.
신주류의 중진들도 18일 재차 모임을 갖고 당 개혁안의 수정문제에 대해 최종 입장을 정리키로 했다. 이들은 지구당위원장을 폐지하는 대신 총선 6개월 전 지구당위원장들이 일괄사퇴한 뒤 총선 3개월 전 국민경선을 통해 17대 총선후보를 선출하는 절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구주류측은 대선이후 처음 찾아온 반격의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구주류의 한 의원은 “총선 6개월 전 지구당위원장 일괄사퇴라는 중재안은 물론, 현 지도부 사퇴와 임시지도부 구성 등의 개혁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신주류측이 어중간한 절충안을 내놓고 당무회의 통과를 시도한다면 그간 참고있던 구주류측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열린 개혁포럼’ 참여 의원 수를 62명으로 늘인 신주류와 다시 세결집에 나선 구주류가 당 개혁안 처리를 위한 당무회의를 앞두고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