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함으로서 건강이상설이 기정사실화 됐다. 사진은 지난 2005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창건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 ||
북한 권력 내 최고 핵심인사들의 진료를 전담하는 특수병원인 봉화진료소의 움직임은 김 위원장의 동향을 추적해온 미 첩보당국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곧바로 키홀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KH-11 첩보위성과 대북 감청망을 주축으로 한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보감시망이 가동됐다. 위성사진에 대한 정밀분석과 함께 통신감청 내용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잠정적인 결론은 ‘김정일의 신상에 무언가 중대한 변고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최고지도자의 유고사태에 북한은 다급해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의사 3명을 비자도 없이 불러들였고, 프랑스 전문의를 비롯한 서방 의료진도 은밀하게 초청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던 북한당국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대북 정보관련 인사는 “북한은 김정일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해 체류할 때도 호위사령부(김정일 경호전담)가 대소변을 별도로 처리해 가져갈 정도였다”면서 “중·러 정보기관이 이를 입수해 분석할 경우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난 9월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군사퍼레이드에 김 위원장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그의 중병설은 공식화되어 전세계에 긴급 뉴스로 타전되게 된다.
외국 의사까지 급히 불러
지난 9일 오전 모든 대북정보 시스템은 평양 김일성광장 쪽으로 집중됐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북한이 기념행사를 치르는 시각인 오전 10시가 돼서도 관계당국은 행사 개최 여부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북한은 오후 6시가 돼서야 행사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나라 국회 정보위원회는 김 위원장의 신상과 관련한 비교적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던 의원들의 설명에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김성호 국정원장의 보고는 ‘8월 중순께 뇌졸중을 포함한 순환기 계통 이상으로 쓰러졌고, 일단 회복단계에 있다’는 얘기였다. 또 언어생활에는 문제가 없고 북한을 통치하는 데도 이상이 없다는 정보였다. 군 당국도 북한 군부에 특이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혔고, 추석 연휴를 계기로 사태는 일단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로 흘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쓰러졌다는 것은 북한 내부뿐 아니라 한국에도 엄청난 후폭풍을 던졌다. 특히 김 위원장 이후 북한 체제가 어떤 형태로 갈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아버지 김일성 주석에 이어 절대 권력을 휘둘러온 김 위원장의 유고사태는 남북한은 물론 동북아와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게 분명하다는 점에서다.
정찰은 불치병…정운은 어려
김 위원장의 병세가 비록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권력투쟁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와 관련해 여전히 무게가 실린 건 3대째 부자세습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교할 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김 위원장은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았다. 당시 심근경색으로 인한 갑작스런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권력승계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서는 어떤 이견도 없었다. 74년 공식으로 김 위원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후 무려 20년 동안 황태자로서 제왕학을 배웠다. 그러면서 아버지로부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같은 실질적 권력을 차곡차곡 넘겨받았다.
▲ 김정일의 후계자로 가장 근접한 김정남. | ||
하지만 김정남은 각종 스캔들에 휩싸였으며 특히 2001년 5월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다 발각돼 추방되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나 평소에는 평양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후 북송교포 출신 고영희(2004년 8월 사망)가 낳은 차남 정철(27)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우상화한 북한 내부자료가 공개되면서다. 그렇지만 정철은 호르몬 계통의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정보기관에 포착되면서 북한의 후계 구도는 미궁에 빠졌다. 막내 정운(25)은 김 위원장이 가장 애지중지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너무 나이가 어려 후계자 후보군에 올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국방의 위상 한층 강화돼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쓰러져 정상적인 집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서방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군부에 의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북한에서 그 어느 쪽보다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군부가 북한체제를 떠받치기 위해 나설 것이란 분석에서다. 실제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 군사퍼레이드나 이후의 북한 내부 동향을 보면 군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인상이다. 명목상의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위상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9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회의 위상을 한층 강화했다. 또 모든 부문에서 군을 앞세우는 이른바 선군정치를 통해 군부의 지위를 극대화시켰다. 9·9절에 나온 북한 최고 권력층 면면을 살펴봐도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이용무 차수, 전병호 군수담당 당비서 등은 서열 10위 내에 올랐다.
이들이 집단지도체제로 김정일 권력을 상당기간 유지해 나갈 주도세력으로 보이지만 인민무력부나 평양방어사령부(우리의 수도방위사령부), 일선 군단급 부대 지휘관 등이 주축인 소장파 군부는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군은 구소련 푸룬제군사학교 출신들이 과거 김일성 체제에 반대하는 쿠데타를 모의하다 발각돼 모두 처형된 일이 있다. 또 1990년대 함경도 지역을 담당하던 6군단에서 비리가 결부된 군부의 반발이 일어났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이를 진압하고 군단 자체를 해체해버린 일이 있다. 여차하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 불치병을 앓는다는 소식이 나오기 전 후계자로 거론됐던 김정철. 2005년 말 일본 <주간겐다이>가 공개한 유학 시절 모습이다. | ||
그러나 이런 상황보다는 군부가 김 위원장의 아들 중 한 명을 옹립한 상태로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혼란기를 극복한 뒤 점차 권력을 이양하는 형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서방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김 위원장이 병상에 드러누운 이후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장남 김정남이다. 마카오 등지를 오가던 그는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뒤 급거 귀국해 현재 김정일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남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정에 밝은 서울의 한 소식통은 “김정남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고 활동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남은 해외에 체류하며 한국과 미국 관련 정보나 정세를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일을 해왔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물론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사정까지도 김 위원장에게 직보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김정남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에게 해외에서 수시로 국제전화를 하면서 ‘고모부’라고 깍듯이 대하는 등 관계가 좋은 편이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 한때 ‘장 부장’이란 별칭으로 불린 북한 권력내부의 핵심실세다.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설까지 있던 인물이라 정남에게 든든한 후견인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은 김 위원장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직무에 복귀할 수 없을 정도여서 당장 후계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단기적으로는 김정남이 비교적 유리한 상황일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진통을 피할 수 없겠지만 정보당국의 분석처럼 김 위원장이 적어도 ‘병상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후계체제 문제는 비교적 질서 있게 진행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후계자 논의는 금지” 지시
그러나 권력 문제는 부자간에도 다툼이 있을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일단 현재로서는 북한에서 후계체제 문제가 논의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이런 논의는 자칫하면 통제를 벗어나 엄청난 권력 투쟁으로 발전할 휘발성 높은 소재라는 점에서 누구도 예단하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은 2005년 12월 측근들에게 후계논의와 관련한 일체의 움직임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권력을 조기에 넘겨주면 자신의 실권이 없어질 것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김정일로서는 끝까지 자신이 절대 권력을 거머쥐고 있으려 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지금은 자신도 예상 못한 건강문제로 병상에 누웠다. 후계자를 공개적으로 지명하지 못한 채 유고 사태를 맞은 그의 머리속에는 어떤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북한은 초기 형태의 권력 이양기에 들어섰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아무리 김 위원장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상황이 장기적으로도 김 위원장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어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 주변 사정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북한이 지금 사회 경제적 사정이 최악의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