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민주당 지도부는 9월 8일 김원기 임채정 전 국회의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정대철 전 대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등 중진·원로 인사 12명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한 데 이어 10일에는 이들 고문단과 첫 회동을 가졌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율이 15% 안팎에 머물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감안해 이들 원외 노장들의 풍부한 경륜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복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들 노장들의 정치 재개는 당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꼽히고 있는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의 복귀를 앞당기는 모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실제로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가 내년 4월 재·보선을 목표로 올 연말쯤 정치 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이른바 ‘조기 복귀론’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대선 참패와 4·9 총선 실패로 정치 2선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두 거물의 ‘대망론’ 불씨를 되살리고 있는 ‘조기 복귀론’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는 지난 7월 2일과 6일 각각 미국행 유학길과 대표 퇴임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2선 후퇴 후 연구활동과 지인들을 만나는 등 한가로운 정치적 휴지기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대망론을 포기한 건 결코 아니다.
정 전 장관은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훌륭한 정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 제 나름으로 그림을 한번 그려보겠다”며 ‘대망론’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손 전 대표 역시 퇴임 기자회견을 통해 “당 대표를 맡으며 50년 전통 야당의 생명력, 끈기가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해 자신이 명실상부한 야당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음을 부각시킨 바 있다. 2선 후퇴가 불가피한 정치 현실을 인정하고 잠시 물러날 뿐 정계 은퇴나 대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다만 두 사람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이제 갓 두 달을 넘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가급적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 전 장관은 듀크대에서 강연과 연수외에도 자신의 전문 분야인 통일문제와 공공정책 등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짬나는 대로 학자들과 교포들을 만나 토론을 하는가 하면 본격화되고 있는 미국 대선 정국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복수의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퇴임 후 좀처럼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자택에 머물면서 지인들을 가끔 만나고 틈나는 대로 부인과 함께 지방 사찰 등으로 나들이를 다닌다고 한다. 정치권 측근 인사들과는 이따금 전화통화를 하는데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언급을 자제한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모두 멈춰버린 대권시계를 다시 가동시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이나 명성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최근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를 포함한 중진·원로 인사 12명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면서 두 사람의 향후 정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 지도부가 원외 노정객들뿐 아니라 여전히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두 사람이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고 해서 당장 정계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하지만 차기 대권을 목표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두 사람 입장에서는 정치 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는 점에서 더 없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 손학규 전 대표. | ||
특히 차기 대권주자 등 스타급 얼굴이 없다는 현실은 ‘여권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율을 끌어 올리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를 필두로 정몽준 최고위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스타급 인사들이 차기 대권을 놓고 물밑 경쟁을 펼치면서 보수·기득권 세력의 든든한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이러한 특수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의 ‘조기 복귀론’이 나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기 복귀론’이라는 모처럼 희소식을 접한 양측은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대권 전략을 급수정하는 등 물밑에선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두 사람의 조기 복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당초 두 사람 모두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야인생활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민주당이 처한 어려운 정치환경을 감안할 때 두 거물의 복귀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18대 총선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인사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는 점도 두 사람의 조기 복귀론을 부추기고 있다. 선거사범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와 재판 현황에 비춰볼 때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선은 미니 총선을 방불케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박스 참조).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 진영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두 사람이 4월 재·보선에 출마할 지역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을 정도다.
정 전 장관은 자신의 고향인 전북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주당 김세웅 의원(전주 덕진)과 무소속 이무영 의원(전주 완산)이 1심에서 각각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과 300만 원을 선고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며 재판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정 전 장관의 특보를 지낸 J 씨는 9월 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 전 장관의 고향 지인들과 일부 열성 지지층들이 조기 복귀론을 주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정 전 장관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조기 복귀론을 공론화한다는 게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여러 가지 정치적 변수를 가정해 다양한 대권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의 내년 4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J 씨는 “국민적 요구와 명분이 담보된다면 언제든 정치 일선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정계 복귀 명분과 시점을 결정하는 게 우선이고 재·보선 출마 및 지역구 선택은 선거 분위기와 정치 환경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고 답했다.
손 전 대표 진영은 서울 등 수도권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 선거운동 및 기부행위 혐의로 1심이 진행 중인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수원 장안)의 지역구를 비롯해 재·보선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지역구를 목표로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내년 4월에 치러질 재·보선 지역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출마 여부 또한 불투명하지만 재·보선 지역이 확정되고 두 사람이 출마를 결심할 경우 복귀 시점은 오는 연말쯤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가 이재오 이방호 강재섭 전 의원 등 여권 핵심 실세들이 내년 재·보선에 출마할 경우 그 대항마로 출격할 것이란 섣부른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과의 맞대결 자체가 흥행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다 승리할 경우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는 데 가속도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의 ‘조기 복귀론’이 현실화되고 여권 실세들이 출마를 강행한다면 내년 4월 재·보선은 미니 총선을 넘어 대권 전초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