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 무늬원 전경
[태안=일요신문]육심무 기자 = 5월 중순에 이미 최고 기온 30도를 넘는 폭염이 시작돼 여름 바캉스에 앞서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훅 떠나고 싶은 도시인들에게 푸른 바다와 나무들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사색과 휴식에 더해 자녀들의 산 교육장을 체험할 수 있는 태안 국립공원 구역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을 가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대전~당진 고속도로 개통이후 충남 태안은 수도권과 중부권에서의 접근성이 놀랍도록 향상돼 시간적, 경제적으로 별 부담없이 휴식과 여가활동을 위해 찾을 수 있는 고장이 됐다.
국내 최초의 사립수목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1만5600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 천리포수목원은 57년간의 조성과정 자체가 하나의 극적인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천리포수목원에 알알이 새겨져 있는 설립자의 한국과 나무에 대한 사랑과 수목원의 탁월한 가치 등에 대해 최수진 홍보과장의 도움말로 정리해 본다.
푸른 눈 이방인의 비밀 정원
천리포수목원은 한국전쟁 후 경제적 문화적으로 피폐했던 암울한 상황에서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군 정보장교로 1945년 인천에 상룩한 온 푸른 눈의 이방인 밀러씨가 황량했던 태안의 바닷가 황무지를 57년간 은둔하다시피 살며 고집스럽게 일구어낸 비밀의 정원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정보장교로 인천에 첫 발을 디딘 독일계 미국인 카알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한국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못한 1962년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결심을 하고 충남태안군소원면 천리포 해수욕장 인근의 토지를 매입했다.
지금의 천리포수목원은 1962년 부지를 매입 할 당시에는 해송 몇 그루만 자라고 있던 황량한 곳으로 한 삽만 흙을 파도 흙에 섟인 염분의 농도가 짙어 잡초 조차 자라기 쉽지 않은 황무지였다.
희귀식물원
지금은 태안반도 일원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안면도의 해송 숲과 사구 등 자연환경 보호에 국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60년대 천리포에는 전기도, 전화도, 수도도, 차량이 운행할 수 있는 진입도로도 없는 그야말로 깡촌이었다.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된 이방인이 이 곳에서 최소한의 문명 생활하기 위해서는 물과 전기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고, 밀러시는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 조명 및 급수를 위한 동력의 전원을 확보했다.
한적한 어촌에서의 삶을 위한 주거 등의 기초적인 정비가 마련된 1970년부터 밀러씨는 당초 사들인 18만평의 대지에 국내외에서 귀한 수목을 수집해 심는 정원 조성을 시작했다.
1979년에 한국에 귀화해 충남도민 민병갈이 된 그는 본격적인 수목원 조성을 시작해 2002년 4월 8일 타계할 때까지 전 재산을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쏟아 붓고 헌신했다.
그는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 일구어내 엄청난 유무형의 가치를 지닌 천리포수목원을 유가족에게 물려주지 않고 한국인으로 자신을 받아준 제2의 조국에 선물로 남기고 갔다.
민병갈 설립자는 천리포수목원에 심은 나무와 화초들이 자연 상태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사람이기에 불필요한 인간의 접근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시기의 천리포수목원은 일반인들의 접근은 거의 거절됐고, 공무원들의 공무로 인한 방문조차 사유지 침범이라며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항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로 자연보호에 집착했다.
그로인해 이방인의 은둔지 이자 비밀의 정원으로 인근 지역 주민들의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우리나나 최초의 사립수목원이기도 한 천리포수목원 나무들이 다칠 것을 30여년간 극소수만 접근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된 것은 2009년으로 10년이 채 안된다.
30년 넘도록 식물 관련 전공자나 후원회원들에게만 입장을 허용하던 수목원은 2009년 3월 1일 전체 7개 관리 지역 중 1곳의 빗장을 풀었고, 지금은 한해 30만 명에 달하는 탐방객이 다녀가는 휴양과 교육의 명소가 되었다..
비밀의 정원으로 불리던 수목원이 국민들의 생태교육 장소로 활용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고, 공개지역의 이름은 설립자의 이름을 따 ‘밀러 가든(Miller Garden)’이라 부른다.
습지원
나무가 주인인 수목원
1970년부터 민병갈 설립자는 천리포수목원을 단순한 바닷가의 보기 좋은 정원 이상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으며 이것이 최초로 제대로 갖추어진 사립수목원을 조성하게 된 효시가 된다.
그는 단순히 나무를 가꾸는 곳보다는 다양한 식물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여 종 다양성 확보와 유전자 보존을 담당하는 것이 수목원의 참기능이라 생각했다.
또한 축적된 식물 자원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환경보전에 일익을 담당하며, 기초과학의 기본 자료로 식물학 등 관련 학문의 원활한 연구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애초부터 많은 관광객을 받고, 전시할 목적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라 자연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 했기에 천리포수목원을 거닐면, 다른 수목원과는 크게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민병갈 설립자는 단순히 꽃과 나무와 정원을 사랑하여 개인적 정원의 주인이고자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나무를 주인으로 섬기며 사는 일꾼으로 살고자 했다.
나무가 행복하면 더불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이야 말로, 진정한 수목원이라 여겨온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나무가 주인이며,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어우러져 살아가길 원했던 설립자의 철학을 이어 수목원의 나무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자랄 수 있도록 인위적인 관리는 최소화 하고 있다. 때문에 잘 다듬어진 조경·원예 수목원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꿔져서 오히려 수수해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천리포수목원만의 담백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곳 천리포수목원의 면적은 총 59만2.172㎡(18만평)이며 밀러가든 면적은 6만5,623㎡(2만평)로 밀러가든, 목련원, 종합원, 침엽수원, 낭새섬과 에코힐링센터(구 생태교육관, 사색의길 시작지점), 큰골 등 총 7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밀러가든과 에코힐링센터 일부지역만 일반인 개방 중이며 추후 개방지역은 확대될 전망이다.
수목원 조성초기에는 거센 바닷바람과 염분기 있는 척박한 토양 때문에 어린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이뤄 지금의 수목원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오히려 지금은 서해바다의 영향으로 입장객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연환경을 선사한다.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노을쉼터와 서해전망대는 밀러가든 안에서도 가장 있는 명소 중 한 곳으로 향긋한 나무・풀 내음, 새소리와 함께 바다 내음, 파도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올 2월에는 교통약자들을 배려해 바다 경계면에서 우드랜드 진입부로 이어진 1km 거리의 ‘노을길’을 개통했다.
곰솔과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숲과 서해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서해낙조를 감상하기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
민병갈 전시관 앞 수목들
세계 각국 식물들의 안식처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식물종류를 보유한 곳으로 자그마치 1만 5,800 여 종류에 달한다.
국내 자생종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멸종위기・희귀 수목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세계 여느 수목원과 규모면에서는 작을지 몰라도 수집 식물부문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히 봄이면 나무 가득 큼지막한 꽃을 피우는 목련 600여 종류, 가을부터 겨울까지 붉은 열매를 드리우는 호랑가시나무 400여 종류, 나라꽃 무궁화 300여 종류 그 외에도 동백나무 300여 종류, 단풍나무 200여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주요 5개 식물 중에서도 목련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국제목련학회 총회가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 될 예정이다.
요즘 6월에는 다양한 수목을 보유하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에서 다채로운 색상의 신록을 감상할 수 있으며, 만병초, 작약, 노루오줌, 아이리스, 니포피아 등의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자식처럼 키우고 돌본 수목원의 나무들은 대부분 표찰로 이름 표기가 되어있고, 사연 있는 주요 식물들은 알기 쉽게 설명판도 제작되어 있어 혼자서도 수목원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숲 해설을 통해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특별한 힐링 체험
바다와 숲이 어우러져 있는 수목원에는 한옥과 초가집, 양옥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가든스테이(Garden Stay)’가 마련되어 있어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천리포수목원의 정원을 깊이 있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힐링체험도 가능하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매년 전통적인 방법인 못줄을 띄우고 손으로 모를 심는 모내기를 비롯해 벼 수확까지 일관된 농사를 진행하는 것도 이채롭다.
올해도 지난 30일 직원들이 수목원내에 조성된 논에 모내기를 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본 낙조
구길본 원장은 “1970년 조성을 시작한 천리포수목원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15,6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여 보전하고 있으며 특히 목련,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무궁화 종류의 수집은 어느 수목원보다 독보적이며 이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목원이 되었다”며 “천리포수목원은 회원중심으로 운영하다, 2009년 설립자의 나무사랑, 자연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7개 관리지역 중 밀러정원을 개방했으며 2015년에는 미션과 비전을 재정립하고 올해부터 10년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수목원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천리포수목원은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위치하여 장엄한 낙조의 풍광과 운무의 비경을 품고 세계에서 수집된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진 노을과 바다, 꽃과 나무의 정원”이라고 자랑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루의 행복을 원한다면 술을 마셔라, 일주일의 행복을 원한다면 돼지를 잡고, 한 달의 행복을 원한다면 결혼을 하라. 그러나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정원을 가꿔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면서 “고 민병갈 설립자는 천리포수목원과 함께 가장 행복한 여생을 보냈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세대를 이어가며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을 선물하였다”면서 “저를 포함한 천리포수목원 가족은 설립자가 선물한 세계적 정원의 아름다움과 치유의 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수목원을 가꾸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힌다”며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smyouk@ilyods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