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폭력 동영상을 서로 돌려 보고 있다. | ||
휴대폰 동영상을 통한 학생들의 폭력 문제는 사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학교의 왕따를 집단으로 폭행하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돌려 보는 ‘해피 슬래핑(Happy Slapping)’이 영국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통한 괴롭히기 수법은 비단 동영상뿐만이 아니다.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괴롭히거나 협박 전화를 거는 일도 다반사. 일부러 상대 학생에게 끔찍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해서 괴롭히는 것도 ‘휴대폰 이지메’의 한 유형이다.
게다가 폭력적이면 폭력적일수록 학생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
이렇게 시작된 휴대폰 폭력이 최근 독일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때리는 것을 넘어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온갖 폭력물들을 학생들끼리 돌려 보고 있는 것.
여기에는 섹스숍이나 포르노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강도 높은 하드코어 포르노부터 말이나 돼지 같은 짐승과 섹스를 하는 장면 등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살인이나 강간을 연출 없이 실제로 찍은 ‘스너프 필름’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동영상. 심지어 목을 베거나 거세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진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파일은 러시아 군인이 참수당하는 잔인한 동영상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도대체 이런 수위 높은 폭력물들을 어디서 구하는 것일까. 짐작하다시피 이런 폭력물들의 출처는 대부분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다룰 줄 아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쉽게 포르노 사이트나 X등급 사이트에서 폭력물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렇게 휴대폰에 저장한 파일을 학교에서 몰래 돌려 본다. 함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프랑크(16)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금지된 동영상을 다운받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다.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하는 동영상을 클릭한 후 케이블을 통해 휴대폰 메모리에 저장하면 끝이다. 그러고서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근거리 무선 통신인 블루투스로 파일을 주고 받는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공짜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물이 유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영상 파일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즉 폭력적인 동영상을 발견해서 학교에 가지고 오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는 것은 물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도 붙게 됐다. 영웅심과 경쟁심에 사로잡힌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 것이다.
실제 튀빙엔의 한 중학교에서는 14세 소년이 8세 소년에게 잔인한 참수형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협박했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소년은 꼬마에게 “앞으로도 계속 나를 화나게 하면 너도 이렇게 죽을 줄 알아!”라며 위협했다.
그날 이후 꼬마는 그 동영상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는가 하면 공포에 떤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즐거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자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휴대폰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독일청소년보호센터의 프리트만 쉰들러는 “경찰이나 당국이 학생들을 수사하고 제재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휴대폰이란 것이 다분히 개인적이고 또 인터넷을 일일이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고 말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부모님의 관심과 지도”라고 충고했다. 부모들이 자주 자녀들의 휴대폰과 컴퓨터를 검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인터넷이나 휴대폰의 최신 기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휴대폰을 압수해서 일일이 파일을 검사하고 있는가 하면 폭력물이 발견될 경우에는 단기간의 정학 처분을 내리고 있다.
독일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교내에서 흡연이나 음주를 금지하는 것처럼 학교에 휴대폰을 가지고 등교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 해결책은 못된다. 방과후에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소지품 검사를 어떻게 매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이에 독일 정부는 아예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는 동영상 휴대폰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런 방안에 어느 정도 찬성하고 있는 상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이 같은 독일의 호들갑이 결코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