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요신문] 송승환 기자 =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함바(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주겠다고 업자를 속여 금품을 받은 혐의(사기)로 브로커 유상봉(71·수감 중)씨를 추가 기소했다고 지난해 3월 2일 밝혔다.
당시 검찰에 따르면 유 씨는 2013년 7월 윤 모씨에게 “강원도 동해시 북평공단 STX 복합 화력발전소 건설현장 식당을 수주했다. 시공사 측이 건축비 2억 원을 요구하니 이 돈을 주면 식당을 운영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2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유 씨는 이 식당 운영권을 확정적으로 수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구속과 출소를 반복해 온 ‘희대의 사기꾼’ 함바브로커 유상봉. 그는 단순한 사기꾼 혹은 뇌물 공여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뇌물 사건 비리 혐의자들이 있었지만 유상봉 씨와 같은 이는 일찍이 없었다.
그동안 심층 취재를 통해 자세히 보도됐지만 뇌물을 준 사람이 공직자를 집요하게 협박해 뇌물을 토해내도록 한 사례는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검찰에 불려가 자신의 개인 비리로 시달리다 결국 수사에 협조하게 된다. 특히 검찰이 원하는 선에서 돈을 준 공직자 몇 명을 실토하는 수순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기자가 유상봉 씨의 여러 측근 인사들을 집중 취재한 결과, 유 씨는 검찰과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협상을 진행해왔다는 후문이다.
유 씨는 함바 운영권 수주를 위해 수억, 수십 억원의 투자자금을 받아놓고도 이를 빼돌리는 식으로 수많은 사기(詐欺)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다.
하지만 유 씨는 사기 사건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처벌받기 위해 검찰에마치 제안이라도 하듯이 교도소에서 수백통의 편지를 써왔다.
지난 2014년 6월 부산지검에서 유 씨를 사기 혐의를 구속한 뒤 유 씨가 서울로 올라와 수사와 재판을 받은 것은 그가 검찰에 ‘아주 특별한 제안’을 한 덕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주 특별한 제안’은 다름 아닌 뇌물 사건을 터트리겠다는 것. 당시 검찰로서도 전혀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인 셈이었다.
유 씨는 이 과정에서 뇌물 수수자로 검찰에 실토할 공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공직자들 입장에선 유 씨로부터 날아드는 편지가 ‘공포의 편지’였던 것이다.
돈을 내놓거나 다른 방식으로 협조를 한 경우에는 절대 검찰에 불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공직자는 뇌물을 준 사실을 검찰에 터뜨렸다. 물론 이중에는 수십, 수백 배 사실을 크게 부풀려 사건을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유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 과정에서 검찰은 왜 유 씨의 입만 쳐다봤을까.
‘악(惡)의 근원’을 뿌리뽑는 공정한 수사가 되려면 유 씨의 입에만 의존해서는 안됐지만 그동안 유 씨와 검찰 사이에서 모종의 ‘타협’과 ‘협조’라는 부분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독특한 캐릭터인 브로커 유 씨가 이런 방식으로 대담한 일을 꾸민 데는 검찰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최근 제기됐다.
지난 1차 함바사건(2010년 유 씨가 구속돼 2011년부터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본격적으로 고위공직자들이 구속된 시기) 때 검찰은 유 씨의 ‘도움’(?)으로 상당한 수사성과를 거뒀다.
특히 당시 수사권 조정(독립) 문제로 검·경 갈등을 겪던 시기에 터진 유상봉 사건으로 경찰은 차마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조직이 초토화되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당시 검찰로서는 유상봉의 ‘입’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유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앞두고 검찰 측에서 “유 씨가 거악(巨惡)을 뿌리뽑는 데 공을 세웠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 선처를 탄원했을까.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초대형 사기 사건의 주범인데도 유 씨는 고작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과연 그가 정말 거악을 뿌리뽑는 데 공을 세웠을까.
유 씨가 충분히 뉘우쳤다는 것도 과연 근거가 있을까. 검찰이 유 씨의 선처를 주장하며 내세웠던 이 같은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우선 유 씨가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는 대목부터 아이러니했다. 유 씨는 지난 2010년 11월 구속 기소돼 2013년 3월 1년 6월 형(刑)을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2010년 11월부터 1년 6월을 계산해보면 2012년 5월쯤에 풀려났어냐 하는데 그로부터 약 10개월이나 늦게 출소했기 때문이다.
유 씨의 출소가 이렇게 늦어진 데는 세 번에 걸친 구속집행정지 때문이었다. 유 씨 측은 갑상선 암을 비롯해 뇌졸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수술과 치료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세 차례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에 자유롭게 병원을 빠져나와 로비와 협박, 경마 도박과 함바사업 수주 작업을 해나간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특히 이 기간 동안에 순천대 임상규 총장(전 농림부 장관)을 찾아가 그를 집요하게 협박했고, 결국 임 총장은 ‘악마(惡魔)의 덫에 빠졌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임 총장의 자살이 모두 유상봉 탓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그의 지독한 협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유가족의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유 씨의 자유로운 활동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유 씨가 이런 행위를 해왔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텐테 오히려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까지 했다.
유 씨는 측근들에게 “검찰이 잘 도와주고 있어서 큰 걱정이 없다” “검찰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유 씨의 측근 중 한 사람은 “유 씨는 검찰청사 내에서도 ‘회장님’이나 다름없었다”며 “뒷배가 튼튼하니까 구속집행정지 기간에도 그렇게 대담하게 외출하면서 일을 보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비단 검찰은 유 씨게 특혜를 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측근들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함바비리 사건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거악을 뿌리뽑았다’는 검찰의 말은 ‘허언’(虛言)이라는 것이다. 유 씨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C씨가 기자와 만나 수차례 반복했던 얘기가 있다.
C씨는 당시 검찰이 정권의 핵심 혹은 실세 인물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핵심인사 중 하나였던 정치인 J(60)씨, 또 영남권 3선(選) 광역시장을 역임하고 부산에서 지난해 20대 총선에 출마했던 H(68)씨, 유 씨의 최측근인 C씨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유상봉 씨와 함바 사업을 10년 이상 하면서 J씨와 H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 덕분에 엄청한 함바 운영권을 수주할 수 있었다. J씨, H씨를 유 씨에게 소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A씨와 B씨였다. 내가 눈으로 목격하고 유 씨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이 사실은 절대 틀리지도 않고 바뀔 수도 없는 부분이다. 검찰에서도 J씨와 H씨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나왔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하지 않더라.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자 J씨와 H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는 걸 보고 기가 찰 정도였다.”
정치인 J씨와 전 영남권 광역시장 H씨는 언론에 이렇게 해명했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으로부터 유상봉 씨를 소개받아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거나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 결코 없다.”(J씨 해명 중)
“중앙(정계)에 계신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2∼3차례 만났을 뿐 특별히 도움을 준 적이 없다”(H씨 해명 중)
거절할 수 없는 분, 중앙(中央)에 계신 분은 과연 누구일까. 취재 과정에서 이 두 분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당시 정부 최고위 핵심인사들이었다.
그들과 유 씨와의 운명적 만남, 아주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도 숱한 증언들과 목격담이 존재한다.
당시 J씨와 H씨의 언론 인터뷰의 성격에 대해 유상봉 씨의 최측근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더 이상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우리까지 다치고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 더 늦기 전에 조치하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한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J씨와 H씨의 이름이 당시 검찰 수사과정에서 나왔지만 결국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로 경찰 고위급 인사들을 집중 타깃으로 한 수사만 진행됐다.
함바비리 사건은 검찰의 말대로 과연 거악의 뿌리를 뽑은 결과를 가져왔을까. 당시 실체적 진실의 절반도 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 사건 취재를 통해 확인한 부분이었다.
함바브로커 유 씨에게 피해를 본 한 투자자는 취재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검찰이 유 씨를 철저히 수사해 제대로 단죄(斷罪)했더라면, 구속집행 정지기간에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큰 돈을 사기 치지 않을 것입니다. 유 씨는 구속돼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함바사업을 재개한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아 이를 빼돌렸습니다. 과연 대한민국 검찰은 무엇을 단죄했다는 말입니까? 대신 유 씨의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은 모두 좋은 곳으로 영전해갔습니다.”
‘희대의 사기꾼’ 함바브로커 유상봉 사건을 취재하면서 검찰을 다시 생각해봤다.
뇌물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뇌물 공여자를 잘 설득해야 하고, 그의 입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조금씩 다가갈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
하지만 수사에 협조했다고 불법(不法)을 저지른 명백한 범죄행위가 면책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유상봉 핵심 최측근 중 한 사람이 기자에게 남긴 말의 여운이 길다.
“함바브로커 유상봉을 ‘악마’로 키운 건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다소 과도한 비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까지 얘기했는지, 검찰은 과연 ‘거악’을 제대로 뿌리 뽑았는지 검찰 스스로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7002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