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입각으로 지역위원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새로운 위원장을 뽑지 않고 직무대행을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직무대행이 전임 위원장 복귀 때까지 그 지역구를 임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지역위원장은 각종 선거 공천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본인이 선거에 출마할 때도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 사무처는 “현재 지역위원장을 공모해 다시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직무대행을 임명할 것인지는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추후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구성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조직국 관계자는 “장관으로 입각한 경우에는 당적을 유지할 수가 있어 문제가 없지만 청와대 등에 들어간 사람들은 당적을 정리해야 한다. 당적이 없는 사람은 당직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지역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지역위원장이 없는 지역위원회가 사고위원회로 결정되는 것은 정해진 절차”라면서 “정치권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입각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직무대행을 임명했던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직무대행을 임명했던 경우도 있고 새로 위원장을 선출했던 경우도 있다”면서 “아직 조강특위가 구성되지 않아서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현재 입각으로 인해 사고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충남 공주·부여·청양),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경기 시흥갑), 나소열 청와대 자치분권비서관(충남 보령·서천), 정태호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서울 관악을), 조한기 청와대 의전비서관(충남 서산·태안),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한병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전북 익산을), 박남현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실 행정관(경남 창원·마산·합포),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부산 사상) 등 총 9곳이다.
민주당은 또 현재 탈당 절차를 진행 중인 은수미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경기 성남 중원), 신정훈 청와대 농업비서관(전남 나주·화순), 백두현 청와대 정무수석실 자치분권행정관(경남 통영·고성), 오중기 청와대 정책실 균형발전행정관(경북 포항 북구), 허대만 행정안전부 정책보좌관(경북 포항 남구·울릉) 등의 지역위원회도 위원장의 당적이 정리되면 사고지역위로 지정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친문 인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인사들로 빈자리를 채워 넣으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친문 인사들이 위원장으로 있던 지역에 새 위원장을 선출할 경우 당·청이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뒤를 잇는다.
지역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인사들은 일단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행정안전부 정책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허대만 경북 포항 남구·울릉 지역위원장은 “내 지역구가 사고지역위로 선정된 것은 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안다”면서 “아직 직무대행을 임명할지 새로운 지역위원장을 선출할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뭐라 말씀드릴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직무대행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위원장이 선출된다고 해도 불만이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기존 절차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면 불만은 없다”고 답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배재정 부산 사상 지역위원장도 “아직 당 내에서 조강특위 결성이라든지 결정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제 입장을 말씀드릴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면서 말을 아꼈다.
청와대에 입성한 몇몇 인사들과도 접촉을 시도해봤으나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변을 거부했다. 추 대표 측은 “원칙대로 할 것”이라면서도 “사고지역위원회 선정과 추 대표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8월 중 최재성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혁신기구를 출범시킬 예정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추 대표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 지지율 50%대를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혁신위를 출범시킨 것은 다소 생뚱맞다는 평가다. 혁신위는 대체로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출범한다. 당 혁신보다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추 대표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이다.
일각에선 혁신위가 내년 지방선거 공천 룰 변경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추 대표가 혁신위의 목표 중 하나로 100만 권리당원 확보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행 민주당 공직후보자 선출 경선룰에 따르면 투표 참여 인원 중 당원과 비당원 비율을 5 대 5로 규정하고 있다. 혁신위가 당원 투표 비율 높이기에 나선다면 이는 추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추 대표 대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대리사과’까지 했던 청와대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국민의당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추 대표가 연일 국민의당 지도부를 자극하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추 대표는 내각 추천권을 놓고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고, 당직자 청와대 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청 간 잡음이 계속되자 당내에서는 추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추 대표가 청와대와 각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얘기다. 추 대표 측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룰은 혁신위가 아닌 전략기획위원회에서 이미 검토를 하고 있다. 혁신위가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조직이라는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제보조작 사건을 일으킨 국민의당에 대한 비판도 당 대표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기 정치라는 비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