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종이 박스를 쌓아둔 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기사내용과는 무관.
[천안=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충남 천안에 사는 김모 씨(76)의 자녀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난 7월 김 씨는 퇴근길에 고혈압으로 쓰러져 갈비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김 씨는 한달 여를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김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주차관리 일을 하고 있는 빌딩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빌딩 측에서는 김 씨가 이미 올해 6월1일 자로 퇴직된 상태이기에 더 이상 일하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김 씨의 자녀들은 퇴근길에 사고를 당하셨다는 아버지가 이미 퇴직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김 씨는 자녀들에게 “빌딩주가 출근하고 싶으면 하라 했다. 집에서 마냥 시간을 보내기도 싫어 퇴직 후에도 1달 넘게 일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 씨의 4대 보험도 퇴직과 함께 끊어졌다. 김 씨 치료비의 산업재해 보상 여부를 알아보려던 자녀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가 지난 10년 간 빌딩에서 일하며 받아온 급여를 알게 된 자녀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김 씨는 지난 2007년 지인의 소개로 주차 및 빌딩관리자로 일을 시작했다.
김 씨가 빌딩주로부터 받은 첫 월급은 80만 원. 그는 주 5일간 10시간씩 주차관리와 빌딩청소 등을 하며 2015년까지 9년간 매달 80만 원을 받았다.
2016년부터는 이마저도 6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집에서 놀면 뭐해”라는 마음으로 김 씨는 60만 원도 감지덕지로 여기며 빌딩에서 일했다.
김 씨의 자녀들은 빌딩주를 찾아가 김 씨의 턱없이 낮은 급여와 미지급된 퇴직금을 항의하며 소득원천징수서를 요구했다.
소득원천징수서를 받아든 자녀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소득원천징수서에는 빌딩주가 김 씨에게 2007년부터 7년간 12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명시돼 있었다.
빌딩주는 소득세를 감면받기 위해 거짓으로 신고 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빌딩주는 그동안 김 씨에게 급여를 은행송금이 아닌 현금으로 인출해 직접 지급해 왔다. 김 씨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불거지자 빌딩주는 지난달 허위 신고한 소득세에 대해 수정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 씨의 자녀들은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 문제없이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고 여겼던 아버지가 부당한 처우에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자녀들은 빌딩주에게 세무서에 신고 된 월급 차액과 퇴직금 등의 지급을 요구했다.
빌딩주는 합의를 요구했고 직접 와서 돈을 받아가라고 했다. 자녀들은 오전에는 불가하니 오후에 김 씨와 함께 가겠다고 알렸으나 빌딩주는 약속을 어겼다며 합의를 하지 않았다.
김 씨의 자녀들은 지난달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빌딩주는 “김 씨는 출퇴근 시간도 마음대로 했다. 일과시간에 이래라 저래라 한 적도 없다. 일과 시간에 박스도 줍고 텃밭도 가꿨다. 지금은 건물에 상가가 모두 나가 청소나 주차관리도 할 것이 없다. 연세 많으신 분 용돈이라도 드리려고 출근하시라 한 것이다. 제대로 일을 시킬 것 같았으면 용역회사에 의뢰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퇴직금과 급여 차액을 가산해서 합의를 하려고 했다. 악덕업주처럼 여기는데 김 씨 자녀 쪽에서 일방적으로 오전에 안 나온 것”이라며 “노동부의 조사를 받고 법 테두리 안에서 맞는 금액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 노동고용지청 민원실 관계자는 “실질적 근로일인 올 7월을 기준으로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을수 있는 소멸시효는 3년으로 모두 보장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올 7월 발표한 2017년 5월 기준 고령층(55~79세) 경제활동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층 경제활동 참가율은 56.2%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 31.5%로 OECD 평균(14.3%)의 2배가 넘는다.
이에 비해 고령층의 연금 수령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더욱이 2014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12.4%)의 4배다.
고령층이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고 일자리를 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장치와 함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만 고령층의 노동문제가 해결된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구재보 사무국장은 “60세를 넘은 고령인은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 제한적이다 보니 박봉이라도 일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큰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생계에 보탬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열악한 곳이라도 일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자는 노동조합에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다.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한국 사회의 노동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대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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