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선고 공판이 열린 인천지법의 법정. 김태원 기자
22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이들의 선고공판에서 담당 재판부인 형사15부(부장판사 허준서)는 주범 김 아무개 양(16)이 주장한 범행의 우발성과 정신질환, 자수 참작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범 박 아무개 양(18)이 살인의 공모나 계획을 인지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양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사체 훼손, 사체 유기죄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살인 방조로 기소됐으나 재판 중 살인죄로 공소장이 변경됐던 박 양 역시 살인, 사체 유기죄가 유죄로 인정됐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이들의 재판에서 재판부는 “청소년들이 특정 신체 부위를 얻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아동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공분을 일게 했다”라며 “이 사건 범행으로 대가족 속에서 사랑받으며 살아가던 어린 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했고, (시신이)온전히 가족에게 돌아오지도 못했다.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과 애통함, 분노의 심정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양에 대해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범행 당시에는 심신미약에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라며 “또 수사기관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고가 보여준 언동이나 행동은 조현병 또는 해리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의 환자의 것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 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자수했으므로 이에 대한 참작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SNS에 범행을 부인하는 듯한 글을 게시했고 경찰이 자택 안에서 혈흔 등 흔적을 발견한 뒤 이를 추궁하자 그때서야 범행을 인정한 것으로써, 신고는 자발적이었지만 범행을 지속 부인한 점을 보면 이를 자수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양은 사건 당일인 3월 29일 오후 9시 40분 경, 어머니로부터 사건과 관련한 연락을 받고 자신의 트위터에 이 같은 글을 게시했다. 사진=김 양 트위터 계정 캡처
실제로 김 양은 지난 3월 29일 사건 당일 오후 9시 40분경,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뒤 자신의 SNS에 “우리 동네에 애가 없어졌대”라는 글을 올려 마치 자신과 사건이 연관이 없는 것처럼 가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양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기존의 살인방조죄에서 살인을 인지하고 이를 계획, 지시했다는 ‘살인죄’ 적용에 고심했다고 밝혔다. 박 양의 살인죄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거인 트위터 DM(다이렉트 메시지, 쪽지)이 대부분 삭제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재판부는 박 양의 살인죄 적용에 있어서는 김 양과 박 양의 진술에 대부분 의존해야 했다.
재판부는 “김 양의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다소 달라지고, 박 양의 범행 가담 정도에 대해 점점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박 양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진술을 꾸민 것이 아닌지 의심의 여지는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양은 사건 수사 초기에는 박 양의 존재를 밝히지 않고 단독 범행을 주장하다가 박 양이 공범으로 체포되면서부터 진술을 조금씩 변경해 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그런데 김 양의 변화된 진술에는 본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사실이 포함돼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줄곧 주장했던 범행의 우발성이나 심신미약과 진술이 전면 대치됐음에도 이 같은 바뀐 진술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라며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김 양이 박 양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몰기 위해 진술 변경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박 양의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해서는 “사건과 관련해 중대한 의심을 받거나 무고의 여지가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해 해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런데 박 양은 김 양과의 대질조사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상황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해명에 그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를 대질조사가 이뤄진다면 범행을 사전에 공모한 김 양의 앞에서 허위 진술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캐릭터 커뮤니티를 이용한 ‘역할극’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대화가)기존 김 양과 박 양이 해 오던 역극과는 행태가 달랐고, 사건 당일 김 양과 살인 계획에 대해 의논한 뒤 김 양이 가져온 시신 일부를 확인하고 ‘예쁘다’고 평가하는 등 실제 범죄 발생과 그 실행을 인지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실제 실행범이 아닌 박 양에게 살인죄를 묻는 데에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박 양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긴 하나 성년을 불과 9개월 앞둔 상태”라며 “이들의 범행은 청소년의 미성숙함으로 인한 것이라거나 사리분별 미숙, 단순 탈선, 비행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잔혹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살인을 직접 실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속죄하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무기징역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박 양은 만 18세 미만에 해당하지 않아 사형이나 무기징역형 대신 15년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는 소년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만 18세 미만인 주범 김 양보다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