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식해서 복잡한 전문용어를 몰라요. 그렇지만 공장의 바닥에서 평생 지낸 놈이니까 내 식대로 얘기할 께요.자동차를 양쪽에서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지근 월급을 반도 못 받아요.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식당도 한사람은 좋은 식당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개밥을 먹는 기분 이예요. 그게 좋겠습니까?”
그는 자기 방식대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문제점이 투박한 용어로 정확히 지적됐다. 논쟁은 의외로 노조위원장의 승리였다. 우연히 본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그 며칠후 이웃에 사는 대학선배와 바둑을 두고 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기자출신인 그 선배는 정부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유학간 아들이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가서 면접시험을 봤는데 뜻하지도 않게 합격을 했어. 합격시키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졸업하고 와서 일하라고 하더래.”
스펙을 잔뜩 요구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
“일본회사에서는 면접 때 어떤 점을 보더랍니까?”
내가 물었다.
“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걸 일본에서는 ‘시젠타이’라고 부른다는 거야. 그게 합격의 동기지. 내가 얼마 전 홍콩에 묵을 때 호주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 방송을 여럿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워.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그 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건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걸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질이 높은 거구나 하고 느꼈어. 그걸 보면서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대변인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말 한마디라도 꾸미지 말고 진심으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삼십년 드나든 법정풍경을 떠올렸다. 법정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하는 법률용어와 공허한 관념만 가득 찬 것 같았다. 거짓말로 법정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었다. 눈물과 정직한 호소는 시궁창 같은 거짓 속에 매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법정의 변론태도를 바꾸었다.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한마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