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백(58) 교사가 혜화여고 연극반 사무실에서 에듀소시오드라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요신문] 내년부터 초·중·고 교육과정에 ‘연극’ 과목이 신설된다. 그간 연극은 전문교과의 심화과정으로 예술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접하기 쉽지 않았다. 교육부는 초·중학교 국어에서 연극교육이 맞물리는 부분을 주목하고 연극과목을 넣었다. 고등학교도 음악, 미술, 체육처럼 일반 선택 과목으로 삽입해 내년부터 일반고 학생들도 연극에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이와관련해 대구시교육청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연극과 관련해 학교 현장 중심의 자료를 개발해 전국 최초로 초·중·고 학교급별 연극교육 지도자료와 우수사례집, 학생연극동아리 운영 길라잡이 5종을 발간한 것. 이번 발간은 김종백 대구연극뮤지컬지도교사협의회 회장을 중심으로 교사 집필진 30명과 대학교수 자문위원 5명이 함께 했다. <일요신문>이 대구연극뮤지컬지도교사협의회 회장이자 혜화여고 교사로 시무하는 김종백(58) 교사를 찾아 수업 현장에서의 연극의 적용과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대구의 강남, 대구의 대치동’. 수성구하면 으레 떠오르는 표현들이다. 대구 수성구 내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서울 강남 학부모들 못지 않게 뜨겁다.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려면 먼저 수성학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 됐을 정도. 이 가운데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혜화여자고등학교에는 특이하게 연극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아예 학교 안에 연극을 하라고 동아리 시설이 따로 마련돼 있다. 사무실 한 켠과 더불어 아이들이 마음껏 연극을 할수 있는 무대와 함께 대형 거울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김종백(58) 교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지수야. 오른쪽 어깨 위에 붙어있지. 붙어있는 숫자나 문자의 거듭제곱을 해주고 있어.” 김 교사의 수업시간에 ‘지수’ 역할을 맡은 학생이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며 수업 발표를 했다. 이에 맞서 ‘로그’ 역할을 맡은 학생도 자신을 소개했다. 대학생들도 쉽지 않은 지수·로그 함수 개념을 학생들이 직접 연극을 통해 익히는 것이다. 연극 발표에 앞서 학생들은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자신이 지수인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특성이 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까지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대사를 짠다. 그 덕에 학생들은 지겹고 따분한 수학 개념 수업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
“교실이 약간 시끌시끌하죠. 그렇지만 이것이 자기 주도적 학습이고 교사 위주에서 학습자 위주의 수업이라 할수 있죠.” 김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의 교수법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연극반을 이끄는 그가 수학 담당이라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사실 수학과목으로 연극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개념과 공식을 도입하는데만 연극을 접목하는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개념과 공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도출되는가를 고찰하게 되니 학습효과는 배가 됩니다.” 그가 수학을 담당한 덕분에 오히려 다른 과목과 연극의 접목은 더 쉬워 보인다.
대구 혜화여고 연극반 ‘유니온’이 김종백(58) 교사와 함께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연극은 국어, 역사 등에 무궁무진하게 적용이 가능합니다. 수업시간에 이순신 장군의 일화를 그저 읽거나 독후감만 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이순신 장군이 되어 12척으로 왜군과 싸운다고 몰입해 봅시다. 이 역할을 맡고 발표를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역할을 통한 깊은 통찰이 곧 연극 교수법의 핵심이라 할수 있습니다.”
김 교사는 ‘에듀소시오드라마(Edu-SocioDrama)’를 수업현장에 적용하는 것을 강조한다. 에듀소시오드라마란 아리스토텔레적 연극관을 비판한 아우구스트 보알의 ‘포럼연극기법’과 모레노의 ‘소시오드라마기법’ 및 ‘뇌기반 학습 원리’를 융합해 학교 현장에 적합하게 개발한 모형이다. 예를 들어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왕따, 진로문제’ 등을 가지고 단순히 토론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역할극 또는 상황극을 해봄으로써 제3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 느낌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가지게 된다. 그야말로 전인교육(全人敎育)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김 교사는 에듀소시오드라마가 위기 학생들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예 학교연극회의 구성 원칙으로 이른바 ‘문제학생’들을 우선 선발한다고 한다. “주로 위기청소년들 상당수가 어려운 가정사 등으로 정서 능력이 결핍돼있고 부정적인 자아개념과 낮은 자존감 등을 갖고 있습니다. 장시간 방치하면 결국 문제행동이 표출되고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히죠. 이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정서함양 프로그램 같은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는데 ‘에듀소시오드라마’만큼 좋은 건 없다고 봅니다.
대구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연극교육 지도자료 5종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간에는 김종백 대구연극뮤지컬지도교사협의회 회장을 중심으로 교사 집필진 30명과 대학교수 자문위원 5명이 함께 했다.
그는 에듀소시오드라마의 수업 진행방법을 워밍업, 드라마실현, 피드백 크게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가위바위보 상대방 칭찬하기 ▲미래의 모습 인터뷰 ▲거짓말 찾기 도전게임 ▲그림보고 스토리 만들기 ▲사회적 관습깨기 ▲고정된 이미지 깨기 등 40여가지의 ‘워밍업’을 통해 집단의 신뢰감과 특징을 파악한 후 자발적으로 주제를 정하게 된다.
이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정한 주제를 가지고 역할극 또는 상황극을 만들어 내는 ‘드라마실현’ 단계를 가진다. 토론 등을 통해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실연을 통해 구체적 상황에 대한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대본을 가지고 반복 연습을 하고 발표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에듀소시오드라마의 기본원칙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As~if와 모레노의 here and now 이다. 즉 내가 과거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일 수 있다. 그런 학교 폭력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역할놀이로 진행하는 것이다. 장소는 학교 안일수도 경찰서, 법정일수도 있다. 가족의 상황과 연령, 직업 등 요인과 폭력의 정도와 상황 등 모든 것이 고찰되어 표현된다.
세번째 ‘피드백’은 에듀소시오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학생들은 서로의 상황그글 보고 난 후 느낌과 대안점을 토론하며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 등을 통찰하게 된다.
”연극반을 지도하다보면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 가는 학생들이 꼭 나옵니다. 교실에서는 엎드려 잠을 자는 그 학생은 어찌보면 자신의 적성이 교과서의 지식이 아닐수도 있는 거죠. 교실에서 역할극 놀이를 통한 수업은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게 됩니다. 수업이 달라지면 학생들도 달라지죠. (내년 연극과목도 신설되는) 지금이 대한민국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깨울수 있는 교수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야 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사는 앞으로 교육연극극단과 교육연극연구소를 만들고 교대와 사대 또는 신임 교사들을 대상으로 에듀소시오드라마의 전도사로 대구의 교육연극 역량 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대구 = 남경원 기자 skaruds@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