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얼마 전 보험회사에서 나와서 검사해보니 농작물 피해가 없다고 하더라. 보험금만 600만 원 냈는데 아무것도 보상을 못 받는다. 출하약정도 못 채우는데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내년에는 보험을 들지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의 한 거봉포도 농장에서 농민이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천안시에 따르면 올해 천안지역 전체 포도 수확량의 35%가 열과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농민들은 ‘농작물 재해보험’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작물의 특성과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보험 약관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현실에 맞는 농작물 재해보험 설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 이상기온에 올해 천안지역 포도 수확량 35% 열과 피해
천안시에 따르면 올해 천안지역 전체 포도 수확량의 35%가 열과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안시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올해 천안지역의 모든 포도 농가가 열과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농협에서는 포도 출하량이 평년보다 1/3이 줄었다고 한다”며 심각한 열과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열과는 과일 성숙기에 열매의 껍질이 터지고 갈라지는 현상이다. 오랜기간 날씨가 건조했다가 비가 많이 오게되면 발생한다.
천안지역은 올해 초 극심한 가뭄에 겪다가 포도 성숙기인 7~8월 이틀에 한 번꼴(강우일 40일)로 비가 내렸다. 같은 기간 일조시간은 291시간에 그쳤다.
잦은 비로 인해 천안지역 포도농가에는 심한 열과 피해를 겪게 됐다. 포도의 특성상 포도알에서 열과가 생기면 포도송이 안으로 스며들어 벌레 또는 곰팡이가 생기게 된다. 또한 터져 나온 과즙이 나무 줄기로 옮겨가 나무에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천안시 입장면의 민태억 씨(63)는 “과일 착색기에 날이 가물어야 하는데 늦장마가 오면서 열과가 왔다. 열매에서 나온 과즙이 나무를 짓누르게 해 병이 생겨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올해 우리 농장 수확량은 지난해보다 70%가량 적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농촌 현실과 괴리 큰 재해보험…“보상 기대 힘들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농작물 재해보험’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작물의 특성과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보험 약관 때문이다.
포도의 재해 보험은 수확량 보장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농장에서 무작위로 채취한 샘플의 무게를 측정한 후, 보험 기준량보다 적으면 그 중량만큼 보상하는 방식이다. 샘플 중 시장가치가 없는 상품은 중량에서 제외하고, 상품 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중량을 1/2로 낮춰 계산한다.
수확량 기준은 농촌진흥청의 지역·품목별 수확량 통계로 하며, 지역과 작물, 품종에 따라 구별된다. 기준은 매년 보험 갱신시 마다 개별 농장의 수확량에 따라 변동된다.
천안시의 경우 캠벨얼리 포도는 10년생 나무 기준으로 1주당 열매 16kg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거봉은 10년생 1주당 14kg으로 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사과나 배 같이 열매가 하나인 과일은 열과가 발생한 열매를 제외한 후 무게를 측정한다.
반면 포도는 포도알이 열과 되더라도 과일의 상태가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다면, 열과된 포도알을 제거한 후 무게를 측정한다.
포도의 특성상, 포도알 4~5알이 열과되면 그 한 송이 자체의 상품가치가 없어져 시장에 내놓을 수 없게 된다. 보험에서는 이러한 포도의 특성을 반영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농작물 피해를 보아도 보험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포도 농가들은 점점 보험 가입을 피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천안시의 포도 보험가입 농가는 12농가(20건)에, 면적은 11ha에 불과하다.
현실에 맞는 농작물 재해보험 설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NH 손해보험 지급팀 관계자는 “농산물 자체가 보험을 적용하기 민감한 품목이다. 보험 약관에 맹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재해보험은 국가의 정책보험이다 보니 일반보험처럼 유연하게 변경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개선을 하려 해도 지역별 특성, 재배 방법이 다 달라 전국에 적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수입보장방식의 보험을 시범사업 중에 있다. 3년 정도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해마다 농촌 현장과 농협, 농림부의 의견을 듣고 현실에 맞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ilyo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