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여성의전화에서 대구·경북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폭력과 관련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요신문] “너 지금 어디야?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거기에 가 있어?” “옷차림이 그게 뭐야?” “휴대폰 좀 줘봐. 누구랑 어떤 이야기했는지 좀 보게.” 데이트폭력 중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형 중 하나인 ‘통제피해’이다. 이러한 통제피해는 20~30대만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세대에 걸쳐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의 성인 남녀 10명 중 6명이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구여성의전화는 대구·경북 지역의 데이트 경험이 있는 만 18세 이상 성인들과 경북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에 재학중인 대학생 등 29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173명(63.1%)이 데이트 폭력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남녀별로는 여성이 69.1%, 남성이 49.4%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 남성도 여성 못지 않게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통제폭력’이 94.3%로 가장 많았으며 ‘언어·정서·경제적 폭력’이 46.3%, ‘성적폭력’이 30.6%로 뒤를 이었다.
데이트폭력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통제폭력’으로 앞서 밝혔듯이 데이트 상대가 가는 곳과 만나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이다. 이같은 통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일어나는데 남자친구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데이트코스를 강요하는 것 등에서도 나타난다. 통제는 단순히 20~30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별로 전반적으로 나타나며 특히 이혼 남녀 또는 사별 등으로 혼자 있는 경우나 외도의 경우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로 응답별이 높은 ‘언어·정서·경제적 폭력’의 유형으로는 ▲안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너 때문이야’라고 탓하는 경우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고함을 지르거나 소리치는 경우 ▲욕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한 경우 ▲화가 나서 발을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는 경우 등이다.
이밖에 ▲상대의 폭행으로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난 경우 ▲칼이나 가위 등의 흉기로 위협한 경우 ▲원하지 않는 섹스의 강요 또는 동영상·사진촬영 등의 피해 경험도 조사됐다.
“모든 삶을 공유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닌, 서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최근에는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경향이 크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통제폭력 또는 성적폭력을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대구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통제를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겪는 것이 통제폭력인지 사랑인지를 정확히 인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또 통제폭력을 당했지만 이후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52.3%로 응답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로 통제를 당한 후에도 가장 많은 복수응답으로 ‘폭력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52.3%), 아무렇지도 않았다(43.9%),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40.9%)가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데이트폭력이 시작되는 시기가 ’교제를 시작한 후로부터 6개월 미만‘이라는 응답이 절반이상을 차지한 것도 눈에 띈다. 또 응답자 가운데 7개월 이상 관계를 유지해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연인관계는 지속되는 경우도 절반이상(56.8%)을 차지했다. 이른바 ’폭력감수성‘이 떨어지면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도 연애관계는 지속된다. ’연인사이에서는 공유가 곧 사랑‘이라는 공식(?)과 더불어 폭력이 발생해도 ’내가 잘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이 연인 간에 관계단절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후 상의를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은 주로 친구나 직장동료 또는 선후배가 주를 이뤘고 전문상담기관을 찾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또 데이트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경우는 전체 중 2%에 불과했다. 그 이유로는 ▲신고나 고소를 할 정도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83.7%)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44.2%) ▲신고나 고소를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14.0%)로 나타났다. 실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경우에도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은 주로 합의를 종용하거나 고소요구,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하는데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데이트폭력이라는 특수성과 맥락을 고려한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송 사무국장은 “데이트폭력이 남성도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겪었다는 응답률은 다소 놀랍다. 남성의 경우에는 자신의 폭력피해를 못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남자니까 그 정도의 폭력에 대해 통제가 가능하다‘라고 생각하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까지 데이트폭력에 관한 법안 자체는 없다. 스토킹의 경우 경범죄로 취급해 10만원 정도의 벌금만 물게 된다. 송 사무국장은 “피해 여성에 대해 상담 또는 여러 지원을 하고 싶어도 제도적 근거가 없어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데이트폭력 방지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길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관련 법안이 시급히 제정돼 데이트폭력이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중대 범죄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영화보고 커피마시고 밥 먹는 데이트가 아니라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산책하는 발전하는 데이트가 더 낫지 않을까?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통제하는 무엇이든지 함께하는 사랑에서 서로를 믿어주고 같이 성장하며 지지해주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984년 창립한 대구여성의전화는 지역 최초로 ’가정폭력‘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이끌어 내고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등 여성인권운동에 나서고 있다. 부설기관으로 가정폭력상담소, 성폭력상담소, 쉼터, 법률인권 지원 등을 하고 있으며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국 25개 지부, 전국 회원 1만여 명이 함께 활동하는 전국적인 비영리단체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여 편견 없는 세상을 열어가는 데 주 목적을 두고 있다.
대구=남경원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