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산하 지검, 지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전국 각 고·지검, 지청으로부터 41명의 검사들을 파견 받았다.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검사들에게 서울중앙지검은 “내년 검사 정기인사 때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받을 검사들을 먼저 부른 것뿐이다”는 설명을 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지난달 17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적폐청산 수사 마무리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수사를 길게 끌 경우 피로감이 증대할 수도 있어 수사팀 증원을 제안하고 추진 중에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문 총장의 이 같은 발언 이후 검찰의 인력 추가 증원이 정식 절차가 아닌 파견 형식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 같은 파견은 검찰청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검찰의 임명과 보직 등 인사는 ‘검찰청법’ 제34조(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 제35조(검찰인사위원회)에 따라 검찰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검사의 임용, 전보 등의 사항을 심의하여 법무부 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으로 대거 파견된 검사들은 해당 절차와 규정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과 별개로 부서 정원을 초과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들 검사가 근무하는 부서의 총 정원이 늘어난 게 아닌 데도 일종의 유사 인사발령인 파견 형식으로 배치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발령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적폐청산’에 올인하다 편법까지 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행법 위반소지까지 감수하면서 다수의 검사들을 서울중앙지검으로 파견시킨 배경에 대해 법조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많아진 적폐청산 관련 수사들 때문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임 보수정권들을 겨냥하고 있는 ‘국정원 댓글사건’, ‘블랙·화이트리스트’, ‘KAI방산비리’, ‘세월호 공문서 조작 의혹’ 사건들은 모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전담수사팀 등에서 맡고 있기 때문이다.
총 41명의 파견 검사는 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형사1부에 1명, 형사2부에 1명, 형사 3부에 3명, 형사4부에 1명, 형사5부에 1명, 형사6부에 1명, 형사7부에 3명, 형사8부에 1명이 배치됐다. 또한 조사1부에 1명, 여성아동범죄조사부 2명, 공안2부에 6명, 공공형사수사부 5명, 외사부 2명, 특수4부 3명을 안배했다. 총 41명 중 25명이 1차장 산하에 배치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에 파견됐다.
기존에도 대규모 인원인 데다 40여 명까지 합류한 중앙지검에 비해 일선 검찰청의 검사들은 약 10여 명에 불과해 1~2명의 검사만 비어도 맡아야 할 업무량이 상당히 많아진다. 갑작스럽게 비는 검사로 인해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제때 처리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이 현 정권의 적폐 수사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민생사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각지에서 파견 받은 검사 중 일부는 국정원 수사팀에 배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은 검사 25명 규모로 국정원을 전담해 수사할 팀을 꾸리고 ‘국정원 수사팀’이란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8명을 더 추가하겠다는 게 중앙지검의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 수사팀 규모가 30명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특별수사본부와 맞먹는 규모가 된다.
또한 지난 5월 문재인 정부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환원한 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하자 야당으로부터 ‘자리를 사람에 맞춘다’며 비난을 받으면서도 강행한 바 있다. 당시 고검장급에서 지검장급으로 환원한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고검장은 검찰총장의 후보군으로 오르기 때문에 VIP(대통령)라고 호칭하는 인사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원에서 수사가 왜곡되는 사례들이 있어서 그 부분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정상화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설명과 달리 현재 진행되는 양상은 반대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급은 지검장급으로 격하됐지만 최근 파견된 검사 약 40명으로 인해 오히려 중앙지검이 여느 때보다 비대해졌다. 정권 차원의 중요한 수사도 거의 전부 서울중앙지검으로 쏠리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중앙지검장을 위해 지검장급으로 환원했다’는 이 같은 설명이 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주광덕 의원은 “대한민국 검사라면 서울중앙지검 근무를 꿈꾼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파견 검사들에게 꿈을 이뤄줄 테니 적폐청산 관련 수사에 목숨을 걸라는 충성 요구나 다름없다”며 “현행법을 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민생사건 해결을 제쳐두면서까지 검찰이 권력에 충성하려는 것인지, 그 저의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