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천안시 문화동 자유시장에서 만난 상인 김 아무개씨는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건물이 무너질까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당시에는 지진인 줄 몰라서 무서움도 못 느꼈어. 이 건물이 위험하다고 다른 사람들 모두 나갔지만, 나는 제 값을 받지도 못하니까 팔고 나갈 수 없었지. 언제 뭐가 닥칠지 모르는데 여기서 자면 정말 위험해. 그래서 낮에 가게 불만 켜놓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의 점포가 있는 자유시장 건물 3개 동은 언제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고 허름했다. 벽 군데군데에는 금이 가 있었고 처마는 콘크리트가 부서져 안에 있던 철근이 밖으로 빠져 나와 있었다. 철제 난간은 녹슬대로 녹슬어 흔들리고 있었으며 창문과 문은 깨지고 부서져 어지럽혀진 건물 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재난위험시설 E등급으로 분류된 충남 천안시 문성동 자유시장 A동. 지난 2015년까지 12세대가 거주했지만 현재는 모두 퇴거하고 안전펜스가 둘러졌다. 이 건물에서 여전히 7~8개의 점포가 운영 중이다.
자유시장은 지난 2007년 안전진단 결과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 건물 입주자 대부분은 자유시장을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포기하지 못한 채 김 씨와 같이 매일 아침 점포 불을 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쩔 도리 없이 자유시장에 머물고 있었다.
자유시장 사람들처럼 충남도민 상당수가 재난위험시설에서 살아가거나 그곳을 이용하고 있다. 더욱이 충남도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필로티 방식의 도시형 생활주택이 90%에 달해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빈번해진 재난·재해로부터 주민 안전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 재난위험시설 20곳…사유시설 보수·보강은 미뤄져
충남도는 특정관리대상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재난위험시설에 대한 대책을 추진해왔다. 특정관리대상시설은 재난발생의 위험이 높거나 재난 예방을 위해 관리가 필요한 시설을 말하며 A, B, C, D, E 등급으로 나뉜다. A와 B등급은 문제점이 없거나 양호한 상태, C등급은 구조물의 보조 부재가 손상돼 보강이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D등급은 노후화로 인한 구조적 결함으로, E등급은 심각한 노후화와 단면 손실로 안전성에 위험이 있는 상태다. D와 E등급은 ‘재난위험시설물’로 분류돼 특별관리 된다.
충남도에 따르면 2017년 11월10일 기준 도내 특정관리대상시설 4229개소 중 재난위험시설은 20개소(D등급 17, E등급 3개소)다. 시설유형별로는 교량이 11개소로 특히 많았으며, 옹벽·절개지 3개소, 판매시설 3개소, 공동주택 2개소, 대형공사장 1개소로 그 뒤를 이었다. E등급인 시설은 천안시 자유시장 A동과 S연립주택 옹벽, 홍성군 창정교다.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교량 대부분은 70~80년대 지어져 노후된 다리다. E등급을 받은 홍성군의 창정교를 비롯해 공주의 화월교, 천안의 광덕1교, 신흥교 등은 예산이 세워져 보강공사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공동주택 등 사유시설이다. 교량 등 공공시설은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어 보수·보강이 비교적 수월히 이뤄지고 있는 반면 공동주택 등은 관리 주체가 불명확하고 법적 강제력이 없다보니 보수 공사가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이 낙후지역에 있으며 영세한 거주자가 많아 시설보수에 대한 의지도 약하다.
재난위험시설 D등급으로 분류된 충남 천안시 문성동 자유시장 C동. 건물 붕괴를 경고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D등급을 받은 홍성의 H연립주택과 서산의 M연립주택에는 현재 20여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상가와 주택으로 혼용된 천안시의 자유시장 건물(A동 E등급, B·C동 D등급)은 지난 1960년대 말 준공돼 지난 2015년까지 12세대가 거주했다. 현재는 모든 거주자가 퇴거하고 출입을 막는 안전펜스가 둘러졌지만 여전히 점포 7~8곳이 운영되고 있다. 천안의 S공동주택의 옹벽(E등급), 금산의 B주유소 절개지·C아파트의 옹벽(D등급) 등도 건물 소유자가 보강공사에 나서야하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산시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관리부서가 사유재산의 보강공사 등에 예산을 집행하기는 어렵다. 또한 거주자 대부분이 영세해 공사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며 “시에서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보수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의치 않다”고 토로했다.
# 도시형 생활주택 89%, ‘지진 취약’ 필로티 구조
특히, 충남 도내 건물 중 내진설계가 된 시설은 10곳 중 2곳에 불과하다. 국민의당 윤영일 국회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따르면 공공·내진 대상 건축물 11만2506동 중 24.5%가 내진 성능을 확보했다. 공공 건축물의 경우 내진 설계율은 20.7%에 불과해 경북, 전남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저조한 수치다.
특히 이번 포항 지진으로 문제점이 불거진 필로티 구조 건물(건물 1층에 기둥만 세워 주차장 등으로 사용하고 2층 이상부터 실내공간을 짓는 방식)의 경우, 2015년 기준 충남 도시형 생활주택 338단지 중 89%(303단지)에 달한다. 필로티 구조는 기둥만으로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지진에서도 필로티 구조의 건물이 파손된 사례가 잇따라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한 상항이다.
한국기술교육대 이승재 건축공학부 교수는 “이미 고베 지진, 타이완 지진에서도 필로티 건축물의 피해사례가 발생했다. 이번 포항 지진에서 발견된 기둥파괴 현상도 이전 피해유형과 같다”며 “필로티는 공간활용 측면에서는 유리한 건축물이지만 제대로 설계·시공이 되지 않으면 기존의 벽·사무실 구조와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입게 된다. 필로티 건축물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설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lyo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