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의 복식조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박영선, 박지원 의원. 이들은 ‘환상의 복식조’를 이뤄 검찰의 효성 봐주기 의혹을 들춰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물론 영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1년 만에 등장했던 ‘전·의경만 먹는 미국산 쇠고기’ 논란은 네티즌들의 화를 돋웠고, “4대강 사업은 공사 업무범위를 벗어난다”는 수자원공사의 내부 법률검토 문건 공개도 정부의 무리한 사업 추진 의혹을 낳아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에 대한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은 국감 이후 정국의 ‘핫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집권 2∼3년차에 권력형 비리사건이 빈발했다는 ‘경험칙’도 효성 문제에 더욱 이목을 집중케 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감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지난 10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른바 ‘효성게이트’와 관련해 비자금 의혹, 국민연금의 효성 주식 매입 의혹, 효성의 불법 하도급에 대한 한국전력공사의 묵인 의혹, 하이닉스 특혜 매입 의혹, 조현준 효성 사장의 미국 내 부동산 보유 자금출처 의혹 등을 ‘5대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하든 특별검사를 하든 분명히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주일 뒤인 10월 21일 송영길 최고위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대정부 질문에서 추가사실을 확보해 발표할 계획이며, 정기국회 때 반드시 특검법을 통과시켜 사돈게이트를 척결하고 말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효성게이트 한복판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지원, 박영선 의원이 있다. 이들은 국감에서 ‘환상의 혼합복식조’를 이뤄 검찰의 효성 봐주기를 들춰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들은 검찰 내부의 ‘범죄첩보 보고서’를 입수해 검찰 스스로 효성 관련 사안들에 “위법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또 검찰이 지난 4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몰래 소환조사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먼저 비자금 의혹이다. 첩보 보고서에는 해외법인에 수천만 달러 과잉지급, 해외법인의 부실채권 액수 부풀리기, 환어음 거래를 통한 수수료 부당 지급 등 10여 가지의 비자금 조성 수법이 정리돼 있다. 보고서는 또 효성이 이 같은 방식으로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며·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및 배임, 조세포탈죄 등 위법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효성그룹과 관련된 석연찮은 자금 흐름 내역도 입수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검찰은 18개월 동안 사건을 쥐고 있다가 조 회장 일가와 무관한 효성중공업 임원의 사기, 효성그룹 건설부문의 70억 원대 비자금 조성만 확인한 채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결국 효성이 해외법인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당초 의혹은 사라지고 엉뚱한 결론을 내린 셈이 된 것이다.
이번 국감에선 국민연금공단의 효성주식 매입 의혹도 제기됐다. 최영희 의원(민주당)이 공개한 ‘국민연금 주식투자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4월 3일∼6월 26일까지 45일 동안 543억 4190만 원(80만 1700주)어치의 효성 주식을 순매수했다. 효성이 수백억대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에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 조석래 효성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 | ||
이석현 의원(민주당)은 정무위 국감에서 효성이 단독으로 참여한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건에 대해 산업은행과 우리투자증권 등 채권단이 ‘일괄 매각’이라는 당초 입찰조건을 ‘분할 매각’이 가능하도록 변경한 것도 ‘자금력이 달리는’ 효성의 주식매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특혜였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처음부터 분할매각을 공고했다면 다른 기업도 참여했을 것”이라며 “결국 대통령 사돈그룹인 효성에 하이닉스라는 대기업을 넘기기 위해 입찰 뒤 효성에 유리한 매각방식으로 바꾼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의혹은 해외 부동산 구입 의혹이다. 지난 10월 9일 재미교포 블로거 안치용 씨가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씨가 해외법인과 임원을 동원해 미국 내 고가의 부동산을 두 차례 매입했다는 주장을 편 게 발단이 됐다. 안 씨에 따르면, 조 사장은 2006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소재 리조트인 ‘란초우 발렌시아 빌라’의 빌라 2채 지분을 매입했다는 것. 앞서 2002년 8월엔 로스앤젤레스 뉴포트 해변에 위치한 ‘펠리컨 포인트’라는 호화빌라 한 채를 450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안 씨는 주장했다. 이 액수는 당시 국내법이 정한 국외 체류자의 주택구입한도(30만 달러)를 15배나 초과한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450만 달러 호화빌라 구입 주장이 제기됐는데 검찰은 다른 해외지사 임원들은 다 조사했으면서도 (주택 구입에 가담한) 유 아무개 상무는 수사하지 않았다”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검찰이 한 네티즌보다 못한 게 아니냐”고 힐난했다.
박영선 의원은 ‘조현준 등 (조 회장의) 아들 3인은 특별한 자금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매년 거액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바, 자금 출처가 효성 및 효성계열사 자금인지 조석래 증여자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범죄첩보 보고서 내용 일부를 언급하며, “검찰이 당시 제대로 수사만 했다면 호화빌라의 자금출처를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들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과 효성, 검찰 측은 각각 “공연한 의혹 부풀리기”,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효성 관련 재수사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다만, 검찰은 조현준 사장의 해외부동산과 관련해서는 수사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재보선 이후 정국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여세를 몰아 ‘특검 카드’로 여권을 더욱 압박할 게 뻔하다. 그 반대가 되면 민주당은 지도부 퇴진 주장이 본격화되면서 자중지란에 빠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재보선 승리 후 정국주도권을 잡아 효성 문제를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쟁점화하는 데 당력을 총집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