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화리조트서 4.3 문학 세미나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가 열렸다.
[제주=일요신문] 박해송 기자 = 사월의 제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작가들과 해외작가들이 4.3의 역사가 던져주는 사유의 시간을 나누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제주작가회의가 주관한 이번 전국문학인 대회에는 일본, 대만, 베트남 등에서 온 해외작가와 연구자,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 350여명 등과 제주작가들이 함께했다.
27일 한화리조트 제주에서 개막된 전국문학인 대회는 오는 29일까지 2박 3일간 제주시 봉개동 한화리조트 제주와 4.3 평화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그 역사, 다시 우릴 부른다면’이란 슬로건 아래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문학적 항쟁과 치유를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오후 4시부터 이어진 노래 공연.
전날 27일 현기영 작가는 ‘레퀴엠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이어서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라는 주제로 4개국 작가와 연구자가 참가하는 국제문학심포지엄이 열렸다.
28일에는 제주 출신 한림화 작가의 ‘제주4.3 사건 진행시 여성수난 극복사례’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라는 주제로 한 4.3문학세미나와 노래 공연 등이 진행됐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현기영 작가의 4.3문학 토크
이날 오후 1시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문혜원 아주대학교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는 ‘은폐된 진실을 복원하는 증언과 기록으로서의 시들’을 언급하면서 김석교의 시인의 시를 소개했다.
큰아들 열살 정원이 총 맞고 흙구덩에 떨어져 목숨 끓기면서도
어머니 등에 매달린 두살 막내 살리려고 “이 아이만 살려줍써 !”
“제발 하나만 살려줍써” 애원할때 “의지해서 살 사람이나 있냐 ?” 토벌대 또 다시
미친 총질로 정원이 숨통 끓어버리고 이미 숨소리 멈춘 둘째 창학이, 셋째 만강이, 어머니,
볼락볼락 숨 붙은 막내까지 다섯 모자 위로 흙 들이부어 덮어버렸지
(중략)
-김석교 시인 <태흥리 모자 쌍묘앞에서>부분
이 시에 대해 문 교수는 “위의 시에서 시인은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유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설사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증언과 재현을 목표로 하는 이 시들은 창작 주체에 따른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살 장소들을 소재로 한 시들은 언어로 재현된 다크투어리즘(죽음, 고난과 연관된 섬뜩한 기분이 드는 장소들을 방문하는 행위)과도 같은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이어 “그런데 이러한 증언의 방식은 ‘바람의 비문을 읽다’(2013)의 시들에서는 조금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 앞에서 설명된 시들이 학살 장면을 재현함으로써 학살의 잔혹함과 피해자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한 감정적인 반향을 의도하는 데 비해 학살의 구체적인 경위나 가해자 등을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학살의 실체를 알리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경훈 시인의 <평화>라는 시는 1948년 4월 28일 9연대 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총책 김달삼 사이에 있었던 평화 협상을 소재로 한 것이고 <조작>이라는 시는 협상 사흘 뒤인 1948년 5월 1일 우익청년단이 일으킨 오라리 방화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두 시는 이러한 경위를 따라가며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 교수는 “학살을 ‘증언하는’ 것에서 ‘말해주는’ 것으로의 변화는 4.3을 말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4.3을 앞으로 어떻게 계승하고 보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4.3둥이의 자식뻘인 1978년 전후에 출생한 세대만 하더라도 4.3은 실제 경험의 영역 밖에 있는 학습된 역사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이는 4.3의 시적 표현이 증언이나 재현외의 새로운 형상화 방법을 필요로 함을 말해준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정보 전달을 바탕으로 하는 시들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의 기조 강연자였던 한림화 작가는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행위 자체를 언급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 ‘4.3사건’을 주제 혹은 소재로 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오랜 기간에 걸쳐 취재한 바 있는 제민일보 고대경 기자의 말을 인용했다.
“문학이라는 그릇에 섣불리 담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눈을 감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작가는) 그래서 끓임없이 쓰면서도 항상 미진하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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