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왼쪽) 윤종룡 삼성전자 부회장 | ||
추석 연휴를 반납해야 하는 GE연수는 뉴욕에서 북서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오시닝 지역에 있는 GE크로톤빌연수원에서 있었다. 2002년 9월23일부터 10월15일까지 3주 동안 실시된 이 연수에 이 상무보가 참가하게 된 것은 제프리 이멜트 GE회장의 특별초청 덕분이었다.이멜트 회장은 GE그룹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인 2001년 10월 한국을 방문, 이건희 회장과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나 이 상무보의 최고경영자 연수과정 참가를 제안했다. 이 상무보는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 상무보의 GE연수 참가 사실이 알려지자 재계는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이 상무보의 경영자 수업이 어느 정도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느끼게 해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국내 재벌의 경우 대부분 후계 경영승계의 초점을 재산을 넘겨주는 데 집중하거나, 해외 유학이나 고속 승진을 통한 내부입지 강화 정도에 국한돼 있다. 이러다 보니 경영자로서의 자질 향상을 위한 경영수업은 매우 부족한 게 사실이다.그러나 삼성그룹의 이재용 상무보에 대한 경영자 수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재계가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점 때문이다.
사실 이 상무보는 이건희 회장이 약관 26세에 동양방송 이사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시기상 상대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때문에 이 상무보에 대한 경영수업의 강도는 부친이 받았던 것보다 더 엄격하고,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이 상무보에 대한 경영수업은 그룹경영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구조조정본부가 주관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는 이 상무보가 첫 출근한 2001년 4월2일부터 치밀하게 짜여진 경영수업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 상무보가 40세가 되는 2007년까지 강도높게 진행될 예정이다.
이 상무보의 집무실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25층에 자리잡고 있다. 이 층에는 윤종룡 삼성전자 부회장, 최도석 삼성전자 사장의 사무실도 함께 있으며, 건물 중앙의 엘리베이터 맞은편에는 이 상무보가 소속된 경영전략실이 위치하고 있다.이 상무보의 집무실이 있는 삼성본관 25층은 삼성그룹을 움직이는 헤드쿼터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다. 바로 윗층인 26층과 27층에는 삼성그룹의 싱크탱크 집단인 구조조정본부가 자리잡고 있고, 28층에는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이 있다. 25층은 삼성그룹의 최고 경영자를 향해 올라가는 첫 계단인 셈이었다.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내부 인사는 이건희 회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윤종룡 삼성전자 부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사장,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등이다. 그 중에서도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윤종룡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은 크게 네가지 방향에서 진행됐다. 첫째는 최고 경영자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쌓는 것이고, 둘째는 전자를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와 흐름을 읽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고, 셋째는 그룹 전체의 경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며, 넷째는 글로벌 경영감각을 체험 위주로 익혀나가는 것이다.
이 상무보는 이같은 네가지 방향을 전제로 먼저 경영 총론을 파악한 뒤, 경영 각론을 체험적으로 익혀나가는 단계별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돌발상황에 대비한 비상 경영체제 가동이라는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 비상경영 체제는 경영공백이나 과도기에 대비해 짜여진 것이다.이 상무보는 경영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쌓기 위해 그룹의 최고 전문경영인들과 25층 회의실에서 수시로 대화와 토론을 갖고 있다. 또 삼성경제연구소 전문 연구원, 국내외 경제 흐름 및 금융시장 동향과 관련한 국내외 금융기관의 경영, 경제 관련 연구원들과도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흐름은 구조조정본부가 수시로 전하는 보고서와 국내외 사업현장을 방문하는 등의 체험을 통해 직접 익히고 있다. 그는 ‘권위적인 조직문화보다는 원활한 의견교환을 하는 챌린저 문화’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업무적으로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직접 실무 담당자를 찾아가 격의없는 토론을 가졌다.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업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고듣는 체험학습이었다. 2001년 4월 그가 첫 출근한 이후 매년 일년의 절반 이상을 국내외 공장 방문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경영참여 직후인 2001년 5월부터 1백일 동안 삼성의 가장 오지 사업장인 브라질 마나우스공장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영국, 독일, 스페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을 순례했다. 귀국한 직후에는 곧장 수원, 기흥, 구미, 부산, 천안, 온양 사업장을 둘러보는 강행군에 나서기도 했다. 이 상무보의 사업장 방문은 단순한 견학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상무보의 사업장 방문을 직접 수행했던 삼성그룹 관계자가 전하는 얘기. “이 상무보는 국내외 공장을 방문하기 전, 해당 공장의 역사에서부터 생산품, 시장동향, 장점과 단점 등에 대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꼼꼼히 체크했다. 현장 방문에서는 주로 임직원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글로벌 경영감각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의 글로벌 경영감각은 국제 경제, 정치 분야의 리더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확고한 경영관과 세계관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경영참여 이후 제프리 이멜트 GE그룹 회장, 니시무로 다이조 도시바 회장, 잭 웰치 전 GE그룹 회장 등 세계적인 기업인과 만났고, 주룽지 중국 총리,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앨빈 토플러 등과도 만났다.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은 별다른 안팎의 저항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의 경영수업은 삼성그룹의 특성처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착실한 내실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의 해외 출장이나 사업장 방문, 외부 인사들과의 접촉 등 주요 일정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알려지고 있는 것도 이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경영참여 이후 이 상무보에 대한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은 매우 우호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재산증여 문제로 제기됐던 비판적 시각은 수그러들었고 삼성그룹 오너에 대한 디그니티(Dignity)도 회복되고 있다.그러나 이 상무보가 순탄하게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그 중에서도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것과 삼성그룹의 확고한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직면하고 있는 당면 과제는 현재의 경영수업을 통해 그룹의 미래전략을 확고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삼성의 경영이 개인플레이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그룹 경영에서 차지하는 이 상무보의 좌표가 절대적임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건희 회장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 반도체사업에서의 성공과 자동차사업에서의 쓰라린 경험은, 최고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기업 경영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상무보도 자신의 역할과 의사가 그룹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경영참여 당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 자본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나가는 데 일조할 계획이다.”이 상무보는 삼성그룹이 안고 있는 현안이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계가 이 상무보의 경영수업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것이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