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한적한 교외에서 정담 을 나누고 있는 구본무 회장. 구 명예회장은 평소 입버릇 처럼 말해온 “70세까지만 회사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지켰다. | ||
기와지붕으로 된 단층 양옥인 구 회장의 자택 넓이는 80평 정도다. 집에 들어서면 잔디가 깔린 마당 주변에 소나무, 단풍나무, 원추리, 비비추 등 주로 국내 자생 초목들이 죽 심어져 있다. 집안 인테리어는 구 회장의 소박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내 색깔은 특별히 화려하거나 눈길을 끄는 장식이 없는 수수한 느낌의 화이트톤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깔끔하고 심플하다.
구 회장은 조부 구인회 회장이 그룹의 모기업인 락희공업사(나중의 (주)럭키)를 설립하기 2년 전인 1945년 2월에 태어났다. 구씨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의 성격이 거침이 없고, 주변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면 어떡하든 도움을 주어야 할 정도로 동정심이 많은 것은 이런 성장환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의 유난스런 자연사랑도 그런 연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유교 교육을 받았다. 층층시하의 대가족 틈에서 자라면서 그에겐 예절과 자기절제가 몸에 배었다. 구 회장이 지금도 비공식적이든, 공식적이든 ‘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을 배려하는 구 회장의 심성은, 현재 LG그룹의 경영 모토인 ‘고객감동’의 배경이 됐다. ‘고객감동’ 경영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한다는 매우 단순한 경영론이기도 하다. 평소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해온 그는 “기업이든, 사람관계이든 공정하고 철저한 경쟁을 통해서만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타협없는 정직과 공정을 바탕으로 한 ‘정도경영’의 실천”을 경영의 최고 덕목으로 꼽는다. 그같은 경영관을 확립하기까지 구 회장은 젊은 시절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고교 시절엔 여느 10대들과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며 정신적인 방황을 하기도 했다. 당시 명문고였던 서울고에 진학했지만 졸업하지는 않았던 것이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병으로 자원 입대한 것도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다.
1964년 연대 상대에 입학한 구 회장은, 그해 추운 겨울에 훈련소로 향했다. 그의 군 입대는 부친 구자경 회장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부친은 장차 그룹의 경영을 이어갈 아들을 보다 강하게 키우기 위해 현역 입대토록 했다. 구본무 회장은 2년6개월 동안의 군생활을 마치고 1967년 만기 제대했다.
군제대 후 복학한 구 회장은 1년 정도 다니다 미국 애쉬랜드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애쉬랜드대를 졸업하던 1972년 부인 김영식씨와 결혼했다. 이어 구 회장은 클리블랜드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치고 1975년 귀국했다. 구 회장이 LG그룹에 입사한 것은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1975년 11월이었다.
당시 (주)럭키에 특채 형식으로 입사한 그는 대학원 졸업자라는 점을 인정받아 심사과장의 보직을 받았다. 그후 그는 입사 1년반 만에 수출관리 업무담당 부장으로 승진했고, 입사 4년 뒤인 1979년 이 회사의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본부장으로 승진한 1년 뒤인 1980년 그는 (주)럭키에서 금성사(LG전자의 전신)로 회사를 옮겼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금성사의 경영진에는 LG그룹 경영인맥의 또다른 중심 축인 허씨 집안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구 회장이 금성사로 옮기던 무렵 최고 경영인은 허신구 사장이었다. 구 회장이 금성사로 옮기자 재계에서는 부친 구자경 회장이 자식의 경영교육을 확실하게 시키기 위해 허씨 집안에 맡겼다고 해석했다.
구 회장은 금성사로 옮긴지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지만, 1983년 상무 승진명단에서 제외되는 설움도 맛보았다. 금성사 재직 당시 허신구 사장은 구 회장이 맡은 부서가 실적이 부진하다며 동료 임원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질책을 했었는데, 이 얘기는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구 회장이 그룹의 차세대 경영인으로 본격 부상한 것은 1989년부터였다. 당시 그룹부회장에 오른 그의 나이는 마흔네살이었다. 구 회장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룹부회장으로 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룹을 이끌고 있던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할 뜻을 비춘 때문이었다.
구자경 회장은 평소 “나는 70세까지만 회사에 몸담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엔 경영에서 손을 뗀 뒤 초야에 묻혀 지내고 싶다는 것이 구자경 회장의 뜻이었다. 이에 따라 가족들은 경영 후계를 논하게 됐고, 장손인 구본무 회장의 조속한 경영수업에 착수하게 됐다는 것이다. 구 회장은 부회장이 된 지 6년 만에 LG그룹의 3세 경영인으로 회장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고, 부친 구자경 회장의 나이는 70세였다. 구자경 회장은 평소 “70세까지만 회사일을 하겠다”고 한 말을 실천했다.
▲ 허신구 전 LG석유화학 회장 | ||
구 회장은 소탈한 성격 만큼이나 음식도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을 가리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구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다. 그는 여의도 LG트윈타워 내 일식당과 중식당을 자주 찾는다. 가끔 삼청동 수제비집이나 혜화동 칼국수집에서 밀가루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
해외 제휴사나 협력사의 최고경영자가 그룹을 방문하면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양식당을 이용한다. 구 회장은 해외 출장 중 기내에서 제공하는 빵과 포도주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대개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빵이나 포도주를 마시고 그대로 잠을 자게 되는데, 이럴 경우 살이 찌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구 회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술은 소주 반병 정도가 주량이다. 그의 음주 스타일은 절대 과음하는 법이 없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권하지도 않는다. 구 회장의 패션은 평일과 주말로 나누어진다. 평일에는 회색 및 감색계열의 싱글 정장스타일을 주로 입지만, 주말에는 가벼운 스타일의 콤비를 착용한다. 옷은 맞춤복이 아니라 계열사인 LG상사의 LG패션에서 나오는 닥스 브랜드의 기성복을 즐겨 입는다. 주말 등 가족과 나들이할 때 입는 옷은 화려하거나 튀는 색상보다는 은근한 느낌의 캐주얼을 좋아한다. 물론 집에서 지낼 때는 편한 티셔츠 차림이다.
구 회장은 회사 일과 가정 일을 철저히 구분한다. 집안 일은 거의 부인에게 위임하는 편이다. 구씨 집안의 전통이 ‘바깥 일은 남편이, 집안 일은 부인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식들에게 ‘약속은 꼭 지키라’는 자기의 신조를 강조하고 있다. 집안의 가풍인 ‘근검절약’을 강조하면서도 “가치있는 일에는 돈을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가르침도 준다. 구 회장은 평소 아침 6시면 기상한다. 전날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상시간은 거의 변함이 없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산책을 한 뒤, 오전 8시를 전후해 여의도 집무실에 출근한다.
구 회장은 출근 후 제일 먼저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글 읽기를 좋아하는 구 회장은 종합 일간지뿐 아니라, 시사 흐름이나 세태를 알기 위해 <일요신문> 등 시사 주간지나 잡지도 빼놓지 않고 탐독한다. 그가 요즘 주로 읽은 서적은 국내외 경제동향이나 신경영기법 및 첨단기술 동향을 담은 분야의 책이다. 경영서적 외에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환경보호와 관련된 자연서적도 읽는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강한 승부근성을 요구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언젠가 구 회장과 골프를 함께 친 외부 인사가 “회장께서 너무 골프를 잘 치기 때문에 골프실력이 모자라는 사장이나 임원들이 라운딩하기를 부담스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구 회장은 “골프를 잘 못치거나 점수를 가지고 누구를 탓해본 적이 없으나, 성의없이 대충대충 치는 것은 싫다. 뭐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요즘 그룹에 입사하는 신세대들은 이같은 승부근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구 회장은 신세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요즘 신세대들은 매우 활달하고 개방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개성주의와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료애와 희생정신이 부족하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조금 해보고는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역경을 딛고 뜻한 바를 이루어내는 인내와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구 회장은 이런 점에서 신세대가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편협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질 것, 둘째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질 것, 셋째는 기본에 충실하고 도전의식을 가질 것 등이다. 이는 구 회장이 평소 가진 인재관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현재 그가 경영에서 추구하는 ‘일등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가 강조하는 ‘일등주의’는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상대적 개념이 아닌 절대적 개념이다. 그는 2002년 신년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일등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있는 기업, 경쟁사들도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 누구나 인정하는 기업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등기업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