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부사장은 이미 현대차그룹의 운전대를 상당 부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 ||
이 회사의 계동 사옥 입성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토에버닷컴은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정보기술이 담당하던 현대-기아자동차 전산관리 부문을 넘겨받아 만든 회사였다. 이 회사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e-비즈니스 사업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현대’는 보수적인 전통 기업이다. ‘현대’라는 이름에서 묻어나는 이미지는 중동의 사막을 누비던 중장비와 거대한 조선소 등 중후장대함이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현대자동차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자동차사업의 특성상 현대의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정 부사장은 젊은 경영인답게 현대자동차의 보수적 이미지를 벗는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보수적 경영방식만으로는 첨단화되고, 급변하고 있는 21세기 경영을 주도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의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첨단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에 나섰다. 현대카드, 캐피탈 등의 금융업, 오토에버닷컴 등 전자상거래 및 정보 서비스업 등을 기존 비즈니스에 접목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 중의 하나가 IT 관련 사업의 진출이다. 오토에버닷컴 등 전자상거래 및 정보서비스업에 진출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오토에버닷컴은 출범 초기에는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판매 사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자동차 판매구조의 벽에 부딪쳐 온라인 판매사업을 포기(회사측은 잠정 연기했다고 밝혔다)하고, 대신 2001년부터 이 회사의 사업 포커스를 IT사업으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의 일반 관리 부문을 비롯해 생산, 구매 시스템에서부터 재무, 회계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모든 IT부문을 전담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는 이같은 IT부문을 통합하는 ERP시스템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현대차그룹의 IT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정 부사장은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부상한 텔레매틱스에도 본격 참여했다.
그의 이런 일련의 경영활동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IT사업을 자신의 경영 시험무대로 선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 부사장의 IT사업에 대한 야심은 원대하다.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오토에버닷컴이 현재는 그룹 계열사를 주고객으로 하고 있지만, 장차 자동차 관련 지식인프라를 바탕으로 사업범위를 협력회사로까지 확대해 세계 최대 자동차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전국 사업장을 돌며 직접 몸으로 부딪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컴퓨터에 받는다. 이들 정보를 바탕으로 그는 회사의 현업에 적용하며, 향후 IT사업의 전개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광범위하고, 드러나지 않지만 미세한 부분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1970년 10월18일 생인 정 부사장은 올해 만 33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이지만, 그의 경영수업은 올해로 벌써 6년째에 접어든다. 그는 휘문고를 나와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MBA)을 마쳤다. 그 후 그는 곧바로 일본계 회사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1999년까지 2년동안 근무했다. 그런 뒤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12월 부친 정몽구 회장의 부름을 받아 현대자동차 이사(구매담당)로 정식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입사 직후 구매총괄본부에 몸담았다. 경영을 위해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기초지식이 물품을 어떻게 조달하고, 이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2001년 3월 상무로 승진하면서 영업과 A/S 분야를 거쳤다. 현장을 파악한 뒤 경영 전반을 파악하는 수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같은 초기 수업을 받고나서 그는 2002년 1월 현대자동차 전무와 현대카드 등기이사로 본격적인 경영진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그룹내 주요 업무를 파악함에 따라 그는 2003년 1월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승진, 그룹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다가올 ‘정의선 시대’를 향한 착실한 행보를 내딛기 시작한 셈이다. 현재 그는 현대, 기아자동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기아자동차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 지난 2000년 임직원들과 함께 관악산에 올랐던 정 부사장 (앞줄 가운데 흰색 셔츠). | ||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물림인 듯하다. 주변에서는 “너무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원래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집안 내력”이라고 말한다. “일이란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을 받으므로 그만큼 솔직한 것이 없다”는 게 그의 ‘노동관’이다. 이처럼 맡은 업무가 많다보니 정 부사장의 근무지 또한 여러 곳이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는 물론이고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그리고 계동 현대사옥을 두루 돌며 집무를 보고 있다. 정 부사장의 업무현장은 이 곳에만 국한되지 않는 듯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의 사업장을 직접 찾아간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이 역설한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울산, 아산, 전주 등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은 물론이고, 전국의 A/S 사업장과 지역 판매 사업실, 지점, 물류센터 등을 돌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현장방문 일정에 반드시 직원들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한다. 오너 2세의 방문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지방 직원들도 허심탄회한 대화시간을 가지면 금방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의 이런 현장주의는 평소 부친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있지만, 생전에 할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보여준 경영방식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면이 강하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다녔던 고려대 도서관 건설현장에서 공사모를 쓰고 서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정 부사장은 사업현장의 분위기는 곧 직원들의 생각이므로 현장방문을 통해 직원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현장에서 듣는 직원들의 소리는 자신이 보고 받은 것과는 일부 차이가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직원들의 소리와 보고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최대 공약수를 찾아 자신의 견해를 도출한다. 경영인은 어떤 의사결정이라도 한쪽으로 기우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정 부사장이 이처럼 현장 순회를 중요시하는 것은 현대자동차 특유의 기업 구조와 연관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종업원 5만여 명의 국내 초매머드 기업으로, 전국적으로 약 900여 개의 사업장이 퍼져 있다. 따라서 본사에 가만히 앉아서 생산현장의 경영을 주관한다는 것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평소 울산공장과 전주, 아산 등 완성차 생산공장은 물론이고, 전국의 사업장을 직접 돌며 꼼꼼히 지시하는 등 현장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알려진 것처럼 스포츠광이다. 그는 사업장 순회 중 그룹 산하 스포츠단인 전북현대 축구단, 기아타이거즈 야구단, 현대캐피탈 배구단, 현대모비스 농구단 등을 직접 방문하거나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한다.
울산모비스 오토몬스농구단 주장인 오성식 선수는 “바쁜 일정을 쪼개서 농구단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정 부사장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정 부사장은 선수들 사이에 최고 인기”라고 전했다.
정 부사장은 스포츠 관람은 물론이고 직접 뛰는 것도 즐긴다. 특히 그의 수영과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기간 중에는 가족과 함께 거의 전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본부 임원이 전하는 정 부사장의 매력. “정 부사장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조직을 하나로 모이게 하거나,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나누는 등 유연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특성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의선 부사장은 상대를 끌어들이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것은 상대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먼저 낮추고, 스스로 유연해짐으로써 상대 또한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 부사장이 회사에 입사할 무렵 연구개발 부문과 영업본부 부문의 공동 미팅이 신설됐다. 연구개발과 마케팅은 서로 입장차이 때문에 회의를 가지면 자주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이를 감지한 정 부사장은 공동 미팅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가 끝날 때까지 남아서 일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푸는 데 한몫을 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은 아들인 정 부사장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 대단히 민감하다. 정 회장의 성격이 사옥 주변의 조경까지 조언할 정도로 꼼꼼하다는 점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관심이야 익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정 부사장은 나이 탓인지 아직 외부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그는 “외부인사를 만나는 일은 늘 긴장해야 하고,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몸조심은 자신에게 쏠리는 가족과 주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신독(愼獨)’의 마음 때문이다. 어느덧 공인의 위치에 올라있는 자신의 현재를 돌이켜볼 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부담감도 그에게는 있다. 한국 재계도 경영 3세대의 전면 부상이 가시화됐다.
현대뿐만 아니라 삼성, LG, SK, 코오롱 등 대부분 국내 대기업에서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는 시간의 흐름이 낳은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생사와도 연관된 중요한 전환기의 과정이다. 그 중심에 정의선 부사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