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부사장(왼쪽)은 어릴 적,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을 따라 곧잘 산행에 나서곤 했다. 지금은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오른쪽)과 가끔씩 서울근교 산을 오르며 긴밀한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 ||
이에 대한 정 부사장의 한마디. “연애시절부터 집사람과 함께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난 후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짬이 나는 대로 최대한 가족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제가 원래는 사진 찍기를 즐기는 편이 아닌데, 그렇게 어렵게 낸 소중한 시간이니 만큼 그 순간을 기록하고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사진으로 남기는 게 이젠 버릇처럼 돼버린 것 같습니다.”
정 부사장의 사진 속 표정에는 평범한 아빠이자, 가장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인자한 아버지로서, 자상한 남편으로서 행복을 숨길 수 없다는 표정이다.
정 부사장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무뚝뚝해 보인다. 그러나 그와 얘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돠는 달리 무척 다정다감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는 태생적으로 겉만 번지르한 형식이나 쓸데없는 격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정적인 그의 성격도 그런 점에서 연유한다.
정 부사장은 작년 12월에는 부인인 정지선씨와 두 자녀를 데리고 강릉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오죽헌에도 들르고 생전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즐기던 초당 순두부의 구수한 맛도 즐겼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그동안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겨울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점이었다.
정 부사장은 “가족들과 함께 자연을 호흡하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몸과 마음속에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소 정부사장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부인과 함께 영화도 보고, 수영도 하고, 스키도 타는 등 가능한 한 자연을 많이 접하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휴일이면 어디든지 떠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도 생겼을 정도다.
정의선 부사장의 이러한 가족사랑도 현대가의 가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가족들과 청운동 자택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식사 자리에는 해외출장이나 사업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참석하도록 했다.
정 명예회장은 언젠가 사석에서 ‘왜 아침식사는 가족들을 모두 불러서 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아무래도 점심과 저녁은 사업상 밖에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침만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정 부사장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한다. 그는 “겉보기에 할아버지가 사업에 전념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가족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강조하고 스스로 아기자기한 가족사랑을 실천한 분이었다”고 강조한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도 가정적인 면에서는 처지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정 회장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찍 귀가해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란 정 부사장의 ‘가족사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고 장기 출장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 가족에게 미안한 부분도 많다.
그의 가정에 대한 생각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항상 그리운 곳도 바로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족이 모든 힘의 근원이고 의욕의 원천이라고 그는 믿는다.아내와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도 정겹지만,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과 어머니인 이정화 여사, 그리고 누이 식구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도 정 부사장에겐 퍽이나 기대되는 가족 행사 중 하나다.
정 부사장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가까운 계곡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밥도 해먹고, 물장난도 치던 풍경들이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당시는 산에서도 음식을 해 먹을 수가 있는 때였는데, 그때 가족들과 함께 구워먹던 삼겹살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 부사장은 요즘 들어서도 가끔 부친과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르곤 한다. 등산은 할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도 매우 즐기던 운동이자 취미생활이었다. 가끔 할아버지와 함께 등반을 하다보면 평상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어 좋았다. 등산을 하는 시간이 할아버지와 장손자의 대화의 장이었던 셈이다.
▲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아침 식사를 매우 중요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 ||
정 부사장은 아버지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점이다. 일례로 정 부사장이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가서 공부(샌프란시스코대)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렇고, 공부를 마친 뒤 현지 일본회사(이토추상사)에 취직해서 근무하겠다고 했을 때도 부친은 두말없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사실 자식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더욱이나 정 부사장은 정몽구 회장에게 누구보다 귀한 외아들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고 열심히 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정 부사장은 지금도 부친이 자신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간섭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맡겨주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고 책임도 강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교육방식을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사실 정 부사장은 요즘 아이들이 너무 과잉보호 속에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 그같은 부모들의 그릇된 행동이 자식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도 애들을 너무 감싸지 말라고 부탁하곤 한다.
더구나 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절을 모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정 부사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다. 그래서 두 자녀에게도 늘 어른에 대한 존경과 상대에 대한 예절을 주지시키곤 한다.잘한 것은 확실하게 칭찬해주고 잘못한 것은 그때그때 지적해서 자신이 잘하고 잘못한 것을 아이들 스스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참 역할이라고 그는 믿는다.
지금도 정몽구 회장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식구들이 모인다. 이제 집안에 어린아이들도 생기고 식구들도 많이 늘어 한번 모이면 무슨 잔치나 명절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이렇게 식구들이 다 모이면 대화의 주제도 풍부하다. 가능한 한 회사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 부사장은 집안 어른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경영인으로서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낀다.
식구들이 모이면 가끔 윷놀이도 벌어진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서로 편을 갈라 윷을 던지고 말을 놓다 보면 각자 의견이 어긋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궁리하고 상의해서 공동의 의견을 도출하는 것도 윷놀이 재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윷놀이를 즐기는 동안 정 부사장의 어머니인 이정화 여사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사장이나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는 성격이지만 특히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음식은 이 세상의 어느 별미와도 비교할 수 없다.
사실 이정화 여사는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정 부사장은 이를 어머니의 성격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정 부사장이 말하는 어머니 이정화 여사는 한마디로 ‘외유내강형’이다. 매사에 신중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이지만 그 속에는 범상치 않은 지혜와 소신이 숨어 있다고 정 부사장은 평한다.
정 부사장은 “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 중 한 분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평소 매사에 소신껏 판단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저는 어머니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요즘에도 집안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을 챙기는 일로 보낸다는 이 여사는 가끔 출가한 딸들과 함께 외출하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일 정도로 가정적인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외부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정 부사장은 시대는 변했지만, 어느 시대이건 어머니와 같은 현모양처형이 존경받을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고 있다.
정 부사장이 가진 가정에 대한 소망은 평범하고 소박하다. ‘아이들이 탈없이 잘 자라 주고, 부모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 자신 역시 이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건전하고 상식적인 사고와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정 부사장은 요즘 더욱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그는 2003년 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경영을 책임지는 핵심 포스트의 한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2002년에 현대차그룹은 56조4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삼성(137조원), LG(112조원)에 이어 매출 기준으로 재계 서열 3위에 올라섰다. 2000년 8월 현대그룹에서 분리, 독립할 당시 SK에 이어 재계 5위로 시작한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입증한 놀라운 저력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는 전년보다 15.6%나 늘어난 65조2천억의 매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투자규모도 전년 대비 65.5%나 증가한 5조2천3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그치지 않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2010년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 진입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이 원대한 야망의 중심에 정의선 부사장이 서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현대차가 글로벌 톱5로 가는 등정의 가장 중요한 베이스캠프로 정 부사장의 위상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 부사장은 ‘세계 5위의 자동차메이커’라는 목표가 양적 팽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질적인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의 질적 향상’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이 성공적인 외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부터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부사장은 “당장 몇 대의 차를 팔아 우리가 세계 몇 위를 기록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 부사장의 경영관은 아직도 수치에 대한 논리로 경영능력을 평가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현실에 비춰볼 때 신선한 시각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