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 | ||
▲신상명세
이름:신동빈
출생지:일본
본적:서울 용산구 청파동 1가
직책:롯데그룹 부회장
생년월일:1955년 2월14일
부인:마나미(眞奈美)
자녀:1남2녀
▲학력
-1977년 3월 일본 청산학원(아오야마)대학 경제학부 졸업
-1980년 12월 미국 콜롬비아대 대학원 졸업(MBA)
▲경력
1981년 4월 노무라증권 입사
1982년 2월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근무
1988년 4월 노무라증권 퇴사
19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 입사
1990년 2월 일본 (주)롯데 이사
1990년 3월 호남석유화학 상무
1994년 8월 (주)코리아세븐 전무
1995년 3월 일본 (주)치바 롯데마린즈 대표이사
1995년 5월 호남석유화학 전무, 일본 (주)롯데리아 전무
1995년 12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 (주)코리아세븐 부사장
1996년 2월 호남석유화학 부사장
1997년 2월 롯데그룹 부회장
1999년 5월 (주)코리아세븐 대표이사
2000년 1월 롯데닷컴 대표이사
롯데가문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매스컴 기피증’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신격호 회장을 인터뷰하면, 그것만으로도 특종’이라는 소리까지 오간다. 이 점은 신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롯데그룹의 차세대 경영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도 비슷하다.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 부회장은 지난 1997년 2월 그룹의 부회장에 오른 이후 6년째 접어들면서 재계 안팎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국내외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가진 적이 거의 없다. 몇차례 매스컴에 등장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공식적인 인터뷰는 아니었다. 롯데가 사람들이 왜 이처럼 극도의 매스컴 기피증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롯데 관계자들은 “대중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천성 탓”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롯데의 거의 모든 사업이 대중적이다. 롯데의 기반사업인 껌도, 과자도, 백화점도 모두 대중적인 소비재 품목이다. 그럼에도 정작 이를 만드는 회사의 경영인이 비대중적인 점은 아이러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신 부회장이 매스컴을 기피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는 한국말이 서툰 때문이고, 둘째는 롯데그룹의 설명처럼 수줍음이 많아서다. 다른 이유를 들자면 아직 부친(신격호 회장)이 건재한 것도 매스컴 기피증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신 부회장은 올해 48세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았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90년 3월 호남석유화학 이사로 발령난 뒤였다. 그후에도 지금까지 생활의 모든 근거지는 일본이다. 그의 부인과 세 자녀들도 모두 일본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그의 집무실은 소공동 롯데빌딩 26층과 혜화동 코리아세븐 본사 등 두 군데에 있다. 소공동 사무실은 그룹부회장 집무실이고, 혜화동 사무실은 코리아세븐 대표이사실이다.
신 부회장은 태어난 곳도 일본이다. 일본에서 자랐고, 대학까지 다녔다. 그는 지난 1977년 일본 아오야마(靑山)대를 졸업했다. 이 대학에서 그가 전공한 분야는 경제학이다. 때문에 그의 한국어는 서툴 수밖에 없다.
반면 일어나 영어엔 능숙하다. 일본말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그의 영어 실력은 네이티브에 가깝다. 한국어에 서툴다 보니 언론이나 외부 사람을 만나기가 영 어색한 것이다. 그는 올해로 한국에서 경영인으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제는 임원들이나 주변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그의 억양은 여전히 어색하다.
신 부회장을 만나면 그가 매우 예의바른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항상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과 흐트러짐없는 옷맵시에서 스마트한 인상을 받는다. 그는 누구에게나 경어를 쓴다. 호텔 종업원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그룹 임원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신 부회장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일본풍이 배어있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의 이같은 예의바름은 태생적 환경과 연관이 깊은 듯하다.
신 부회장은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그의 부인은 오고 마나미씨다. 신 부회장보다 네 살 연하인 마나미씨와는 1985년 6월에 결혼했다. 신 부회장의 결혼은 당시 한일 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부인 마나미씨는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 물망에 올랐던 명문가 자제였다. 그녀의 부친은 대형 건설회사인 다이세이건설 오고 요시마사 당시 부회장이었다.
마나미씨는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대를 졸업했다. 신 부회장의 결혼은 후쿠다 전 일본수상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결혼식에도 나카소네 당시 수상을 비롯해 기시 전 수상, 후쿠다 전 수상 등 일본 정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해 이목을 모았다.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
신 부회장은 현재 일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는 국적을 하나만 선택토록 할 생각이다. 그는 “아내를 설득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히기도 했다.
신 부회장의 결혼에 가려진 숨은 얘기 하나. 신 부회장은 친형 동주씨(현재 일본롯데 부사장)보다 8년이나 먼저 결혼을 했다. 동주씨는 1993년에 결혼했다. 그는 재미교포인 조아무개씨와 서울 잠실롯데월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주씨의 결혼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얘기가 있다. 롯데 관계자들에 의하면 동주씨의 경우 당시 아오야마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학업이 늦어져 불가피하게 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또 모친인 시게미쓰 하치고씨가 큰며느리는 한국 여성으로 보기를 원해 며느리감 물색에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도 있다.
롯데가를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동주씨는 결혼문제로 부모와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부친 신격호 회장이나 모친 하치코씨의 큰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깊어 함께 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신동빈 부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일본에 있다. 현재 일본 롯데의 전무로 있는 신 부회장은 일이 있으면 한국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출국한다. 부친인 신격호 회장이 한국과 일본에 한 달씩 번갈아 체류하면서 업무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신 부회장이 직접 경영에 관여하는 회사는 대표이사로 있는 롯데닷컴이나 코리아세븐뿐이다. 기존 그룹 계열사 경영은 현황보고를 받는 정도이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오래 체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에서 머물 경우 시간이 날 때마다 경쟁사의 백화점이나 호텔을 혼자 둘러본다. 경쟁사 호텔이나 백화점의 진열상태나 접객요령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 그룹 임원들에게 참고자료로 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 부회장은 거의 모든 운동을 즐길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다. 골프는 물론 스키와 테니스 등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의 골프 실력은 보기(규정타수보다 홀당 1개씩 오버하는 것) 플레이어. 신 부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다. 그는 현재 일본 프로야구 롯데 마린즈의 실질적 구단주를 맡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신 부회장은 최연소 구단주로 꼽힌다.
신 부회장이 존경하는 인물은 소니그룹 창업자인 모리타 전 회장(작고)이다. 모리타 전 회장은 업무적으로 빈틈이 없었지만, 일을 떠나서는 부하직원들의 경조사까지 챙길 정도로 자상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 특히 모리타 전 회장은 전자산업 외길을 걸어 소니를 세계최대 기업으로 일구어 냈다.
신 부회장은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 점은 부친에게서 타고난 듯하다. 신 부회장은 한때 독일의 문호 괴테의 시에 심취해 일부러 독일어를 배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격호 회장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을 따 그룹 명칭을 정할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던 것은 잘 알려진 얘기.
신 부회장의 주량은 와인 한잔 정도이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곁들여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 직장인들이 즐기는 폭탄주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위스키가 가진 고유의 맛이 없어진다는 게 폭탄주를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는 한국말도 익힐 겸 한국 노래를 배우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그가 노래방을 찾거나 회식 때 즐겨부르는 노래는 가수 박강성이 부른 ‘문 밖에 있는 그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 부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겉보기엔 성격이 부드러울 것 같지만, 매우 강하다고 전한다. 업무처리도 뒷마무리가 완벽하지 않으면 매듭이 지어질 때까지 반복지시를 내릴 정도다. 신 부회장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88년 무렵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했다. 그는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MBA를 받은 후 노무라증권에 곧바로 입사했다.
1981년 4월에 입사해 만 7년을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한 신 부회장은 1988년 2월 퇴사한 뒤 곧바로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2년 동안 이 회사에서 근무한 그는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발령을 받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호남석유화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는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국에 온 지 4년 뒤인 1994년 그는 편의점 회사인 코리아세븐의 경영에 참여한다.
평소 유통분야에 관심이 많던 그가 시작한 첫 걸음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재계에서는 롯데의 차기 경영구도와 관련해 딱 부러진 예측을 하지 못했다. 한국 롯데는 동빈씨가, 일본 롯데는 동주씨가 맡을 것이라는 예측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던 상황이 한국 롯데의 차세대 경영인은 동빈씨라는 등식으로 가시화된 것은 1997년 2월 정기인사에서였다. 신 부회장이 그룹부회장으로 선임된 것이었다. 이 인사는 그룹의 차기구도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이후 신 부회장의 경영행보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부회장에 오른 이후 롯데닷컴을 설립하고, 이어 미도파, TGI프라이데이, 동양카드 등 굵직굵직한 사업체를 연달아 인수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에 앞서 신 부회장이 그룹의 후계자로 세간의 눈길을 집중시키기 시작한 사건은 또 있었다. 지난 2000년 말 터진 롯데호텔 농성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성희롱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30여년 동안 쌓아온 롯데의 이미지를 일순간에 실추시킨 불행한 사건이었다.
신 부회장은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살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2000년 10월 그룹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전사적인 윤리경영을 선포했다. 당시 신 부회장은 그룹의 윤리경영을 총괄하는 윤리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당시 재계에서는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의 회장 승계가 임박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사실 이때부터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신 부회장이 총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아직 신격호 회장이 건재하신데, 신 부회장의 거취문제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10년 전 아버님께서 ‘앞으로 20년은 더 하겠다’고 하신 적이 있으니 앞으로도 10년이나 남았어요”라며 조심스런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