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부회장 | ||
신 부회장이 이처럼 의상에 신경을 쓰는 것은 노무라증권에 근무하면서 몸에 밴 체질 때문이다. 특히 런던지점에 근무할 때는 주로 상류층 고객을 대하는 업무를 담당해 정장 차림이 습관화됐다는 것이다. 신 부회장의 성격도 의상만큼이나 깔끔하다. 신 부회장을 잘 아는 재벌 2세 경영인이 전하는 말.
“그는 매사에 군더더기가 없다. 심각한 사안도 그는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는 타입이다.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더 이상 토를 달지도 않는다.” 이런 성격 때문에 때로는 주변 사람에게서 ‘차갑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룹 임원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이해심이 많고 따뜻한 품성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신격호 회장도 마찬가지다. 신 회장의 경우 외모에서 주는 이미지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싸늘함을 풍긴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외모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 회장은 젊어서 타국(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했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역경을 딛고 성공하기까지는 남다른 냉정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신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재계 원로 경영인이 전하는 신 회장과의 에피소드 하나. “
신 회장은 평소 말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언제, 어떤 자리든 필요한 말 이외는 거의 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화가 난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한번은 신 회장과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1시간여 동안 단 두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 탓일까. 아들인 신 부회장도 평소 말수가 적다. 그같은 모습이 때때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갖게 한다. 물론 신 부회장의 표정이나 행동은 부친에 비해서는 한결 부드럽긴 하다. 사업에 대한 신 부회장의 생각은 부친만큼 명쾌하다. 다만 경영관에 있어서는 부친과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부친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라면, 신 부회장은 진보성도 갖고 있다.
이런 점은 그가 신사업 분야에 대해 비교적 공격적인 경영 의지를 보인 데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1995년 그룹 경영에 본격 참여한 이후 적극적으로 신사업 분야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설립된 롯데로지스틱스, 롯데닷컴, 코리아세븐, 롯데정보통신 등은 그의 신사업 진출 의지가 담긴 회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룹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동양카드, 미도파, TGI프라이데이 등 기존 기업들도 인수했다.
한국 재계와 가까워지기 위한 신 부회장의 행보는 신격호 회장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그는 재벌 총수의 모임인 전경련 부회장으로 참여해 나름대로 한국 재계에 뿌리를 내리려 애쓰고 있다. 신격호 회장의 경우 그동안 국내 재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둬왔다. 신 부회장의 이같은 모습은 장차 한국 롯데의 경영을 맡게 될 것에 대비한 포석임은 물론이다. 미래를 위해 한국 재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신 부회장이 부친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경영인들이 모여 만든 ‘V소사이어티’라는 모임의 멤버로 가입한 부분도 그 중 하나다. V소사이어티는 차세대 젊은 경영인들이 모여 만든 사교클럽형 모임이다. 여기에는 최태원 (주)SK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이재웅 다음 사장 등 잘나가는 젊은 경영인들이 멤버로 가입돼 있다.
신 부회장이 이 모임의 멤버로 가입한 점에 대해 구성원들조차 뜻밖이라고 말한다. 신 부회장의 측근은 “콜롬비아대 출신 동창들의 권유로 가입하게 됐다”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신 부회장이 국내 재계의 비공식 모임에 멤버로 가입한 부분은 과거 롯데가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모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나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등 급부상한 기존 재벌그룹 2세들은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왕보수’라고 할 수 있는 롯데의 차세대 경영인인 신동빈 부회장이 멤버로 가입한 것은 의미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그가 부친과 전혀 다른 경영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는 그룹의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해 “1, 2등을 할 수 있는 사업에는 적극 뛰어들지만 그렇지 않은 업종에는 섣불리 진출하지 않는다. 생소한 분야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지향한다는 얘기다.
▲ 신동빈 부회장(왼쪽서 두번째)이 세븐일레븐 점포 개점 행사에 참석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 ||
이런 그의 사업관은 신사업 진출분야를 롯데가 강점을 가진 레저나 유통 분야에 집중하는 데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편의점을 이용한 전자상거래 분야는 신 부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유통분야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유통 관련 저서인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라는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물론 이 책은 여러 사람이 함께 썼지만, 핵심 내용은 신 부회장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 부회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그의 형제들에 대한 얘기다. 신 부회장에게는 누이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과 형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있다. 신영자 부사장은 신격호 회장과 노순화씨 사이에 태어났고, 신동주-동빈 형제는 신 회장의 둘째 부인인 시게미츠 하치코씨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신영자 부사장은 신 부회장보다 열세 살 위이고, 신동주 부사장과는 한 살 차이다.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인 노순화씨는 신 회장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신영자 부사장을 낳고 젊은 나이에 작고했다. 때문에 신 회장은 엄마없이 자란 딸(신 부사장)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한국 롯데의 경영권이 신영자 부사장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그러나 신 부회장이 그룹경영에 참여한 이후 신 부사장의 역할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롯데그룹 관계자 역시 “신 부사장의 경우 롯데백화점 경영에만 참여할 뿐 전체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백화점(롯데쇼핑)의 지분도 신동빈 부회장이 21.74%, 신동주 부사장이 21.73%를 보유한 반면, 신영자 부사장은 1.13%만 갖고 있다. 뿐만 아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나머지 계열사의 지분도 신동빈-동주 형제가 훨씬 높다. 이런 때문인지 재계에서는 신 부사장은 한국 롯데의 차세대 경영인 레이스에서 사실상 처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그룹내에서도 이미 신동빈 부회장 체제로 굳혀져 가고 있다는 시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신 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게 될 것인가 하는 점과 그가 한국 롯데를 맡으면 형(신동주 부사장)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하는 점에 쏠려 있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들은 현상황에서 보면 ‘한국 롯데=신동빈, 일본 롯데=신동주’라는 경영구도가 굳혀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롯데의 내막을 뜯어보면 모태가 일본 롯데이긴 하지만, 현재는 규모면에서 한국 롯데가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자가 한국 롯데를 맡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차남인 신 부회장이 한국롯데를 맡게 된 부분은 당연히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해 롯데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형(신동주 부사장)과 동생(신동빈 부회장)은 생김새와 성격이 매우 대조적이다. 외모가 아버지를 닮은 형의 성격은 학구적이고 소극적인 반면 얼굴이 어머니 쪽에 가까운 동생은 모험적이며 적극적인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듯하다” 사업가 기질면에서 신동주 부사장보다는 신동빈 부회장이 훨씬 적극적이란 말이다. 부친(신격호 회장)도 두 아들의 이런 특성을 고려해 역할분담을 했을 것이란 추측인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두 사람의 결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동빈 부회장은 1985년 6월 일본 귀족 가문 출신인 오고 마나미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의 중매와 주례는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총리가,축사는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맡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반면 형인 신동주 부사장의 결혼식은 조촐했다. 동생보다 7년이 늦은 1992년 3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 예식장에서 재미동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딸인 은주씨와 식을 올렸다. 그러나 식장에는 가까운 친지들만 모였다. 실제 한국 롯데의 경영을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신격호 회장이 주도했으나, 그 후부터는 신 부회장이 중심에 서서히 부상했다.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월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주력 계열사는 아직 신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으나, 신 부회장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신 부회장은 금융과 국제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지난 1996년 초 그룹기조실 산하에 국제부를 신설토록 했다. 그는 현재 그룹의 해외사업과 관련해서는 기획단계부터 추진현황까지 총괄하고 있다. 신 부회장의 영향력이 그룹 안팎에서 가시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2월 그가 전경련 부회장으로 합류한 이후부터. 그는 전경련의 유통산업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차세대 리더로 대내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재계에 얼굴을 자주 내밀면서 그룹 내 활동 영역도 그만큼 넓어졌다. 그러면서 안개속에 가려져 있던 롯데의 미래 경영구도 역시 조금씩 모습을 내비쳤다. 신 부회장에 대해 그룹 관계자들은 ‘실용주의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현실성이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하기를 좋아한다.
또 공허한 얘기나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점은 부친인 신격호 회장을 빼닮았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신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있다.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보다는 내적인 충실함이 중요하다’는 의미의 이 글귀는 신 회장의 실용주의적 사고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신 부회장은 금융 분야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MBA를 취득한 후 곧바로 노무라증권에 입사한 뒤 8년동안 일했다. 롯데그룹이 동양카드를 인수한 것도 신 부회장의 생각이 크게 반영된 부분이다. 롯데그룹의 특성상 대부분 현찰 장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분야에 대한 그룹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향후 그룹의 금융 관련 사업추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현되진 않았지만, 한때 롯데그룹은 증권사 인수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