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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년 3월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사기를 흔드는 구본무 회장. | ||
특히 IMF 사태라는 뜻밖의 경제사건은 80년대 이후 굳어져왔던 재계의 대마들을 일거에 쓰러뜨렸다. 대우, 동아, 한진, 기아, 쌍용이라는 거함들이 IMF의 충격 속에 추풍낙엽처럼 사라졌다. 10대 재벌의 판도를 중심으로 50년 동안 명멸해간 대표 재벌들의 흥망사를 짚어본다.
<<1960년대 - 삼성 삼호 개풍그룹 등 은행주 불하받아 급성장>>
한국의 재벌사를 보면 지난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국내 10대 재벌의 서열에 잔류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과 LG그룹(과거 럭키금성그룹) 단 두 곳 뿐이다. 1960년대에 국내 10대 재벌 순위는 1위가 삼성이었고, 이어 삼호, 개풍, 대한, 럭키, 동양, 극동, 한국유리, 동립산업, 태창방직 순이었다.
한국 경제계에 재벌이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복원사업과 함께 형성됐다.당시 전쟁복구사업으로 뜬 사업은 제당, 제분, 방직, 화학 등 주로 의식주와 연관됐던 사업 분야였다. 따라서 이들 사업분야에 진출했던 삼성의 제일제당, LG의 락희화학 등이 급성장했고, 이들 기업이 대재벌로 성장한 삼성, LG그룹의 모태기업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삼성, 삼호, 개풍 등이 지난 60년대 재계 선두로 뛰어오른 것은 지난 1957년 실시된 정부의 은행주 불하 덕분이었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은행을 불하하던 시절 은행을 지배했던 기업들. 이들은 은행돈을 배경으로 많은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회사들을 차려 일찌감치 재벌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흥업은행, 상업은행, 조흥은행 등 3개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받았고, 삼성물산, 제일제당, 한국타이어, 안국화재, 동양방직, 효성물산 등 12개 계열사를 거느려 재계 1위자리에 당당히 올라서게 됐다. 그러나 삼성을 제외한 이들 그룹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호, 개풍, 한국유리, 동립산업, 태창방직 등이 10년 만에 재계 10위 밖으로 밀려나고 현대 한진 쌍용 신진 등이 급부상했다. 재계 2위였던 삼호그룹은 지난 60년대 후반 야당에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의혹 속에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1970년대 - 정부 수출드라이브 힙입어 한진 신진 현대 등 등장>>
1970년대는 제당, 제분 등의 산업 외에 정부가 주도한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중화학공업육성정책, 중동건설 붐 등이 신흥 재벌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에 따라 방직, 제조업 등에 기반을 두고 있던 기업들은 순식간에 재계 10대 순위에서 밀려나고 중화학공업이 갑자기 뜨기 시작하면서 국내 재계에도 새로운 판도가 형성됐던 것이다. 이 변화는 지난 72년과 79년의 10대 재벌 순위 변화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경련 자료에 의하면 1972년 국내 10대 재벌 순위는 1위가 여전히 삼성이었고, 60년대까지 5위였던 LG가 2위로 부상했다. 또 월남전 특수를 누렸던 한진과 자동차메이커로 뜬 신진, 건설붐을 타고 시멘트로 떼돈을 번 쌍용, 도로건설공사로 일약 돈방석에 앉은 현대, 화약사업으로 부상한 한화, 선박산업으로 부상한 극동해운, 백화점과 식품사업으로 돈을 번 대농 등이 눈부신 약진을 했다. 그러나 이 순위도 10년을 넘지는 못했다. 10•26사건이 터졌던 1979년 한국 재계에는 현대그룹이라는 거함이 등장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계 6위에 머물던 현대그룹이 중동건설 붐을 주도하면서 오일머니를 긁기 시작, 영원한 재계의 왕자로 군림하던 삼성을 단숨에 누르고 재계 1위로 등극했다. 당시 현대만 부상한 것이 아니었다. 와이셔츠 하나로 전세계를 누비던 김우중의 대우가 혜성처럼 재계 4위로 등장했고, 이병철 삼성 회장에 한을 품은 조홍래의 효성이 5위로, 양정모의 국제가 신발장사로 재계 6위로 부상한 것이다. 대신 국내 자동차시장의 원조격이던 신진자동차가 7년여 만에 사라졌다.
지난 70년대 후반 국내 재계는 현대, LG, 삼성, 대우의 4강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효성, 국제, 한진, 쌍용, 한화, 선경(현 SK) 등이 뒤를 바짝 추격하는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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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 ||
재계의 이런 판도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안정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현대가 향후 20년 가까이 부동의 재계 1위 자리를 굳혔고, 삼성, LG, 대우, 선경, 쌍용, 한화, 한진, 효성에 뒤를 이었다. 19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재계의 판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재계 6위를 질주하던 국제그룹이 괘씸죄로 몰락하자 신격호 회장이 설립한 롯데가 자금력을 앞세워 유통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재계 10위권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지난 80년대에는 급속한 경제신장에 따른 후유증으로 수천억원대의 대형 경제사건과 각종 로비의혹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또 한번 재계를 소용돌이 속으로 내밀었다. 재계 10위 안에 드는 그룹은 아니었지만,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려 ‘관광재벌’로 통했던 명성그룹은 지난 83년에 금융스캔들과 함께 무너졌다.
<<1990년대 이후 - 삼성20년 만에 1위 탈환 환락 속 기아 대우 쓰러져>>
1990년대 들어 군사정권이 퇴진하면서 정치적 변수는 크게 줄었으나, 재벌들이 앞다퉈 사세 확장에 나서면서 결국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한보와 기아는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끼치며 재계에서 물러났고, 재계 3위였던 대우그룹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기에 이른다.
또 부동의 1위를 지켰던 현대는 자식들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계열분리에 착수, 현대그룹과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으로 분리되게 된다. 이로써 21세기를 맞던 지난 2000년 재계의 판도는 또 한번 바뀌게 된다. 삼성이 20여 년 만에 순위 1위로 올랐으며, LG와 SK, 현대차 등이 새로운 재계의 축으로 등장했다. 또 민영화를 끝마친 포항제철이 재계 6위로 새롭게 등장해 재계판도를 형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