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금리 인하를 실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지만 바로 그 시기에 사상 최대의 비극인 뉴욕의 동시 다발 테러 사건이 터져 버리자 회생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이후 줄곧 맥을 못추고 있던 미국의 불황에 기름을 부은 것은 최근에 터진 몇몇 기업의 회계 부정 사건.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 서민들은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뉴스위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6월 22%에서 지난 7월에는 30%로 증가했으며, ‘노후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대답한 응답자 또한 6월 35%에서 7월에는 44%로 증가했다. 이 설문조사는 미국인들이 얼마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좋은 단면으로서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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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전문의 제임스 올리버 - 첨단주 투자했다 손실 퇴직도 못하고 일한답니다. | ||
지금까지 미국의 주가 하락으로 인해 공중으로 날아간 돈의 액수는 무려 75억달러(약 8조9천억원). 이 여파로 울상을 짓고 있는 미국인들의 수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경우 ‘주식 투자’를 통해 노후 대책이나 자녀들의 학자금을 마련해 놓기 때문에 ‘월가의 침체’는 곧 실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어 서민들을 절망의 늪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던 것은 세금 혜택을 통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놓은 ‘다우존스 20,000포인트 시대’라는 핑크빛 전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좋았던 시절’에 철썩 같이 믿고 투자했던 주식들이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려 퇴직 시기를 놓쳐 버린 워싱턴의 한 심장전문의인 제임스 올리버(60)는 2년 전만 해도 연금 생활의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 해변에 위치한 멋진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골프장을 드나들거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소일하는 등 2년 후에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 하에 당시만 해도 소위 말하는 ‘효자 종목’이었던 첨단 기술 및 전자통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정확히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모습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그때보다 먹고 살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할 형편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해야 일손을 놓을 수 있을지도 아직 까마득하다.
이미 8년 전 교단에서 물러나 있던 전직 교사 스티브 무어(71)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제 좀 쉬나 했지만 최근 다시 일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70대 노인이 하고 있는 일은 슈퍼마켓에서 손님들의 짐을 주차장까지 실어다 주는 아르바이트.
시급 6달러50센트(약 7천7백원)을 받고 있는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다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은퇴할 시기를 놓치거나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고 있는 노인 세대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자녀들의 학자금을 준비해 왔던 학부모들 또한 이번 주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 내 내로라하는 사립고등학교나 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 비용은 2만5천달러(약 2천8백만원) 정도. 웬만한 서민들에게는 빠듯한 액수다. 이런 서민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서 정부가 내놓은 것이 세금 혜택이 있는 ‘학자금 절약 플랜’이었다.
주식 펀드를 통해 자녀들의 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장려한 이 플랜은 하지만 지금은 계속되는 주가 하락으로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몇몇 대학의 경우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신청한 학생들의 수가 최근 몇 년간 무려 65%나 증가하기도 했다.
현재 45세에서 55세인 ‘베이비붐 세대’ 또한 다가올 미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애널리스트인 크리스 피셔는 “40~50대 기성 세대들의 경우에는 70세 혹은 그 이상을 퇴직 시기로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내다본다. 반면 “젊은 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그들에게는 아직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 증시가 하락세인 지금이 투자하기 적당한 때”라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부시 대통령이 회계부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기업개혁법안에 서명하는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하자 주식 시장은 다시 호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다. 부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 경제를 신뢰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특히 금융 전문가들의 불신은 더하다. 증권 브로커인 토니 리치(32)는 “미국 증시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지금 제로다”라고 말한다.
앞으로는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는 그는 “부동산 또한 언젠가 가치가 하락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휴지 조각이 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는 말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재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