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부터), 손동호 강서특수학교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4일 오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강서 특수학교 설립 합의문을 발표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일 강서구 국회의원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강서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서울 강서구 가양동 특수학교(가칭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협력 합의를 맺었다.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3년 동안 난항을 겪던 특수학교 설립을 원활히 진행하고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상생과 협력을 약속한 것.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합의문을 통해 ▲인근학교 통폐합 시 그 부지를 한방병원 건립에 최우선적으로 협조 ▲공진초 기존 교사동을 활용한 주민복합문화시설 건립 ▲신설 강서 특수학교 배정 시 강서구 지역학생 우선 배정 등을 합의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강서구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한 지 1년 만에 이뤄진 조치다. 서울시교육청은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주민들과 협력하는 학교설립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전했다. 이번 합의에서 서울시교육청이 협조키로 한 국립한방병원 건립은 제20대 총선 당시 김성태 의원의 선거 공약이다. 강서구가 명의 허준의 고향인 만큼, 일부 주민들은 한방병원 건립으로 강서구를 ‘한방 특화 지역’으로 발전시키길 기대해왔다. 김성태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진학교가 우여곡절 끝에 저희 지역 가양동에 자리 잡게 됐다”며 “교육청과 지역주민이 서로 더 이상의 갈등을 빚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 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면서 합의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가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대신 한방병원을 유치시키겠다는 일종의 거래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5일 서울교육청 정문 앞에서 “합의할 수 없는 것을 합의하고 거래할 수 없는 것을 거래했다”며 “이미 설립이 결정돼 공사가 시작된 마당에 반대 측과의 ‘합의’라는 것은 행정적·법적으로 불필요한 절차”라고 비판했다.
실제 강서구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이번 합의에 공감하지 못했다. 강서구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를 10년 넘게 키워온 학부모 A 씨는 “이번 조치는 특수학교를 기피시설로 치부하는 일종의 대가성 합의로, 장애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에게 상처만 입혔다”며 “당사자인 우리들은 이런 합의 내용을 협의 과정이 아닌 기사를 보고 추후에 알았다”고 말했다.
학부모 B 씨는 “지난해 우리가 무릎 꿇으며 바란 건 장애든 비장애든 학생들의 교육권이 제한 없이 보장돼야 한다는 인식의 공유였고, 이에 대한 합의가 조금씩 이뤄져 가던 상황이었다”며 “근데 이번에 교육청이 보인 처사는 결국 이 모든 노력을 뒤엎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 C 씨는 “여론이 바뀌면서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도 점차 잦아들면서 차분히 진행되던 중에 이런 결정이 난 것에 당혹스럽기만 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가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수학교 설립 시 교육청이 적극 협조·지원키로 한 한방병원 건립은 학교 통폐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학교 통폐합을 통해 마련된 부지가 한방병원 건립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서구 일반학생 학부모들은 당장의 통폐합을 원치 않고 있다. 이은자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합의문 발표 시 한방병원 건립이 강조되면서, 학교 통폐합이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자연스런 행정절차가 아닌 특수학교 설립의 대가인 한방병원 유치를 위한 하나의 절차로 비춰지고 있다”며 “결국 일반학생 학부모들의 비난이 다시 특수학교로 향할 우려가 크다. 교육청은 이를 감안하지도 잘 설명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전국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가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특수학교 설립합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진학교는 서울시에 17년 만에 생기는 특수학교다. 이번 사례가 향후 서울 내 특수학교 설립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을 시, 주민요구에 따라야 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민희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강서구 한방병원 건립 같은 조건을 내밀며 특수학교를 흥정,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선 강서구 외에 서초구와 중랑구 두 곳이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초구 특수학교는 이미 착공했으며 중랑구 특수학교는 설립을 위한 부지확보 작업에 나서는 중이다.
김성태 의원이 장애학생과 학부모들에 대한 이해 없이 지역구 표심을 챙기기 위해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김 의원은 자신의 공약이었던 한방병원 설립 부지를 서진학교가 들어설 위치인 공진초등학교 부지로 정했다. 김 의원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강서구 주민 등과 숱한 협의와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 C 씨는 “김 의원은 끝까지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했던 사람인데, 지금에 와서 이를 중재하겠다고 하니 속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의 이은자 센터장은 “결국 이번 합의에서 김 의원은 병원과 학교 건립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학부모들은 속된 말로 노련한 정치인에게 놀아났다고 표현한다”고 밝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특수학교는 기존의 계획대로 건립하면 될 뿐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지역주민의 표가 아무리 급하다 할지라도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며 김 의원의 합의 개입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수학교의 원활한 착공을 진행, 내년 9월 개교를 준수하기 위해 합의를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사 진행 중에 이를 반대하는 물리적 행동이 발생할 경우 학교 설립에 지장이 생길 수 있어 주민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 것”이라며 “협의 과정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배제된 점은 저희들의 불찰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합의는 오히려 지역 주민, 정치인, 교육청이 특수학교 설립에 협력하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성태 의원실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의기구로서 중재역할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우리가 나선 것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풀기 위한 것”이라며 “마치 이것이 직거래를 한 것처럼 보여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역 구성원들의 접근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특수학교 설립은 절차·행정상으로 일반학교 설립과 동일하다. 헌데 이번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은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설립한 모습이라는 것.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조치는 정치인과 교육감이 특수학교를 기피시설로 치부, 장애학생들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게끔 만든 것과 다름없다”며 “교육청은 왜 이 지역에 특수학교를 설립할 수밖에 없는지를 주민들에게 설득하고, 보상 등의 마련 없이 타당한 절차를 밟아 원안대로 추진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