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삼성카드 사장 | ||
사실 국회 정무위의 경우 예년에도 국정감사 기간 중 감사 대상처인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를 감사할 때면 종종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장이나 기업체 최고경영자, 임원 등을 증인석에 불러내기도 한다.더욱이나 기업체 경영인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기업체 등 피감기관의 경우 어떤 연유에서든 최고경영자가 국감증언대에 서게 되면 회사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것으로 우려해 가급적 빠지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 등 애를 쓴다.이번 국정감사 기간에도 정무위의 금융감독위원회 감사에서 김승유 하나은행장 등 은행권 인사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 등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증인으로 신청됐다.
또 공정위 감사에서도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 등 현대차 관련 2명 등 9명의 재계 인사들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경우 삼성카드 사장도 당초 이 범주에서 국감증인으로 채택됐었다. 그런데 이 사장은 정무위의 최종 국감증인 선정 단계에서 알게모르게 빠졌다는 것. 문제는 증인으로 채택된 대부분의 인물과는 달리 이 사장이 증인 명단에 낀 부분. 이 사장은 삼성카드의 CEO일 뿐, 이 회사가 특별히 문제된 적은 없었다.그런데도 이 사장이 증인 신청 명단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이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대중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의 뇌물수수 사건과 이 사장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 지난 8월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 정으로 향하는 김홍업씨 | ||
당시 김홍업씨는 검찰조사에서 “1998~2000년 사이에 현대그룹으로부터 16억원, 삼성그룹으로 5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해 정·재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문제가 불거진 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와 삼성의 엇비슷한 사세를 놓고 볼 때 삼성이 현대보다 10억여원이나 로비액이 적었던 이유는 뭐냐”는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이 같은 의문은 단순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하지만 이 ‘의문’은 김홍업씨가 삼성 계열사에서 분양한 서울 서초동의 한 호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새로운 의혹으로 번졌다. 김홍업씨의 아파트가 의혹의 초점이 된 이유는 이 아파트가 매매 형식을 거쳐 김홍업씨 소유로 넘어갔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재계에서는 이 아파트의 소유가 정당한 매매절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특혜성 분양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문제가 된 김홍업씨 소유 아파트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 주택부문이 지난 2000년 7월 완공한 삼성서초가든스위트. 이 아파트는 99년 6월 분양 당시 평당 분양가가 1천9백70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고, 이탈리아산 천연대리석을 깐 거실바닥이며 금색 도금한 수도꼭지와 샤워기 등을 갖춘 초호화 아파트였다. 그래서인지 3개동, 1백41가구로 지어진 이 아파트단지는, 분양가가 가구당 21억원대에 달했지만 경쟁률이 3 대 1에 이를 정도로 재력가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결국 이 아파트는 많은 관심 속에서 분양이 완료됐다. 분양자 명단에는 이경우 삼성카드 사장 이름도 들어 있었다. 이 사장은 단지 내 최고층 아파트이자 펜트하우스(맨 꼭대기층)로 불린 23층의 83평형 아파트 두 채 중 한 곳을 분양받았던 것.양 옆에 베란다가 있어 단지 내에서도 최고로 꼽힌 이 아파트는 저층부 83평형대 아파트보다 수억원이나 매매가격이 높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 김홍업씨가 소유한 서초가든스위트 23층의 ‘펜트하우스’ | ||
당시 이 사장은 동작구 신대방동에 실평수 50평형대(시가 5억원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니, 고가 아파트를 한 채 더 구입한 것이다. 물론 이 사장은 지금도 신대방동 아파트에 살고 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이 사장은 새로 분양받은 삼성 아파트를 6개월 만에 14억원을 받고 2001년 2월 김홍업씨에게 매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첫째 의문은 김홍업씨가 서초동 아파트 완공 직후 전세계약을 맺고 이 아파트에 입주한 것으로 알려진 점이다. 건물 등기부등본에는 당시 아파트 소유자였던 이 사장과 김홍업씨 사이에 전세계약을 맺었다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김씨가 지난 7월 구속 당시 자신의 변호사인 유제인 변호사를 통해 해명한 아파트 매입자금과 관련해 “홍업씨가 홍은동에 가지고 있던 아파트 매매대금 3억5천만원, 대출금 3억원, 보유하고 있던 자금 등을 합쳐 이 아파트를 샀다”고 설명했다. 또 이 아파트에 홍업씨가 거주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홍업씨가 외국인 임대 등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이 아파트를 샀으며, 당초 홍업씨가 이 아파트에서 거주할 생각도 했지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주위 조언에 따라 현재 비워둔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 아파트 매매를 둘러싼 의문은 이 사장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지 불과 6개월 만에 왜 김홍업씨에게 넘겼느냐는 점이다. 여기에 아파트 완공 직후 김홍업씨가 문제의 아파트 전세계약을 맺은 것, 그리고 그 전세계약이 문서상 나타나지 않는 점 등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지난 7월 김홍업씨 뇌물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바로 그날, 우연의 일치인지 이경우 사장이 해외로 장기 출장을 떠난 점도 ‘펜트하우스 뇌물설’을 부풀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삼성에선 김홍업씨 뇌물 사건이 터지자 김씨에게 준 현금이 “대가성 없는 활동비”라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제의 아파트 매매에 대해선 ‘개인간의 거래’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로 이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끝내 무산됐다. 김홍업씨와 이경우 사장의 아파트 매매는 또다른 미스터리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