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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9년 삼성차 처리와 관련해 만난 이건희 회 장과 김우중 회장. | ||
당선자 시절 DJ는 전경련에서 재벌총수들과 만나 자신이 직접 문안을 짠 구조조정 동참,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투명성 강화 등의 5개항 합의문을 제시해 도장을 받아내면서 압승했다.
삼성차 매각, 반도체 빅딜, 기아차 매각 등 초기에 이뤄진 초대형 빅딜은 DJ에게는 전승기념품이었고, 재벌들에게는 패전의 상처였다. 이 승리를 발판으로 DJ는 분배정책이 골격인 ‘DJ노믹스’를 앞세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강도높게 재벌을 압박했다.
DJ와 재벌은 지난 99년 부채비율 200% 미만 감축, 결합재무제표 도입, 소액주주권 인정 등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강하게 부딪쳤다. 그러나 권력의 힘과 경제정의라는 명분에 밀린 재벌들은 속수무책으로 DJ가 요구한 모든 것을 수용했다.
DJ는 집권 초기부터 재벌의 저항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구성, 재벌의 독자적인 세력결집을 원천봉쇄했다. 노사정위는, 과거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정-재계가 가지고 있던 것을 정-재-노동계로 분산시켜 결국 재계의 목소리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노사정위가 깨진 것이 재벌의 불만 때문이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DJ와 재벌의 전쟁은 2000년 들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대우, 현대 등 대그룹이 침몰하면서 DJ정책이 크게 위협받은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DJ와 재벌의 관계는 기존의 대립관계에서 조금씩 화학적 결합을 해가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재벌들이 DJ와 대결구도에서 유화관계로 전략을 수정한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친화력은 집권 말기 들어 소멸했다. 전략적 제휴가 근본적인 견해차이를 좁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 주5일근무제 도입은 DJ와 재벌이 결합할 수 없는 대표적인 노선상의 차이였다.결국 DJ와 재벌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