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정 후보의 현대중공업 주식신탁 유치에 발벗고 나섰던 은행들이 “괜히 해본 소리에 호들갑만 떨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 11월15일 이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정 후보는 “그렇게 하기로 정한 뒤 주식신탁이 끝난 줄 알았다”고 밝혀 아직까지 주식신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되자 은근히 정 후보의 주식 신탁을 기대했던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차일피일 신탁을 미루고 있는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정 후보가 자신의 현대중공업 주식을 신탁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9월17일.
당시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재벌 기업가의 이미지를 씻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전체를 금융기관에 신탁하겠다고 했다. 2002년 11월 말 현재 정 후보의 보유지분은 전체의 11%인 8백30여만주로 알려졌다. 평균 주식가격이 1만8천원대임을 감안하면 그의 주식 평가액은 1천5백억원에 이른다.
때문에 은행들로서는 이 막대한 신탁 물량을 수탁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러나 정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주식신탁을 선언하고도 두달이 넘어가는 현재까지 이 문제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 입장.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정 후보가 과연 이 지분을 신탁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 후보가 당시 밝힌 신탁 방식은 유가증권 관리신탁. 이는 주식을 은행에 신탁하고, 은행은 관리 수수료만 받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신탁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수탁하는 은행은 수수료 수입만 해도 꽤 짭짤하다.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후보측은 보유지분을 신탁하겠다고 선언한 얼마 뒤 각 은행에 공문을 보내 입찰을 시도했다는 것.
▲ 지난 9월 17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뒤 지지자들에 둘러 싸여 손을 들어보이는 정몽준 후보. 주식신탁 발언도 이날 나왔다. | ||
실제로 대통령 후보 등록을 열흘 남짓 남겨둔 현재까지 정 후보는 자신의 주식 신탁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들은 당초 얘기와는 달리 정 후보측에서 당선 가능성과 의결권 위임 등에 따른 위험이 크다고 판단, 주식신탁 계획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1월15일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후보단일화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황이어서 주식신탁 실현여부는 후보단일화 문제가 어떻게 판가름날 것인지 그 결과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추측이다. 만약 후보단일화 논의과정에서 자신이 단일후보로 정해지면 주식신탁 선언을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을 경우 유야무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일후보로 자신이 뽑히지 못할 경우 후보를 사퇴하거나, 단독 출마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당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주식신탁을 강행하는 모험에 나서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정몽준 후보진영의 이달희 보좌관은 “현재 주식 신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정 후보의 변호사가 여러 시중은행과 접촉 중에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로선 정 후보가 대통령 후보등록을 하기 전에 주식신탁 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될 지는 말할 수 없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 후보측의 이같은 태도는 정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후보등록을 하게 될 경우 주식신탁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없던 일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이 부분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입장은 “본인(정 후보)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일정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또다른 관계자는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전제하면서 “주식신탁이 현실화될 경우 정 후보로서는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며 현 상황으로는 신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 쪽으로 전망했다.
주식신탁을 선언한 이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현실성없는 조치”라고 비난하고 나선 부분도 정 후보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정 후보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편법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며, 대선에 출마하려면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도 “정 후보가 현대중공업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나서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며 그 방법으로 “대주주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같은 안팎의 압박에 부닥치자 정 후보는 주식신탁을 강행하더라도 당초 계획한 재벌출신 이미지 탈피라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면 굳이 주식신탁이라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