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주장은 반도체 빅딜과 관련해 정부가 ‘민간 자율’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당사자인 LG그룹 등 재계는 ‘강제적 빅딜’이라고 맞서고 있는 점과 맞물려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이 부분은 향후 반도체 빅딜의 성패 여부를 둘러싸고, 합병실패에 대한 책임소재 등이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전략적 M&A의 배경과 성공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반도체 빅딜은 민간주도의 모양새를 갖춘 사실상의 정부 주도의 합병”이라고 못박았다. 보고서는 “당시 반도체 빅딜이 이뤄진 배경은 1997년 12월 IMF와 정부의 합의의향서와 대통령 당선자이던 DJ와 재계가 합의한 기업구조개혁 5대 기본과제에 따른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고서는 “DJ 정부는 1998년 6월 전경련 회장단회의에서 빅딜의 원칙합의를 이끌어낸 뒤, 해당 기업이 빅딜에 반대할 경우 워크아웃을 실시하겠다는 등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 주도의 모양새로 이뤄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은 시너지효과가 약하고, 반도체시장이 침체되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 지난 1999년 4월19일 정몽헌 현대 회장(왼쪽)과 구본무 LG 회장(오른쪽)이 이헌재 금감위원장(가운데)의 중재로 반도체 빅딜 타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 ||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도체 빅딜은 공급과잉 해소라는 당초의 추진 목적을 외면한 채 업체간 빅딜 성사에만 치중했던 점이 실패의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향후 빅딜 실패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하고 있다. 보고서는 빅딜의 방향이 왜 현대전자에 LG반도체가 합병되는 형식을 취했느냐는 부분과 관련해 “정부의 독려로 현대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왜냐면 합병 직전이던 1998년 LG반도체는 흑자였지만, 현대반도체는 장기간 적자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흑자를 내는 우량업체를 적자기업에 합병시킨 것은 동반부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현대반도체에 대한 특혜시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반도체 빅딜과 관련해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지금까지 전경련 회의에 장기간 참석하지 않는 등 강하게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향후 LG그룹측이 현정부의 빅딜 주체자를 대상으로 법적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오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빅딜 이후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으나 LG반도체 인수가격인 2조6천억원 등 6조5천억원의 부채를 안고 출발해야 했던 상황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빅딜을 주도하기 시작한 당시부터 LG반도체와 노동계의 반발이 심했으며, 특히 제품수명주기가 짧은 반도체 분야에서 현대와 LG의 기술방식과 생산시스템이 전혀 다른데 합병을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회의론이 많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강제적인 빅딜이 이뤄진 직후인 1999년 2조4천억원의 흑자를 냈으나, 출범 1년 뒤인 2000년에 5조원, 2001년에 2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사후관리도 소홀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결과는 합병 후 출범한 하이닉스의 과도한 차입금 부담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돌발사태 대응능력 부재, 설비투자 부담 등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했다.
연구소는 특히 보고서에서 반도체 합병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빅딜 이후 정부나 현대측이 사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과도한 부채 부분에 대해 보고서는 “LG반도체에 인수대금 2조6천억원, 추가 설비투자비 등 총 6조5천억원의 자금부담을 안고 출발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현대전자가 인수대상 기업인 LG반도체의 부채까지 승계함에 따라 합병 후 원금상환과 함께 이자 부담 등 금융비용 해소에 힘을 소진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로 인해 합병 직후 현대전자의 부채비율은 3백50%까지 치솟았다. 여기에다 세계 반도체 가격의 하락이라는 악재가 겹친 것도 빅딜 실패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와 경영진은 빅딜 성공분위기에 젖은 나머지 악재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 미흡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은 빅딜 직후이던 1999년 반도체 부문 매출을 6조4천억원으로 예상했고, 2000년에는 8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는 등 낙관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현대전자측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합병 직후인 지난 2000년 들어 1백28메가 SD램 가격이 개당 20달러선에서 2001년 초에 5달러로 급락했으며, 9•11테러사태 이후에는 개당 1달러 밑으로 폭락했던 것이다. 결국 빅딜의 실패는 정부의 강제적인 추진과 빅딜 이후 주체들의 지나친 낙관주의, 예상치 못한 반도체시장의 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