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계 투자사 GRA 소유 서울 중구 ‘에이 스타워’. 우태윤 기자 | ||
여의도 대우증권빌딩(골드만삭스)과 역삼동 로담코타워(로담코), 무교동 현대상선빌딩(모건스탠리), 여의도 SKC빌딩(론스타) 등 10여 개 대형빌딩이 다시 매물로 부동산시장에 나온 것.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외국계 자본의 탈출이 시작됐다는 시각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수익률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외국계 자본의 탈출 시각. 골드만삭스나 로담코, 론스타 등 국내 대형 빌딩을 사들인 주체세력은 외국계 펀드들이다.
현재 시중에 매물로 나온 대부분의 대형 물건들 대부분이 이런 투자펀드 소유의 빌딩이다. 싱가포르투자청 등 장기투자형 매수주체들은 아직 매물을 시장에 풀지 않고 있다. 때문에 ‘투자펀드의 매물 출하=외국인 국내 탈출’이라는 시각에서 이들의 움직임이 국내 경제 동향에 대해 그만큼 비관적인 예측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외국계에 넘어간 도심 대형 빌딩은 의외로 많다. 도심에서 이정표 노릇을 하던 빌딩 중 상당수가 외국계로 넘어간 상태다. 6만4천 평의 초대형 빌딩인 역삼동 스타타워가 미국계 론스타에 6천9백억원에 넘어갔다. 또 수차례 건물 공사 주체가 바뀌는 통에 공사기간만 10여년이 걸린 무교동 파이낸스센터빌딩은 싱가포르투자청이 차지했다.
남산 3호터널 입구의 아시아나빌딩 역시 싱가포르투자청이, 무교동의 코오롱빌딩은 모건스탠리로, 서울역 앞의 벽산빌딩은 싱가포르계 펀드인 GRA가, 여의도 증권타운의 동양증권빌딩은 론스타가, 그 옆의 SK증권이 들어있는 SKC빌딩도 론스타가 사들였다.
일각에선 외국계 부동산 소유주들이 주로 여의도 지역의 물건을 집중 매각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시비리처드앨리스의 이녹정 차장은 “여의도의 공실률이 제로 수준”이라고 밝혔다. 여의도의 건물 시세가 그만큼 좋다는 것. 여의도지역 매각 집중 때문에 이들 외국계 펀드들이 부동산 처분을 한국 탈출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삼성생명부동산서비스로 출발한 샘스의 서경대 팀장은 “외국계 부동산 자본은 언제든지 수익률만 맞추면 보유물건을 매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외국계 자본의 국내 탈출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 칼라일의 두루넷빌딩 매입을 컨설팅했던 시비리차드의 이녹정 차장 역시 “IMF 시절에 비교할 때 요즘 대형 부동산 매물의 시세가 20~30% 정도 올랐다. 대형 매물의 시세는 지금이 상투라는 시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외국계 펀드들 입장에선 시세차익을 실현할 만하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최근의 외국계 부동산 매물붐이 탈한국 현상이 아닌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로 외국계 부동산 매입 세력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수익률 게임’ 더해질 것 시비리차드앨리스코리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5천 평 이상의 대형 부동산 매입건 중 곧 가시화될 계약이 5건에 이른다는 것.
그는 “아시아 지역 중 일본이나 태국, 홍콩보다 경기가 좋은 곳이 한국이라 이들이 우리나라를 떠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좋은 물건’이 나오면 이들은 언제든지 매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의 대형 부동산 매물 붐을 국내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부동산 수익률 게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올해 보유빌딩 60채를 매물로 내놔 이 중 20채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의 부동산을 관리해주고 있는 샘스의 서경대 팀장은 “물건이 좋으면 빌딩을 살 것이고 살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좋은 물건이란 수익률이 높은 빌딩이다. 싼값에 사서 임대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 이는 외국계 부동산 펀드들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근의 부동산 매물 붐이 외국계 투기 자본의 국내 탈출은 아니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한 셈. 그럼에도 이들은 내년 임대용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밝게 보지는 않았다. 이녹정 차장은 “빌딩가격은 오르는 반면 좋은 물건은 나오고 있지 않다. 때문에 거래가 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조조정이 끝난 마당에 기업들이 급매물을 내놓을 리 없고, 국내 금융기관들도 본격적으로 리츠 시장에 뛰어든 만큼 임대용 부동산에 돈을 거는 수익률 게임이 더욱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