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른바 ‘여친 몰카 인증 대란’을 일으켰던 극우주의 온라인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회원 13명을 검거했다.
이들 가운데 6명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직접 촬영해서 올렸으며, 나머지는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을 재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올린 이유는 별 게 없었다. 자극적인 게시물로 다른 회원들에게 많은 ‘추천’을 받으면 회원 등급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범죄 행각은 지난 11월 19일 세상에 알려졌다.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으로 이슈가 더욱 뜨겁게 달궈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들은 서로서로 ‘경찰 조사를 피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무조건 퍼온 사진이라고 해라” “여자친구 사진이더라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안 찍었다고 우겨라. 그럼 무혐의가 뜬다”는 막무가내식 조언이 이어졌다.
이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이 직접 움직이면서 약 한 달 만인 지난 12월 26일 대부분의 ‘여친 인증’ 회원들이 검거됐다. 경찰은 총 15명을 특정했으며 남은 2명은 추후 소환 조사를 통해 추가 입건할 계획을 밝혔다. 또 이번 여친 몰카 인증 대란의 실제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도 피해 사례를 진술 받아 일베 회원들에 대한 혐의 사실을 보강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8년에만 일베는 두 번이나 공개적인 경찰 수사 대상으로 지목됐던 바 있다. 먼저 지난 7월 22일 있었던 ‘박카스 할머니 인증 사건’이 첫 스타트를 끊었다. 박카스 할머니란 주로 노년층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나이 든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카스를 한 병씩 들고 성매매에 나서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붙었다.
자신을 32세 남성이라고 밝힌 이 일베 회원은 성매매 여성의 신체 부위가 그대로 노출된 사진을 게시하며 자신이 성매수를 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사진이 각종 온라인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퍼지자, 이 회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일베 게시판에 쓴 글을 삭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 경찰 수사가 개시된 지 보름 만인 지난 8월 3일 충남 천안에서 게시자가 검거됐다. 경찰 조사에서는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퍼온 사진을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일반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결국 죗값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일베에 대한 수사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진 것은 운영자들의 협조 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베는 대구 수성구에 주소지를 두고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국내 사법기관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심의기관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이 때문에 불법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의 특정이 수월하고, 경찰이 이들의 신상정보를 요청하면 운영자 역시 지체 없이 제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22일 경찰은 일베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수색을 진행했고 운영진으로부터 특정 회원 정보와 접속 기록을 확보해 수사에 나섰던 바 있다.
이처럼 운영자의 협조를 받아 순풍을 타고 있는 일베 수사와는 달리,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인 수사도 있다. 비슷한 시기 경찰이 대대적으로 운영자의 체포 영장까지 발부 받으며 요란한 수사 개시를 알렸던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 커뮤니티 워마드에 대한 수사다.
지난 8월 부산지방경찰청이 워마드 운영자 강 아무개 씨(30)의 신원을 특정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밝혔지만 그는 여전히 국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한 채 해외를 떠돌고 있다. 운영자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경찰의 수사는 잠정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들은 강 씨는 “경찰의 근거 없는 편파 수사로 한국에 들어갈 자유를 박탈당했다”라면서 “변호사비를 모금해 대응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던 바 있다. 이후 곧바로 “모금 총대(주도적으로 모금을 맡고 계좌를 빌려줄 관계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려 모금을 시도했으나, 실제로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 펜션 사고’ 피해자 모욕과 관련한 경찰의 워마드 서버 압수수색이 전해지면서 게시된 글. 사진=워마드 캡처
그러나 워마드의 회원들은 경찰의 수사를 비웃듯 계속해서 새로운 모욕 게시물을 남기고 있다. 한 회원은 “어차피 서버 압색한다고 해도 커뮤니티 특성상 접속 기록은 2주 뒤에 다 지워진다. 경찰이 뒤늦게 기록을 받아도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아무도 모른다”라며 모욕 게시물을 계속 올릴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워마드는 모든 회원들의 IP주소를 수집하지 않고 있으며, 접속 기록도 14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삭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또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로서 죽은 피해자를 모욕했을 때만 적용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 ‘잘 죽었다’ ‘기쁘다’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므로 허위사실이라고도 볼 수 없다. 우리에게 적용될 혐의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 사건은 숨진 피해자들의 모교인 서울 대성고와 피해자 지인들의 신고로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앞서 2015년 일베 회원이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먹는 사진을 올리며 “친구 먹는다”라는 글을 쓴 혐의로 유족과 단원고 세월호 생존자로부터 피소돼 실형이 선고된 유사한 사례가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 역시 유족과 피해자들의 의향만 있으면 재판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경찰 관계자는 “모욕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유족을 포함한 피해자 측이 고소 의사를 밝힐 경우 정식 수사로 전환될 수 있다”라며 “다만 여전히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점과 운영자가 경찰 수사에 전혀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수사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워마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왔던 타 경찰서와의 협조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