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웅렬 코오롱 회장(왼쪽)과 조석래 효성 회장(오른쪽) 의 고합 당진필름공장(가운데) 인수전이 공정위의 개입 으로 갈수록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 ||
기업 부실로 퇴출된 고합그룹의 당진 필름공장 인수전이 갈수록 흥미를 더하고 있다. 매각가격 3백억원대의 고합 당진 필름공장 인수전에서 막판까지 불꽃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곳은 전통 섬유재벌인 효성과 코오롱.
특히 이 인수전은 원로급 재벌총수인 조석래 효성 회장과 신세대 재벌총수의 선두주자인 이웅렬 코오롱 회장의 자존심 대결로 압축되면서 두 재벌이 전사적으로 홍보전에 나서는 등 격전을 벌였다.
인수전의 1라운드 승리자는 지난 8월 채권단에 의해 실시된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코오롱이었다. 그러나 코오롱이 승리의 샴페인 뚜껑을 따려는 순간 입찰에서 2위를 차지한 효성이 코오롱의 필름시장 독점문제를 들어 공정위에 제소, 뒷다리가 잡혔다.
이 사건을 접수한 공정위는 두 재벌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의식한 때문인지 독점여부 결론을 차일피일 미루다 4개월 만인 지난 12월12일 분할 인수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코오롱이 일괄 낙찰받은 당진 공장 중 미가동라인은 코오롱이 인수하고, 나머지 가동라인은 효성에게 재매각토록 시정조치한 것.
이는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됐던 코오롱에게는 죽음이었고, 효성에게는 기사회생이었다. 공정위의 결정대로라면 사실상 효성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초 입찰에 참여했던 나머지 기업들. 당초 입찰에 참여한 기업에는 코오롱과 효성 외에도 미국의 하니웰 등 다수의 기업들이 있었다.
참여 기업들은 “당초 입찰조건에 공장 분할 인수 등이 없었다”며 “입찰조건이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매각작업은 다시 해야 한다”고 강력 반발할 움직임이다. 이들 탈락업체들이 집단 반발에 나설 경우 이 문제는 특혜시비와 함께 입찰조건 변경으로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공정위는 “코오롱이 나일론 필름공장 인수를 허용하는 대신, 생산 설비 2개 중 미가동중인 1개 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설비를 2개월 내에 3자에게 매각하라”고 결정했다. 주순식 공정위 독점국장은 “코오롱이 고합의 나일론 필름 사업을 인수할 경우 국내 나일론 필름 시장에서 코오롱의 시장 지배력이 증가해 경쟁제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위법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정위 결정은 입찰에서 승리한 코오롱에게 미가동 라인만 인수를 허용하고 나머지 가동라인은 다른 업체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어서 사실상 코오롱은 닭 쫓던 개 꼴이 된 셈이다. 현실적으로 제3자 매각의 대상이 효성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코오롱은 자신들이 낙찰받은 회사를 효성에게 넘겨야 하는 웃지못할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공정위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코오롱과 효성이 군침을 삼킨 고합의 필름시장 점유율이 13.1%이어서, 코오롱이 인수하면 점유율이 59%로 높아져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는 것. 이로 인해 코오롱은 필름시장의 압도적 지위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효성의 딴죽걸기에 엉덩방아를 찧고 만 셈이다.
코오롱은 일단 “공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고 말았다. 반면 우선협상 1순위에서 밀려나면서 벼랑끝에 몰렸던 효성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표정관리를 해야 할 만큼 희색이 만면이다. 코오롱이 가동설비를 매각할 경우 2순위 우선협상자였던 효성이 인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럴 경우 양사의 필름시장 점유율은 현재 45.9%, 29.1%에서 45.9%, 42.2%의 과점상태가 된다.
이와 관련,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코오롱이 효성에 라인을 넘기기로 양측이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사실상 효성의 나머지 라인 인수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효성은 성장산업인 나일론필름 부문에서 리딩메이커로서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 코오롱은 사십 년동안 맞서온 버거운 경쟁상대를 맞게 됐다.
특히 고합공장은 범용생산방식인 블로잉방식이 아닌 텐더공법이라는 혁신방식을 채택, 효성으로서는 선진 기술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코오롱과 필름시장에서 일대 격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해 사업체를 매각할 경우 독점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온 터였다.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나 시장지배력이 높은 시중은행간 인수, 합병 등도 그런 점에서 용인됐다. 고합 역시 부실기업 퇴출로 빚어진 사업체라는 점에서 굳이 공정거래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선 코오롱이 고합 당진 공장라인을 효성에게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코오롱 관계자는 “제3자에게 반드시 팔아야 된다면 버거운 경쟁상대인 효성보다는 국내외 우호기업에 매각하는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따르고 가급적 효성에 파는 쪽으로 가겠지만, 실사를 한 뒤 가격문제 등이 남아 있어 예단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