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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자동차사업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재진출설이 나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룹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자동차사업 재진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말도 오가고 있다.
그러나 삼성측은 이에 대해 고개를 단호히 가로 저었다. 삼성 핵심 관계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오히려 묻는 사람이 머쓱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 얘기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룹 고위층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느니, 르노삼성을 재접수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느니, 사업 재추진 작업을 전담할 비밀팀이 구성됐다느니 하는 따위의 각종 관측들이 밑도 끝도 없이 유포되고 있다.
삼성의 강력 부인, 그리고 끝없는 의혹 제기. 지난 94년 삼성이 승용차 사업에 진출하기 직전 전개됐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당시에도 재계에서는 삼성의 자동차 진출설을 끝없이 제기했고, 삼성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삼성은 1년 만에 말을 뒤집어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이 사업을 맡았던 임원 C씨는 “왜 부인했었느냐”고 따지자 “우리 입으로 (사업을) 한다고 말할 줄 알았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물론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에는 판세가 ‘짜고치는 고스톱판’이었지만, 지금은 한 번 도전했다가 포기(비록 자발적이진 않았지만)한 상황이다. 일단 접은 사업을 다시 재개한다는 것은, 삼성측 주장대로 불가능에 가깝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재개할 것이란 ‘결정적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상당한 근거를 지닌 듯이 이 같은 얘기가 흘러나오는 배경은 무엇일까. 삼성측의 말대로 이 관측은 전혀 뜬금없는 추측에 불과한 것일까.
재진출설이 나도는 배경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삼성(엄밀히 말하면 이건희 회장)이 여전히 자동차사업에 강한 미련을 두고 있다는 점, 둘째는 그룹 차원의 신사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 셋째는 넘치는 현금을 주체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물론 이들 세 가지 요인이 어느 때보다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 개연성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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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9년 6월30일 삼성차 처리와 관련, 삼성측 관계자가 이건희 회장의 사재 출연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
더욱이 지난 95년 승용차회사를 설립, 3년 동안의 긴 연구끝에 탄생시킨 SM5 시리즈를 막 출시해 시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으니 삼성의 아픔은 더했다. 그것도 본전조차 건지지 못한 헐값으로 회사를 팔았다.
당시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포기한 것은 자발적인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따른 굴복이었다. 솔직히 계열 언론사의 대선 행보도 무관치 않았다.
르노에 회사를 넘기면서도 19%에 가까운 지분은 삼성이 그대로 보유한 점도 뒷맛을 남겼다. 자동차사업 부실로 인한 부채 2조5천억원도 이 회장 개인이 보유하던 삼성생명 주식을 채권단에 제공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 같은 당시 상황전개는 자본주의 경제논리상 이해할 수 없는 대목도 없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회장이나 삼성도 미련이 남았다. 실제 당시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언젠가 다시 할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이 가진 자동차사업에 대한 미련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그룹 관계자들도 자동차사업 얘기만 나오면 왠지 몸을 웅크릴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도 귀를 쫑긋 세운다.
최근 삼성의 자동차사업 재진출설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히는 것은, 삼성의 최대 당면과제가 신사업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삼성은 지난 98년 이후 사업구조를 삼성전자를 축으로 한 전자, 삼성생명을 축으로 한 금융 등 두 개의 골격을 세웠다. 이들 두 사업은 현재까지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핵심부는 전자와 금융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라는 한 개의 기업만으로도 당장은 먹고살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불안하기 그지 없다. 기업은 투자와 이윤창출 등의 반복적 사이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삼성은 더욱 불안하다.
이건희 회장도 올 들어 사내외에서 “삼성의 안주론은 위험하다” “미래를 겨냥한 경영이 필요하다”는 등 잇단 경고성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낼 정도다. 구조조정본부 등 핵심 진용에서 신사업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측도 “미래를 겨냥한 신종 사업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자동차사업이 신사업에 드느냐에 대해 삼성은 부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 밖에서는 지난 95년부터 짜놓은 자동차사업을 위한 그룹 계열사들의 사업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사업 재진출을 완전 배제해놓고 얘기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 혼자서 가진 현금은 대략 5조원대를 약간 넘는 것으로 금융가는 추정한다. 그룹 전체적으로 보면 삼성이 보유한 현금은 대략 10조원대에 이를 것이란 분석. 이 정도 현금능력이면, 시쳇말로 마음만 먹으면 못할 사업이 없다. 게다가 자동차사업의 경우 국내외 기업환경도 90년대 중반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전후방 산업효과를 감안할 때 삼성으로선 자동차사업을 재개하면 상당수 계열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정도로 그룹의 재도약을 위한 확실한 기폭제가 될 게 분명하다.
딱히 현금을 투여해 사업을 전개할 만한 가치있는 아이템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 바이오 등이 검토됐지만 이들 사업은 발전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삼성으로선 중후장대형 제조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이런 근거를 두고 지난 95년 승용차사업을 시작했지만 당시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달라졌다.
특히 기아가 현대에 합쳐지고, 대우가 GM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삼성이 자동차사업에 나선다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도 있다. 르노와의 합작상태를 유지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삼성에겐 이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되살아난 삼성의 자동차사업 재진출이 단순한 추측에 그칠지, 아니면 현실로 드러날지는 아직 단정하긴 이른 것 같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맞을 확률은 현재로선 매우 낮아 보이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