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5단체 가운데 수장 자리를 두고 이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드물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때 주요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할 정도로 막강한 세를 과시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차기 회장 후보를 찾는 일부터 난항을 겪고 있지만, 중기중앙회 선거는 후보가 난립하는 등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회장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과 ‘프리미엄’ 탓에 선거전이 과열양상을 띄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전체 산업계의 99%를 차지하는 ‘350만 중소기업 대표자’라는 상징성부터 크다. 임기 4년 동안 부총리급 의전을 받고, 대통령 공식 해외 순방에도 동행한다. 원칙적으로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금전적 혜택도 있다. 특별활동비로 매달 1000만 원을 지원받고, 중기중앙회가 최대주주로 있는 홈앤쇼핑 이사회 의장도 겸직한다. 보수는 연 6000만 원이다.
하지만 중기중앙회 안팎에선 선거전이 과열양상을 띄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박성택 현 중기중앙 회장은 2015년부터 공식 행사에서 쓰는 업무추진비를 제외한 본인에 대한 다른 활동비는 반납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홈앤쇼핑에서 받는 의장 보수도 포기하고 다른 이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번에 선출될 후임 회장이 이를 되돌려 ‘혜택’을 누릴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기중앙회 안팎의 목소리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중기중앙회 위상이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첫 신년회를 청와대가 아닌 중기중앙회에서 열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달라진 중기중앙회 ‘위상’에 선거전 과열, 뒷말은 ‘무성’
문재인 정부 들어 달라진 중기중앙회의 ‘위상’도 선거전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 주관 부처가 중소기업청에서 장관급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는 등 중소기업에 힘이 실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올해 첫 신년회를 청와대가 아닌 중기중앙회에서 열었다. 지난 1월 8일 임명된 신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경제활성화를 위해 경제인을 많이 만나라”는 대통령 지시에 같은달 2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가장 먼저 찾았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불과 직전 선거였던 25대 회장 선거만 하더라도 중기중앙회는 ‘업계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등 공식 기구보다도 정부와 정‧재계 관계자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자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중소기업계로서도, 선출될 회장 개인으로서도 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회”라고 말했다.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권한과 ‘프리미엄’이 붙은 자리를 두고 치열한 선거 레이스가 시작되다보니, 각종 의혹도 일찌감치 등장했다. 정식으로 회장 후보자를 등록하기 이전부터 각 후보 진영 간 벌어진 고소‧고발 전쟁이 대표적이다. 허위사실 공표와 사전선거운동, 금품과 선물공세 등 모두 선거와 관련된 의혹들이다. 과열양상을 우려한 중기중앙회가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 관리를 위탁했지만 여지없이 고소고발 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그밖에 중기중앙회 자체 선관위에 신고된 제보 건수도 15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후보자들에 대한 뒷말과 잡음도 무성하다. 회사 경영 과정에서 비위를 저질렀다거나, 다단계 회사의 정점에 있다는 식이다. 중소기업을 넘어서는 자회사를 둔 탓에 자격 논란도 벌어지고 있고, ‘정부나 정치권에서 특정 후보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한 후보자 측 관계자는 “최근 후보자들은 각종 의혹은 물론 언론보도까지 세심하게 챙겨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자들의 날선 신경전도 포착된다. 선거를 앞두고 중기중앙회는 후보자별 공약집 등 선거 책자를 발간하는데, 이 책자의 제작 방식을 두고 후보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후보별로 책자를 나눌지, 합본으로 낼지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았다. 선거 책자가 합본으로 제작돼 번호순서대로 후보자들이 소개되면 뒷번호 후보자들이 불리하다는 이유였다. 선거 책자는 기존 중기중앙회 관행대로 결국 합본으로 제작 됐다.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사진=우태윤 기자
# 표심 잡기 물밑 접촉 경쟁도 치열
중기중앙회 특유의 선거 방식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기중앙회장은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전국에 퍼져있는 600여 개 협동조합 이사장들이 각 조합원들을 대표해서 회장 투표권을 갖는다. 이들 조합 이사장의 표심을 잡아야 회장이 될 수 있다.
직전 선거였던 25대 회장 선거까지는 후보로 나서려면 조합 이사장 10%의 추천이 필요했는데, 이번 선거부터는 추천제가 폐지됐다. 조합 이사장들을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표의 향방을 가르는 셈이다. 특히 189명의 이사장들이 올해 2월 임기가 만료되면서 연임과 교체를 앞두고 있다. 후보자들이 현직들의 표를 얻더라도, 새 이사장들이 선거 판세를 가를 수도 있다. 중기중앙회 회장은 선거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해야 선출되는데, 후보자가 5명이나 되는 만큼 과반을 넘을 가능성이 낮아서다.
이 때문에 회장 후보자들의 물밑 접촉 경쟁도 치열 하다.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 상위 2명이 결선 투표를 하게 된다. 결국 후보자들은 전국에 위치한 협동조합의 지지를 두루 받는 걸 목표로 뛸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주변에선 후보자들이 벌써부터 밀어주기 식 ‘딜’을 하면서 이사장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각 후보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데 일부 후보자는 입술이 부르터서 왔었다. 전국 이사장들한테 인사를 다니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웃더라”면서 “통상 협동조합 이사장들은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 후보자들이 각자 이야기들을 하는데 ‘잘 도와 드리겠다’고만 대답하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공약만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후보자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라 솔직히 누가해도 상관없다”며 “후보들이 각자 뒷말과 의혹들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굵직한 현안들이 쌓인만큼 이번 선거 향방은 각 후보들의 구체적인 공약보다는 정부나 정치권과 소통이 원활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러한 선거 분위기에 대해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중기중앙회는 물론 각 후보자들도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불필요한 잡음 없이 선거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6대 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기호순으로 이재한 한용산업 대표,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 주대철 세진텔레시스 대표, 이재광 광명전기 대표, 원재희 프럼파스트 대표 등이다. 선거는 오는 2월 28일 열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