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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기 동부회장(왼쪽), 김주진 아남회장 | ||
김준기 회장의 아남 인수작전이 공개된 것은 이달 초. 지난 5일 동부 계열사인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은 공시를 통해 “두 계열사가 6백억원을 투입해 아남의 주식 1천2백만주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부화재의 경우 제3자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1천만주를 주당 5천원에 매입하고, 동부생명도 1백억원을 출자해 2백만주를 매입하는 것이 기본 골격.
그러나 당시 이같은 계획에 대해 재계는 동부가 확보하는 주식수가 아남 전체 지분의 12%에 그쳐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동부 역시 “금융 계열사인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이 자산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아남반도체에 출자키로 한 것”이라며 다른 해석을 경계했다.
아남반도체도 “동부화재 등 보험사들은 현금이 많아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부측의 이같은 해명은 1주일만에 바뀌었다. 동부의 아남 지분 인수가 공개화된지 7일 뒤인 11일 동부건설은 아남의 지분 48%를 보유한 실질적인 대주주인 암코의 지분 16.1%를 추가로 매입, 경영권 자체를 넘겨받게 됐다.
이같은 결과는 재계 전문가들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 당초 전문가들은 “아남과 동부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경영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동부가 아남 전체를 인수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짐에 따라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재계와 업계, 그리고 세계반도체 전문가들은 어떤 배경에서 김준기 회장과 김주진 회장이 이같은 거래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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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부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아남반도체 사옥 전경. | ||
당시 김준기 회장은 현 정부 들어 불거진 세풍사건에 연루되면서 미국으로 피신, 장기 체류하고 있었다. 김주진 회장 역시 아남반도체가 반도체경기 침체와 함께 회사 전체가 위기에 처하자 미국에 암코라는 회사를 설립해 사실상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사업 얘기를 나누게 됐고, 평소 동부전자를 통해 반도체사업 진출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던 김준기 회장이 아남과의 사업제휴를 제안하게 됐다는 것. 당초 김준기 회장의 제안에 대해 김주진 회장은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으나 아남반도체가 OEM생산에 머물러 있는데다, 여러가지 조건에서 차이가 커 논의 단계에만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래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반부터. 부도와 화의 등의 강한 압력을 받던 김주진 회장은 아남의 대주주인 암코(미국법인)에 대한 세간의 의혹마저 불거지자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재계 일각에서 제기된 암코의 실소유주에 대한 의혹은 아남측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이 회사의 주인은 김주진 회장이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아 왔다. 김 회장의 영문이름이 암코의 대주주명단에서 발견된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김준기 회장의 야망과 김주진 회장의 개인적인 문제가 오버랩되면서 양측 모두 ‘윈윈’이 가능한 탈출구를 찾게 됐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두 사람은 시장을 통한 지분 매입과 암코 지분을 넘기는 데 합의하고 지난 6월말부터 세부적인 매매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거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양측의 거래조건. 일단 동부측은 동부화재, 생명, 건설 등 핵심 계열사를 동원해 30% 정도의 아남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지만, 1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어디서 추렴할 것이냐는 궁금증을 남기고 있다. 아남 역시 동부로부터 건네받는 1천억원대의 지분매각 대금을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받을 것이냐는 부분도 또다른 궁금증으로 남는다.
현재까지 파악된 동부가 지불할 대금 중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의 출연금 6백억원은 아남의 운영자금으로 투입된다는 것. 문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부건설이 매입한 암코 보유지분 16.1%에 대한 지불대금은 누구 수중에 갈 것이냐는 부분이다.
암코는 외국계 법인이기 때문에 아남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암코의 실체가 김주진 회장과는 관계없는 미국계 투자펀드로 세워진 법인이기 때문에 동부가 지불하는 대금은 아남에 재투자할 의무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수백억원의 지분매각대금이 고스란히 암코 몫으로 돌아가 해외로 나갈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서도 암코는 여전히 22.7%의 아남 지분을 그대로 보유해 동부에 이은 2대주주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암코가 김주진 회장과 깊은 연관이 있는 회사라면 이번 거래는 김준기 회장과 김주진 회장 두 사람 모두에게 환상적인 딜이 된 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주진 회장의 입장에서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국 최초의 반도체회사의 경영을 포기하는 아픔이 남지만, 손해본 장사는 아니라는 얘기이다.














